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에서 돌아온 296번째 희생자는 고창석 단원고 교사였다. 지난 2014년 10월 선체 수색을 통해 단원고 황지현양을 찾은 지 931일 만이다.
세월호 현장수습본부는 17일 “세월호 인양 이후 처음으로 수습한 유해는 단원고 고창석(당시 40) 교사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고창석 교사의 유해는 지난 5일 오전 11시36분께 전남 진도 맹골수도 세월호 침몰해역 특별수색구역(SSZ-2)에서 잠수부들이 수습했다. 이 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대검에 보내져 유전자(DNA) 분석을 했고, 검삿감의 상태가 양호해 12일 만에 결과가 나왔다.
고 교사는 세월호 참사 당시 제자에게 구명조끼를 챙겨주며 탈출을 돕다가 정작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당시 그는 객실 곳곳을 뛰어다니며 제자들에게 “빨리 나가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체육교사인 그는 대학생 때부터 인명구조자격증을 갖고 있을 정도로 수영을 잘했지만, 고 남윤철 교사와 함께 학생들의 탈출을 돕느라 선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자신을 던져 제자들을 구했던 그는 사고 발생 1127일 만에 가족과 제자 곁으로 돌아왔다.
침몰지점 해저 수색 구역도(고창석 교사의 유해가 발견된 장소는 SSZ-2)
그는 2000년 경기 안산 원일중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2005년 원일중 교사 때 3층 학생휴게실에서 불이 나자 가장 먼저 달려가 학생들을 챙겼다. 학생들이 소방서에 신고하는 동안 그는 제자들에게 “어서 피하라”며 외치고 소화기를 들고 불을 끄러 뛰어들었다.
그는 상록중·원곡중을 거쳐 2014년 3월 단원고에 부임했다. 2학년 담임교사는 아니었지만 인성생활부 교사로 수학여행에 동행했다. 그는 정감 있고 책임감이 강해 동료들 사이에서도 신뢰가 깊었다. 또 축구 심판을 맡아주는 등 학생들과 잘 어울렸다. 제자들은 그의 짧은 머리가 고슴도치 같다며 ‘또치쌤’이라고 부르며 따랐다.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을 뒀다. 그의 아내는 참사 뒤 “제발 가족 품으로 돌아와 줘. 기다리는 것밖에 못 해 미안해. 다시 만나면 절대 헤어지지 말자…”는 편지로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광주/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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