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주민 공적참여 봉쇄 악용”
국회도 해결 결의안 채택했지만
해군은 구상권 청구 요지부동
“새 정부가 정치적 해결 해야”
국회도 해결 결의안 채택했지만
해군은 구상권 청구 요지부동
“새 정부가 정치적 해결 해야”
지난 20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회관에는 한낮의 일을 마치고 온 주민 30여명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주민들은 이날 밤늦게까지 제주도가 내놓은 마을발전계획과 관련해 커뮤니티센터 건립과 소득사업 방안 등을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다.
이들은 왜 소득사업을 논의했을까. 한 주민은 “구상권 처리 문제 때문에 토론회에 참석했다”며 “구상금을 개인이 부담하게 해서는 안 된다. 면세점 등 이익사업을 해서 구상권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상권 문제는 당장 주민들이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해군의 구상권 청구 소송을 계기로 ‘전략적 봉쇄소송’을 금지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대표는 “국책사업 등 공적인 사안에 대해 국민의 의사표시를 제한하려는 목적으로 이뤄지는 소송을 전략적 봉쇄소송이라고 하는데, 이번 소송이 그러한 것”이라고 말했다. 60대 후반의 주민 고아무개씨는 “구상금을 받아내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국민한테 국책사업에 반대를 못 하도록 본때를 보이는 효과를 얻으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백신옥 변호사는 “불법행위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기본적으로 개인이 개인한테 하는데, 이번 소송은 특이하게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했다”며 국가가 개인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지고 있는 헌법 제10조 위반이라고 했다.
안호영 민주당 의원은 지난 2월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규제할 수 있는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전략적 봉쇄소송이라는 점을 법원이 인정하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하지 못하도록 하고, 헌법상 기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다. 안 의원은 “정부 정책에 반대하거나 다른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국민의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 표현이다. (해군이) 강정마을 주민들의 공적 참여를 봉쇄하기 위한 목적으로 구상권 청구 소송을 악용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제주지방변호사회도 “정부가 해군기지 건설공사 지연의 모든 책임을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돌리며 추가 공사비에 관한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은 명백한 권한 남용이고 합리적 근거가 없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3월 구상권 청구소송 제기 이후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비롯한 도의회, 시민단체 등의 소송 철회를 요청하는 공식·비공식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제주도가 지난 1년 동안 국회, 총리실, 국방부 등에 소송 철회를 공식 요청한 횟수만 13차례이고, 주민들에 대한 사면 건의는 9차례에 이르지만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25일에는 국회의원 165명이 ‘구상금 청구소송 철회 등 제주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한 갈등해결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제주 출신 강창일·오영훈·위성곤(민주당) 의원도 “구상권 청구소송이 지속되는 한 정부가 약속해온 갈등 해결은 불가능하고 소송이 끝나도 장기간 재판으로 인한 갈등의 골은 메워지기 어렵다”며 소송 철회를 요구했지만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법적 해결과 함께 정치적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조경철 강정마을회장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강정 문제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부와 정치인을 믿고 살아갈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 강정의 아픔은 제주도민의 아픔이자, 대한민국의 아픔이다”라며 구상권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을 호소했다. 강정마을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온 고병수 신부는 “정치적 해결 방안이 최선이다.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그 기간에 주민들의 소송 스트레스가 엄청날 것”이라며 “도민 통합, 국민 통합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이번 소송이 철회돼야 하며, 차기 정부가 정치적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눈길은 5월 대통령 선거에 쏠리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강정마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한 2007년 4월26일 이후 두 번의 대선과 지방선거, 세 번의 총선이 있었다. 도의원 후보에서부터 대통령 후보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제주해군기지 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이뤄진 것은 없다. 오히려 한술 더 떠 어느 날 갑자기 날아든 구상권 청구소송은 주민들을 질겁하게 만들었다.
“정부가 구상권 청구소송을 철회하고, 사면 복권은 물론 최소한의 유감 표명은 있어야 강정 문제가 해결될 것 아니오. 조용하던 마을을 이렇게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강정마을 주민 김아무개(78)씨의 한숨 섞인 목소리에 묻어난 절규다.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회관에서 지난 20일 오후 마을발전계획을 놓고 마을총회가 열려 주민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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