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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팔려다 영혼 털리고…박봉·밤샘노동에 연애도 못해

등록 2017-04-06 21:13수정 2017-04-07 01:28

사회초년생 울리는 청년노동의 민낯

등록금 벌려 휴대폰 판매 나섰는데
실적 못채울 땐 창고서 폭행당하고
차명개설 뒤 요금 메우다 신용불량

비정규생산직 12시간씩 주 6일 근무
강제 잔업까지 하고도 월 300만원
“너희가 인간이냐” 폭언 듣기도

청년취업 늘었지만 대부분 비정규직
장시간노동·저임금에 이직 잦아
“일자리 질 개선·정책지원 있어야”
정아무개(왼쪽)씨와 이아무개씨가 지난달 충남 논산의 한 식당거리에서 휴대폰 앱으로 일자리를 검색하고 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정아무개(왼쪽)씨와 이아무개씨가 지난달 충남 논산의 한 식당거리에서 휴대폰 앱으로 일자리를 검색하고 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불안정한 노동 여건 속에 20대 사회초년생들이 울고 있다. 청년 취업자가 늘어나면서 일자리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취업이 어려우니 일단 시간제 아르바이트나 파견직,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일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전북 전주에서 숨진 채 발견된 홍아무개(18·고3)양은 엘지 유플러스의 하청을 받아 콜센터를 운영한 업체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충남 논산에 사는 정아무개(22)씨에게 첫 사회 생활은 지옥이었다. 정씨는 검정고시로 고교 과정을 마쳤다. 그는 지난해 9월 대학 학자금에 보탤 생각으로 대전에서 휴대폰 판매 일을 시작했다. 몸쓰는 험한 일보다는 편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정씨가 일한 휴대폰 가게는 통신사와 계약을 맺고 영업하는 사설 대리점이었다. 근로계약서를 썼지만 내용은 보지 못한 채 이름만 적었다. 4대 보험도 없었다. 월급 명세서도 없이 주는대로 받았다. 사장은 폐회로텔레비전(CCTV)으로 직원들을 감시했다. 잠시 앉아 쉬기라도 하면 “왜 앉아있냐?”는 사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길거리로 나가 호객도 해야했다.

사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13개 대리점 직원 50여명을 불러 단체채팅방을 만들고 실적 관리를 했다. 점장인 ㄱ씨는 채팅방에 멋대로 직원들의 ‘가짜 실적’을 올렸다. “정아무개 1대 판매”라고 팔지도 않은 실적을 올리고 이를 채우라고 강요했다. 지각을 하거나 실적을 못채우면 창고로 끌고가 때렸다. 다른 점장인 ㄴ씨도 실적을 강요하며 비비탄 총을 얼굴에 쏘고 고문하듯 손가락 사이에 볼펜을 끼우고 돌렸다.

휴대폰 판매점 단체 카톡방에서 점장은 직원들에게 욕설을 하고 협박하고 판매 실적을 강요했다.
휴대폰 판매점 단체 카톡방에서 점장은 직원들에게 욕설을 하고 협박하고 판매 실적을 강요했다.
이아무개(21)씨도 맞았다. 이씨는 특수목적고를 졸업한 뒤 첫 직장으로 한 유제품 업체에서 생산 계약직으로 일했다. 새벽 4시에 출근해 하루 평균 10시간씩 2교대로 근무했다. 딱 한 번 통근 버스를 놓쳐 지각했는데 그 길로 해고당했다. ‘공부도 못하고 집안 형편도 어려우니 돈이라도 있어야 제대한 뒤 뭐라도 한다’는 마음에 휴대폰 판매에 뛰어 들었다.

점장의 실적 강요가 이어지자 정씨와 이씨는 친구와 친척 등에게 명의를 빌려 휴대폰을 개통했다. 이른바 공짜폰으로 실적 쌓기였다. 공짜폰 전화 요금과 단말기 할부금은 고스란히 이들이 부담해야 했다. 일을 할수록 받는 월급·수당보다 내야 할 공짜폰 비용이 더 많아졌다. 정씨와 이씨는 결국 신용불량자가 됐다. 인생 도약을 꿈꾸던 20대 초반 청년들에겐 수천만원의 빚과 깊은 상처만 남았다.

■ 청춘 저당 잡힌 대가, 100% 비정규직

인천의 이아무개(25)씨는 3년 전 전문대학을 졸업했다. 빨리 돈을 벌자는 마음에 집 근처 자동차부품 제조 공장에 취직해 생산 라인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다. 6개월 뒤 이씨는 이 회사의 다른 생산직원처럼 비정규직이 됐다. 이씨는 자격증을 따 안정적인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주 6일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주말도 제대로 쉬지 못했고, 야간 근무가 지정되면 일요일에도 출근했다. 잔업 근무를 안하고 싶어도 선택권이 없었다. 제때 퇴근하려면 ‘왜 가야하는지’ 사유를 보고해야 했다. 주말도, 연애할 시간도 없이 하루 12시간씩 잔업까지 해야 받는 월급은 300여 만원이었다. 일상을 모두 바친 대가치고는 초라했다.

이 회사도 폐회로텔레비전(CCTV)으로 생산라인을 감시했다. 실수하면 윽박지르고 반성문을 쓰게 했다. 원청 직원들은 “너희가 사람이냐”며 무시하기 일쑤였다. 관리직 정규직원이 여름에 1주일 정기 휴가를 쓸 때 이씨는 고작 하루, 이틀 쉬고 다시 일했다. 생산량이 늘어나면 회사가 여름휴가 기간을 줄였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대부분은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이었다. 이씨는 지난 2월 노조가 생긴 뒤에야 자신이 불법 파견 노동자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 경험이란 이름으로…무한정 노동의 굴레

서울의 박아무개(29)씨는 2015년부터 광고용 컴퓨터그래픽(CG)을 만드는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한다. 대학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했지만 1년 동안 그래픽디자인 학원을 다닌 뒤에야 취직할 수 있었다. 3개월 동안 인턴으로 일하고 월 200만원에 고용계약을 했다. 그는 경력을 쌓아 업계에서 인정받는 디자이너가 될 꿈을 키웠다.

하지만 길은 멀고 험했다. 일거리가 쏟아지면 새벽까지 밤샘 근무를 하기 일쑤였다. 새벽 3∼4시까지 일하고 점심 때 출근하는 날이 허다했다. 주말도 없었다. 회사는 주말에 쉴 수 있는지를 하루 이틀 전에 통보했다. 날마다 무한 노동의 쳇바퀴였지만 야근·휴일 수당은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사이 몸이 축났다. 건강 악화로 일을 그만두는 동료들이 많았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가 있지만 밤낮없이 회사에 매여 만나지 못했다. 박씨는 “일한만큼 돈을 받으면 대기업 직원도 부럽지 않을 것”이라고 하소연 했다. “엄청난 노동 시간에도 박봉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힘듭니다. 자유 시간이 거의 없으니 데이트는 고사하고 다른 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그는 광고용 컴퓨터그래픽 회사가 대부분 이런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단기 프로젝트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경력을 쌓기 위한 수련의 과정이라고 여기기엔 너무 힘이 든다.” 목소리에서 고통이 묻어났다.

■ 청년 취업자 늘어도 노동 질 떨어져

여성이나 고령층이 많던 저임금 노동시장에서 청년층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박진희 한국고용정보원고용정보분석팀장은 지난해 <고용이슈>에 최근 청년 고용의 특징과 정책적 시사점’에서, 2015 청년 취업자가 전년보다 68000 늘었고, 이 중에는 20 초반이 많았다. 계속 감소하던 20 후반 취업자도 2015년에는 증가했. 그러나 늘어난 청년 일자리를 분석해 보면 단순노무직, 판매 종사자, 생산직 등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라고 분석했.

연령층에서 비정규직이 줄고 있는데 20 이하 비정규직은 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통계청의경제활동인구조사’를 보면,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는 2012 이후 완만하게 증가하다가 2014 34.6% 연령층 평균(32.4%) 격차가 벌어졌다.

지난달 31일 저녁 전북 전주시 서노송동 대우빌딩 앞에서 지난 1월 숨진 홍양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
지난달 31일 저녁 전북 전주시 서노송동 대우빌딩 앞에서 지난 1월 숨진 홍양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
열악하고 불안정한 노동 여건 속에서 청년들이 떠돈다. 이들은 ‘취업 준비를 충실하게 하면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것이라는 기대를 접게된다’고 말한다. 결국 파견이나 시간제로 사회 생활을 시작하지만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란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통계청 자료 가운데 ‘1 안에 노동시장을 떠난 청년 비경제활동 인구의 이직 사유’를 보면, 노동시간과 보수와 같은 작업 여건의 불만족 때문에 일자리를 떠나는 비중이 2012 12.5%에서 2015 15.8% 높아졌다.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기 위한 디딤돌이라 생각하고 저임금 노동시장에 뛰어들지만 주말도 없이 일하면서 자격증을 따고, 취업시험을 준비하기는 어렵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통계 수치만 보면 지금 청년 일자리가 부족하지 않다. 청년이 가기 싫어하는 저임금 일자리만 있는 게 더 문제다. 최근 유럽연합은 고용할당제 등 청년 일자리 창출 제도에서 청년 보장제도로 청년 정책을 개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만 늘리는 정책은 실질적 고용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청년 노동시장도 변하고 있는데 법제도나 정책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직업 훈련, 상담, 청년 수당 등 청년 보장제도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임근 송인걸 최우리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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