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선후보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2015년 메르스 국면 때 지지율 20%를 오르내리던 유력 대선주자가 탄핵 정국을 거치며 내린 결정입니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에 “1주일 전 쯤 불출마를 결심하고 인터뷰도 줄여왔는데, 이후 민주당 경선룰이 결정되면서 여기에 대한 반발로 읽힐까 봐 설 이전 이후 시점을 고민해왔다”고 말했습니다. 장고의 내막과 이후를 기자가 다 알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그를 가까이 지켜봤던 서울시 출입기자로, 한 시민으로서 지난달 초부터 구상하다 1월13일 초고를 완성하고 내용을 보태온 글을 하나 싣습니다. 기자의 주관적 글이 실제 그리될 경우의 진정한 가치를 퇴색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에 블로그로도 내보내진 않았던 글입니다. 바람이 현실이 된 26일 몇 문장의 시제 등을 다듬었습니다.
제목은 <나는 박원순의 ‘불출마’를 소망했다>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존재감이, 어쩌다, 사라졌다.
그것도 광장에서 잃었다. 시민운동에 제 인생 30년을 헌신하며 늘 버팀목과 구름판 삼던 곳이다.
지난해 11월부터 본격화한 광장 국면에서 그가 누구보다 분주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끔찍한 상상을 해볼까. 오세훈이 서울시장이었다면 이즈음 광화문광장에 스노보드 슬로우프가 설치되었을지 모르고, 이명박이 시장이었다면 ‘시 봉헌’ 소신따라 구국기도회가 열렸을지 모른다. 당연히 서울광장엔 일찌감치 스케이트장이 들어섰을 것이다.
이번 촛불 정국에서 ‘박원순’은 도처의 화장실을 개방시키고 지하철·버스 막차를 연장하고 안전요원을 배치했다. 박 시장은 가뜩이나 일 많다고 자신을 싫어하는 공무원들을 채근해 안전업무로 주말 없이 일 시켰다. 그곳에 연인원 1000만명이 넘게 모였는데 사고 하나 나질 않았다.
지난해 처음 100만명이 모인 토요일 광장이었다. 종로소방서 신교센터 앞 옆을 경찰차벽으로 막아 출동은 물론 집에 가려는 시민들까지 개구멍 다니듯 통행에 불편을 겪어야 했다. 영상에 담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시는 즉시 경찰버스를 물러나도록 요구했다. 그날 당직자들이 시민들 에스엔에스까지 살폈던 것이다. 야권의 다른 시장이라 해 가능한 일이었을까.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박 시장은 지난해 상반기까지 ‘문-안-박’으로도 통칭되던 대선후보로서의 존재감을 잃었다.
왜 그는 대중의 마음을 사지 못할까. 신기한 일이고 그로선 참 억울할 일이다.
나는 그 내막을 다 살필 자신이 없어, 지난 13일 엉뚱한 결론에 먼저 가닿는 글을 썼다. 요지는 이것이다.
“(너무 이른 주장일 수 있다. 낙담과 억울을 박 시장과 그 진영에 드리게 될 것이다.) 늦어도 설 이전 박 시장의 출마 선언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나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선후보 불출마 선언을 하길 희망한다. 모든 것을 버려주길 희망한다.”
지난 19일 <한겨레> 지역부 팀장 회의가 있었다. 호남제주·영남·충청강원·수도권팀장과 부·차장이 모였다. 문재인 전 대표를 빼곤 야권 후보에 가장 밀착해 있는 처지로, 이들 사이에서 미주알고주알 떠나 가장 우호적인 평가를 받은 이가 박 시장이었다. 행정 경험, 능력, 실용주의, 진정성 따위가 장점이었다.
대중이 매기는 점수표와 기자들의 것은 다르게 마련이다. 뜰채로 떠지는 것만이 그릇에 담긴 모든 것이라 할 수 없다. 내 표현으로, 박 시장은 우리나라 정치인 가운데 ‘오답 노트’가 가장 많은 사람이다. 단위별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거대한 공무조직을 6년째 이끌고 매해 30조 예산을 집행해왔다. 본인의 시정 철학을 관철하기 위해 ‘상벌’ 인사를 직접 해본 자다. 때로 잘했고, 때로 그르쳤다.
박근혜 앞에선 다들 종이 되어버리는 우리나라 관료사회가 진보민주 정권 아래에선 공무원의 원칙과 신념을 내세우는 정도가 보통이 아니다. 노통 때의 검찰 태도는 드러난 단편 가운데서도 하나일 뿐이다. (물론 실제 이유는 기득권인 자신들의 생리와 맞지 않은 탓의 반발이라고 나는 본다.) 박 시장은 그들과 상대하고 협업해갈 오답노트를 갖고 있다. 이건 청와대에서 대리인을 세워 정치했을 때의 오답노트와 다르고, 조정이 주무인 도지사의 것과도 다르고, 그나마 유형은 비슷하나 질적 양적 크기가 비교될 수 없는 기초단체장의 것과도 당연히 상이한 성질의 것이라 나는 본다.
나는 새 시대, 사회변혁은 언감생심이고 정권교체를 넘어 최소 ‘성공한 대통령’ 정도만 나와도 좋겠다 바라왔는데, 그 지점에서 지도자의 행정 경험과 오답노트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박 시장이 시장이 되고서 한꺼번에 많은 섹터에서 정규직화를 요구했고, 직영을 요구했고, 지원을 요구했다. 말그대로의 '분출'이다. 그전의 서울시가 들어주지도 않았던, 당시의 중앙정부는 듣지도 않는. 다들 제 나름 소외된 이들인 탓이다. 박 시장이 아니면 논란 자체도 되지 않았을 서울인권선언이, 동성애 인정 문제로 좌초되고 제 점수를 깎고 만다.
진보민주 정권이라 더 다양하게, 자유롭게 터질 요구, 욕망들, 그로 빚어질 갈등을 조정하고 화해시키고 질서를 잡아내는 일이 귀 닫고 소수의 제 편만 챙겨온 10년 보수정권 뒤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 점에서 나는 서울시 박원순의 오답노트를 높이 산다. (그리고 그 점에서 박 시장이 5년 동안 대부분 잘했다는 듯 세일즈하는 전략이 실패했다고 본다. ‘나는 실패도 많았고, 그걸 통해 학습도 많이 했다’고 해야 옳았다.)
일찌감치 내가 그의 대선 불출마 선언을 바랐던 것처럼, 박 시장은 평가 측면에선 불행한 사람이다. 그가 한 일이 당장 시민들에게 점수받기 쉽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시의 행정체계가 관민 토론에 기반한 거버넌스로 엄청난 좌표이동을 한 것을 대중들이 알까? 노동이사제나 노동시간 단축 정책은 한국이 앞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길을 10년 앞서 시도하며 실험값을 구해내는 것이다. 정부가 그리 반대한 청년수당도 마찬가지다. 실제 효과가 입증된 보호자 없는 병원, 메르스 대책, 강제철거 막는 제도들은 어떤가.
서울시 공무원의 7~8할은 박 시장을 반기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알아듣지 못할 주문이 많고, 그것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한가지로 알았던 과제가 100가지가 되기 때문이다. 꼭 그것때문만은 아니지만, 과장이 한가지를 마무리하기 위해 결제받으러 할 때 되레 임무가 수십가지로 늘어나 1:1 결재를 싫어한다는 불만은 이 바닥에서 꽤 알려진 얘기다.
2011년 그가 보궐 시장이 되면서 바로 ‘마을만들기’를 추진했다. 국가고시를 통과한 이들이 잡은 예산은 ‘마을회관 설립비 곱하기 마을수’였다. 이웃간 닫힌 문창을 열고, 공동체를 구성하자는 ‘파스텔화’가 관료조직을 거쳐 '설계도면'이 되어버리니 양쪽 간 불만과 충돌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박 시장은 행복한 사람이다.
6년 전에도 그는 3~4%의 지지도를 받았을 뿐이다. 시대를 만나 서울시장이 되었다. 그리고 6년째 서울시정을 이끌고 있다. 가까이서 보면, 반기문 전 총장보다 더 국제네트워크가 탄탄한 이다. 다보스뿐 아니라, 각종 국제회의에 초청되고, 환경·경제 부문 등에서 국제상을 받는다. 서울시장이어서가 아니라, 박원순이어서 초청되는 자리가 적지 않다. 이건 담당 부서 직원들의 공통된 얘기다. 그리고 최소 지금, 서울시 직원들은 이 나라에서 가장 시민들에게 열린 관료조직을 만들어내고 있다. 국토부 앉아만든 용산공원 계획을 시장보다 시 공무원들이 더 답답해한다. 이런 정부 정책이 한둘이 아니어서, 중앙-서울시의 긴장이 모두 ‘시장 뜻이라서’ 하면 틀린 설명이 된다.
2017년 1월 국민 대부분이 정권교체 하나만 바라는 상황이라, 성공할 대통령의 자질, 그것에 대한 증거가 지금 국민들의 안중에 들어서기 참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니 지금은 박 시장이 시대를 만나지 못했다고 해도 될 것이다.
이제 박 시장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나마 나은 지도자, 될 법한 지도자를 통해 자신의 신념과 정의를 관철해내는 일이다. 당연히 그때의 공통분모는 시민복리, 국민복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대선출마를 포기하고, 자신을 산화하여, 파벌화되는 문재인을 비판하고, 재벌에 관대한 안희정을 비판하고, 날렵하게 강을 건너려는 이재명을 비판하면 된다. 그 자신, 반사이익을 바라는 게 아니니, 그것은 당내 분란이나 쟁투라 할 리 없이, 모두를 건강하게 만드는 범야권의 조교, 시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겐 너무나도 막중한 책무로서의 서울시가 있다. 서울시만큼 시장에 따라 표변하는 도시는 이 나라에 없다. 바깥으로의 상징성, 내부의 재원 덕분이다. 당장의 서울시도 박원순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말한 대로, 앞서간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걸 마무리해가고, 숙성 내지 진전시키는 것만으로도 1년은 지나치게 귀하고 짧은 시간이다.
그 이후는 어떨까? 수많은 계산과 기대가 있겠지만, 시대 흐름에 순응하여 각양각색의 진경(進境)이 그에게도 펼쳐질 거라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그를 지지했던 누군가도 오늘 울고 내일 닦으면 될 일이다.
그나저나, 왜 그의 존재감은 사라지게 되었을까. 생략한다. ‘줄자랑’, ‘이장형 외모’ 등으로 대중성이 떨어진다? 다른 모든 장점을 상쇄해버릴 만큼의 막강한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명박씨도 대통령을 한 나라란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임인택 기자(지역부문 수도권팀장)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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