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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엔 육아휴직 없다” 살벌한 회사엔 120

등록 2017-02-13 11:16수정 2017-02-13 22:48

서울시, 직장맘 상담 전용콜 운영
다산콜로 전화…노무사 10명이 상담
노무사들 직접 나서 사쪽과 협상해
50년만에 첫 출산휴가 받아내기도
“노동자에게 보복 않도록 근로감독 절실”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 세텍에서 열린 ‘베이비엑스포’ 행사장에서 서울시직장맘지원센터 직원이 직장맘과 상담을 하고 있다. 상담은 120 다산콜센터(내선 5번)를 이용해도 된다.  서울시직장맘지원센터 제공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 세텍에서 열린 ‘베이비엑스포’ 행사장에서 서울시직장맘지원센터 직원이 직장맘과 상담을 하고 있다. 상담은 120 다산콜센터(내선 5번)를 이용해도 된다. 서울시직장맘지원센터 제공
직장여성 ㄱ씨는 지난해 살벌한 분위기의 회사 생활을 견디기 힘들었다. 임신한 ㄱ씨를 향해 언젠가부터 “마케팅 업무가 부적합한 사람”이라는 말이 사내에서 들려왔다. 인사고과에서는 최저점을 받고 상여금도 절반을 삭감당하는 등 불이익을 받았다. 심지어 권고사직까지 강요당했다.

ㄱ씨는 망설임 끝에 출산 두 달을 앞두고 ‘서울시 직장맘 지원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이 센터 김명희 경력유지지원팀장은 ㄱ씨 부부를 만나 18차례 전화상담과 3차례 면담을 하며 대책을 논의했다. 또 ㄱ씨와 함께 회사 인사담당 부장, 실무자를 만나 협상했다. 창사 뒤 50년 동안 여직원에게 단 한 번의 출산전후휴가 90일, 육아휴직 1년을 줘본 적 없던 회사는 ㄱ씨가 휴가와 휴직을 쓰는 데 합의했다. ㄱ씨는 현재 육아휴직 중이다.

ㄱ씨처럼 출산, 육아의 과정에서 회사 쪽 억압과 차별에 눈물짓는 여성 이야기는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서울시가 13일 밝힌 ‘직장맘 고충상담 전용콜’ 운영 결과를 보면, 지난해 2월부터 올해 1월까지 1년 동안 직장맘지원센터에 걸려 온 상담전화는 모두 5237건이었는데 이 가운데 2112건이 출산전후휴가, 육아휴직 등 노동권과 모성보호에 대한 고민인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가족관계 고충(1387건), 심리나 정서 등 개인적 고충(151건) 등의 순서였다. 시는 대표적인 상담 유형 75개를 정리한 사례집과 대응요령을 서울시직장맘지원센터 누리집(workingmom.or.kr)에 올려두고 직장맘의 적극적인 활용을 당부했다.

상담건수에서 알 수 있듯 정부의 구호이기도 한 ‘일·가정 양립’은 관련 법과 정책에 들어가 있지만 현실에서 구현되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노무사 10명을 고용해 관련 상담을 하고 있다. 노무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직장맘을 힘들게 하는 회사는 규모와 별 상관이 없다. 영세 사업장은 제도 자체를 아예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쉬는 기간을 재직기간으로 인정해 퇴직금을 지급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대형 사업장은 대체인력 투입을 두고 동료와의 갈등, 눈치주기 등이 문제다.

김명희 팀장은 “협상이 끝난 뒤에도 회사 쪽이 노동자에게 보복하지 않도록 노동부나 사법당국이 철저한 근로감독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한계를 느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육아휴직을 끝내고 끝내 회사에 복귀하지 못한 ㄴ씨의 경우가 그렇다. ㄴ씨는 복귀 시점에 육아휴직 전 11년 넘게 일한 부서가 아닌 새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다른 직원이 해당 업무를 대체했기 때문이란 게 회사의 설명이었다. ㄴ씨는 억울한 마음을 누르고 일단 새 부서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회사는 넉 달 뒤 ㄴ씨를 또 다른 곳으로 발령을 냈다. ㄴ씨는 직장맘지원센터 문을 두드리고 센터 노무사와 15번 넘게 상담했으나 완고한 회사 쪽 의지를 꺾지 못했다. 결국 ㄴ씨는 육아휴직이 끝난 뒤 여섯달 이상 회사에 재직해야 받을 수 있는 육아휴직 후반기 6개월치 수당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회사가 관련 서류 작성에 도움을 주는 조건으로 퇴사했다.

지원센터 차원에서 일이 해결되지 않을 땐 어쩔 수 없이 법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 인사팀에서 3년째 일하던 ㄷ씨는 지난해 7월 회사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대표이사는 팀장급 회의에서 “우리 회사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없다”고 선언했다. ㄷ씨가 회사 자문 노무사에게 전화를 해 어떡해야 할지 물었더니 대표이사는 “개인 용무로 근무시간에 전화를 했다”는 이유로 ㄷ씨에게 이메일로 징계를 통보하고 사직을 강요했다. ㄷ씨는 끝내 센터 노무사와 함께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한 뒤 부당징계 구제명령을 받고서야 육아휴직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서울시는 광진구와 금천구에 있는 센터에 이어 올해 하반기 세번째로 은평직장맘지원센터를 열고 2019년까지 1곳을 추가해 모두 4곳의 직장맘센터를 운영할 계획이다. 상담을 원하는 직장맘은 국번 없이 120번(내선 5번)을 누르면 된다. 상담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밤 10시, 토요일엔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다.

김 팀장은 “직장맘의 고민은 인생에서 처음 겪는 큰 고통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자기 문제를 차분히 대응해가는 구조가 필요하다. 시기를 놓치면 도와주고 싶어도 돕지 못할 수 있으니, 나 혼자 겪는 일이 아니고 같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센터를 찾아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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