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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 70개 크기 신세계 쇼핑몰에 하남 상인들 “사지 내몰려”

등록 2017-01-30 19:59수정 2017-01-31 01:37

[밥&법] 재래시장 4년만에 또 날벼락
‘스타필드 하남’ 개장 뒤 상권 몰락
25일 오전 경기 하남 신장시장이 설대목임에도 불구하고 한산하다. 하남/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5일 오전 경기 하남 신장시장이 설대목임에도 불구하고 한산하다. 하남/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사람이 없어요. 사람이…. 경기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답답하기만 합니다.”(하남시 덕풍시장 상인 오아무개씨)

설을 나흘 앞둔 지난 24일 하남시의 대표적 재래시장에서는 상인들의 시름이 이어졌다. 덕풍시장은 날짜 뒷자리가 4, 9로 끝나는 날 장이 서는 5일 전통시장이 열리는 날이어서 그나마 설 대목 분위기가 났다. 하지만 불과 1년 전 발 디딜 틈이 없었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고 상인들은 입을 모았다.

80여곳의 점포와 주변 상가를 합쳐 300곳 정도의 가게가 몰려 있는 신장시장은 더 썰렁했다. 한 상인은 “3~4개월 동안 한 달 매출이 20% 가까이 떨어졌다. 복합 쇼핑몰의 위세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혀를 찼다.

1조 투입된 ‘복합 쇼핑 테마파크’
작년 개장 뒤 매일 10만명 안팎 찾아

재래시장·골목상권 매출 20% 격감
“임대료 떨어지고 빈 점포 늘 것
고용 효과도 작아 대책마련 시급”

유례를 볼 수 없는 ‘유통 공룡’이 집어삼킨 경기도 하남시의 골목상권은 말 그대로 초토화돼 있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9월9일 인구 21만명의 중소도시에 초대형 복합 쇼핑몰인 ‘스타필드 하남’을 선보였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개장식에서 “세상에 없던 쇼핑몰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구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스타필드 하남”이라고 말했다.

1조원이 투입된 스타필드 하남은 신세계그룹과 미국의 글로벌 쇼핑몰 개발·운영 기업인 터브먼이 합작했다. 국내 최초의 쇼핑 테마파크다. 연면적은 46만㎡에 달한다. 축구장 70개를 합쳐 놓은 크기다.

신세계백화점을 비롯해 창고·초대형 할인매장 ‘이마트 트레이더스’와 가전 전문매장, 초저가 판매점인 ‘노브랜드 샵’을 비롯해 30여개 해외 유명 브랜드가 주축이 된 ‘럭셔리 존’ 등이 입점했다. 여기에 식품과 가구, 육아용품과 장난감 전문점 등도 들어섰다. 또한 실내 클라이밍 등 30여종의 스포츠 콘텐츠가 있는 ‘스포츠 몬스터’와 워터파크인 ‘아쿠아필드’까지 갖췄다. 정 부회장이 정의한 것처럼 ‘세상에 없던 쇼핑몰’이다.

신세계는 지난해 11월30일 “스타필드 하남은 개장 이후 80일 동안 방문객 622만명을 넘어섰다”는 자료를 냈다. 평일 기준 6만명, 주말 기준 11만~12만명이 평균적으로 방문했다는 것이다. 지역별로는 하남 지역 외에 강남 4구(서울 강남·서초·송파·강동구) 고객 구성비가 전체의 25% 이상이었다. 하남 지역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상권까지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개관 뒤 첫 주말을 맞은 지난해 9월10일 오후 경기도 하남시 쇼핑테마파크 스타필드 하남이 많은 고객들로 붐비고 있다. 하남/연합뉴스
개관 뒤 첫 주말을 맞은 지난해 9월10일 오후 경기도 하남시 쇼핑테마파크 스타필드 하남이 많은 고객들로 붐비고 있다. 하남/연합뉴스
이런 공룡의 출현에 소비자들은 즉각 반응했지만, 골목상권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정은수 신장시장상인회장은 “우려했던 현실이지만, ‘파죽지세’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상인들마다 아우성이지만, 누구도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점포마다 차이는 있지만, 매출이 최소 15~20%씩 줄어 재래시장 상인들이 점차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시장 인근 상가에서 영업하는 상인들이 주축이 된 ‘상가번영회’ 김상영 회장은 “스타필드도 문제지만, 그 안에 들어선 트레이더스가 더 문제다. 겉으론 (골목상권과 상생하는) 법적 규제가 없는 복합 쇼핑몰이지만, 그 안에 거의 모든 걸 파는 대형마트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지역 상권의 충격이 너무 커 점포 임대료까지 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빈 점포도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타필드 하남은 대책 없이 지역 상권을 잠식했지만, 정작 하남시에는 무엇을 내놓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하남시의회 방미숙 의원은 “스타필드 입지로 하남시의 연간 세수입이 400억원 이상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이보다는 훨씬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하남 지역에 5천여명의 직접고용, 3만4천여명의 간접고용 효과를 예상했으나, 이 역시 미지수”라고 말했다.

하남시는 “스타필드는 개장 이후 지난해 말 현재 8개 분야에서 1350명의 하남시민을 고용했다. 분야별로 보면 서비스 18명, 주차 30명, 환경미화 93명, 보안 40명, 판매 839명, 조리 91명, 시설 40명, 홀서빙 59명, 기타 150명 등”이라고 밝혔다. 지역에서 공급할 절대 인력이 부족한데다 채용 직종도 이른바 ‘낮은 일자리’여서 속 빈 강정이란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남시 관계자는 “신세계와 덕풍·신장상인회가 그나마 개장 전 상생협약을 맺었으나,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어 골목상권을 얼마나 지켜낼 수 있을지는 정확히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하남시의회 오수봉 의원은 “상생협약 내용을 파악하고 검토하기 위해 의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신세계 쪽이 비밀유지 조항을 끼워넣어 상인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남시에는 또 다른 공룡이 이들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지난해 3월 풍산동 미사지구 자족용지 23-1·2블록 1만4260㎡를 매입한 코스트코가 건축 연면적 5만436㎡, 지하 2층~지상 5층 규모로 건축허가를 받아 2018년 개장 예정이다.

하남시의회 박진희 의원은 “서울 강동·송파, 경기도 구리·남양주 등의 관문이자 교통요지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거대 유통시장이 잇따라 진출해 골목상권이 죽어가고 있다. 상권 붕괴를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남/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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