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성자’로 불리는 최귀동 할아버지(왼쪽)와 오웅진 신부. 꽃동네 제공
1976년 9월 10일 충북 음성군 금왕읍 무극천. 50대 후반의 초로가 자기 키만 한 걸망을 지고 다리 아래로 사라졌다. 얼핏 봐도 걸인이다. “밥 먹었냐”는 말이 인사가 될 정도로 먹을 것이 많지 않던 때였다. ‘거지’로 불린 걸인들의 밥 동냥은 흔한 모습이었다.
빠른 걸음의 자그마한 걸인을 따르는 젊은 발걸음이 있었다. 그는 눈에 띌세라 숨까지 죽이며 걸인의 뒤를 밟았다. 무극천주교회 주임 신부로 온 오웅진 신부다. 걸인을 삼킨 움막을 살짝 들췄다. 뼈와 살이 붙은 듯 앙상하게 마른 아이, 연신 기침을 토해내는 어미, 눈이 푹 꺼진 아비….
오웅진(오른쪽) 신부와 움막에서 생활하던 걸인들.꽃동네 제공
움막 안엔 열 여덟명이 있다. 어미가 오면 기계처럼 입을 벌리는 둥지 안 제비처럼 모두 걸인의 망태기를 주시한다. 식은 밥, 마른 찬이 쉼 없이 나온다. 하지만 정작 걸인의 입에 남은 건 물 한 모금이다.
“전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는 다리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손이 있잖아요.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조용히 보살펴온 걸인 최귀동이다. 큰 울림에 감동한 오 신부는 성당으로 돌아와 가진 모든 것을 털어냈다. 1300원. 그 길로 철물점에서 시멘트를 산 뒤 손수 벽돌을 찍었다. 교우들도 손을 보탰다. 두 달여만인 그해 11월 15일 금왕읍 무극리 용담산 근처에 방 다섯칸 짜리 벽돌집이 들어섰다. ‘사랑의 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게 국내 최대 복지시설로 성장한 꽃동네의 출발이다.
걸인 최귀동의 사랑과 희생이 꽃동네를 낳았다. 그는 날 때부터 걸인은 아니었다. 무극의 부유한 집안에서 나 이름도 ‘귀동’이었다. 일제가 그의 가정과 그의 삶을 앗아갔다. 일제 강제노역에서 돌아와 보니 부모는 숨지고, 집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났다. 생존을 위해 걸인으로 거리에 나섰다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알게 됐다. 40여년 움막에서 지내면서 주변 걸인을 거두고, 먹이고, 돌봤다. 1986년 2월 한국가톨릭대상 사랑 부문 대상을 받았다. 부상으로 상금 120만원을 받았다. ‘작인 예수’, ‘거지 성자’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이때 오 신부는 그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그 돈 뭐하실래요?.” 그의 답은 간단했다. “집 없는 사람 집 지어 줘야지 다른 것 할 것 있나?”
그는 오 신부에게 돈을 맡겼고, 2년 뒤인 1988년 5월 그의 바람대로 노인 요양원이 들어섰다. 그는 1990년 1월 4일 지병인 고혈압으로 일흔 한 살 생을 마감했다. 숨지면서도 안구를 기증해서 한 청년의 눈으로 세상에 남았다. 그는 지금 꽃동네 안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고 쓴 표지석 아래 묘소에 안장돼 있다.
꽃동네 표지석 아래 만들어진 최귀동 할아버지 묘소.꽃동네 제공
음성군은 그의 봉사·희생정신을 기려 2000년부터 품바 축제를 열고 있으며, 2011년 ‘최귀동 인류애 봉사 대상을 제정해 숨은 봉사자를 찾고 있다. 그의 사랑을 본받은 꽃동네는 지금도 ‘한 사람도 버려지는 사람이 없는 세상,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세상, 모든 사람이 하느님같이 우러름을 받은 세상’을 꿈꾸고 있다.
꽃동네는 오는 27일 서울역 등에서 노숙인 1000여명을 초청하는 ‘노숙인에게 사랑과 희망을’ 행사를 한다. 행사는 2010년 7월부터 일요일마다 노숙인 500여명에게 저녁 봉사를 하는 서울 꽃동네 사랑의 집이 진행한다. 이들은 2011년부터 음성 품바 축제 때 노숙인들을 초청하고 있다. 이날 경기 자원봉사협의회, 수원 영덕중 등에서 자원봉사자 1200여명도 꽃동네 등에서 봉사 활동을 할 참이다. 오웅진 신부의 인성 특강, 채움 노숙인 합창단 공연 등이 이어진다.
이해숙 서울 꽃동네 사랑의 집 원장은 “노숙인에게 사랑과 희망의 씨앗을 심으려고 음성 품바 축제 현장과 꽃동네 등에 초청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거지 성자 최귀동 할아버지의 봉사·희생정신을 이어받아 열리고 있는 음성 품바 축제가 지난 25일 개막했다. 축제는 28일까지 이어진다.음성군청 제공
25일 개막해 28일까지 이어지는 음성 품바 축제에선 품바 움막 짓기, 품바 공연, 품바 랩 경연, 남사당패 공연 등이 이어진다.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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