【짬】 제주바이오팜 최운국 대표
그에게 제주는 도전의 땅이었다. 또 실패의 땅이었다. 무려 4번의 사업 실패를 안겨줬다. 남들 같으면 사업 실패에 쓰라린 기억을 뒤로하고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섯번째 도전했다. 대구가 고향인 제주바이오팜 최운국(52·사진) 대표가 끈질기게 제주에서 사업을 해온 이유가 궁금했다.
“제주는 젊은 시절부터 나를 달콤하게 잡아끄는 마성의 땅이었어요. 공기와 물과 뭍사람들에겐 익숙지 않다는 제주의 강한 바람까지도 좋았으니까요.”
일주일에 한두번씩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새 사업에 분주한 그는 지난달 28일 서울 시내에서 만났다.
이길우 선임기자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 ‘386운동권’
“출장길 제주 물안개·뭉게구름 취해”
‘낙지대학 떡볶이꽈’ 분점 첫 실패
제주흑돼지 식당·수경재배도 접고
‘올레 바람’ 게스트하우스도 좌절
“제주만 있는 마늘·용암해수로 승부”
사실 그는 전형적인 ‘386세대 운동권’이었다. 1980년대 대학에서 총학생회장을 맡으며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졸업 뒤에는 여의도의 정치광고회사에 다니며 학창 시절에 못다 한 사회변혁의 꿈을 이어갔다. 그러다 90년대 중반 출장으로 처음 제주도에 내려가 머문 일주일이 그의 운명을 바뀌게 했다.
“새벽 바닷가에서 밀려드는 물안개와 비취색 푸른 하늘을 떠다니는 뭉게구름이 너무 신기했어요.”
제주 특유의 청정 자연이 20대 청년기를 복잡한 사회문제와 정치투쟁 속에서 힘겹게 달려온 그의 가슴과 머리를 달래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가 당장 제주에 머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24년 전인 90년대 초 잘 다니던 광고회사를 나온 그는 선배를 통해 외식사업의 길로 뛰어들었다. 그는 서울 흑석동의 학원가에 떡볶이집을 냈다. ‘낙지대학 떡볶이꽈’라는 발랄한 간판이 제법 화제를 모으며 학생들이 몰렸다. 호남권과 제주 전체를 아우르는 사업권을 따서 전반적인 운영을 맡았다. 그렇게 첫 사업이 시작되었고 제주와의 인연도 시작되었다.
후배들과 제주시청 앞에 떡볶이점을 냈다. 서울에서의 성공이 제주로 이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실패였다. 떡볶이란 음식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생각이 육지와는 달랐다. 떡볶이집을 접고 이번엔 모슬포에 특산물인 제주흑돼지 식당을 냈다. 또 망했다. 먹을 게 없어 바닷가 방파제에 가서 낚시로 물고기를 잡아 허기를 채우기도 했다. 제주의 거친 바람은 그를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그는 잠시 고향으로 돌아가 전자상거래에 손을 댔지만 마음은 여전히 제주의 푸른 하늘에 닿아 있었다. “같은 돼지고기라도 육지에 비해 제주도산의 육질이 뛰어난 이유가 뭘까, 늘 궁금했는데 문득 화산암반에서 솟아나오는 물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주에만 있는 물이잖아요?”
그는 다시 제주로 날아갔다. 이번에는 그때 일본에서 유행하던 수경재배에 착수했다. 모슬포에 1천여평의 땅을 구해 도전했으나 이번에는 전문지식이 부족해 또 실패했다.
그다음엔 게스트하우스에 도전했다. 지인의 게스트하우스 ‘사이’를 물려받아 운영을 맡았다. 마침 제주올레길이 열리며 손님이 몰렸다. 단순한 숙박업이 아니라 지역민들에게 인문학 강의도 하며 커뮤니티형 게스트하우스로 제법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경쟁 업체 난립으로 결국 실패했다.
“계속 제주의 물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좋은 먹거리와 제주의 물을 연결시키고 싶었어요.”
그런 최 대표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제주마늘이다. 제주마늘은 육질이 단단해 저장성이 뛰어나고 식감과 향기도 좋은 것으로 이름나 있다. 그중에서 대정마늘은 제주 남단의 화산흙에서 암반수를 먹고 자라 손꼽힌다. 마침 전국 마늘생산량의 1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물량도 풍부하다. 특히 강력한 살균과 항균작용을 하는 마늘 특유의 알리신 성분을 비롯해 게르마늄, 비타민B1 등이 고혈압이나 병균의 해독작용에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연히 대정마늘을 흑마늘로 가공해 일본에 수출할 기회를 잡았거든요.”
최 대표는 그냥 제주의 물이 아닌 제주에만 있는 용암해수를 마늘 가공에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육지에는 없는 제주만의 용암해수를 이용한 흑마늘 주스가 그의 다섯번째 사업도전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제주도로부터 4억여원의 지원금을 받아 모슬포에 마늘가공 공장을 세우고 가동을 시작했다.
최 대표는 “또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겁니다. 제주만의 농산물 가공품은 나름의 강력한 경쟁력을 갖고 있으니까요.”
어느덧 제주살이 25년째, 중년에 이른 나이만큼 내공도 쌓인 그의 제주 사랑이 과연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nihao@hani.co.kr, 사진 남종현 작가
제주 특산 대정마늘과 용암수로 흑마늘 주스를 개발해 다섯번째 도전 중인 제주바이오팜 최운국 대표가 지난겨울 대정마늘 산지를 배경으로 웃고 있다.
대정마늘로 만든 흑마늘.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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