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전국 전국일반

“설 대목에 택배 보낼 멸치까지 잿더미로”

등록 2017-01-16 16:34수정 2017-01-16 21:20

르포 잿더미 된 여수수산시장

여수수산시장 상인들, 뜬눈으로 밤 지새
임시천막에서 속 새까맣게 탄 상인들
“매출 30% 설에 나가는데 어째야 쓸랑가”
여수시 “영업 재개하려면 한 달은 지나야”
여수수산시장 피해 상인들이 16일 시장 옆 임시천막에서 수심 어린 표정으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여수수산시장 피해 상인들이 16일 시장 옆 임시천막에서 수심 어린 표정으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이틀만 시간을 주세요. 어떻게든 맞춰 볼게요.”

16일 낮 12시30분 전남 여수시 교동 여수수산시장 옆 임시천막. 전날 큰불로 점포를 통째로 잃은 상인 김아무개(56)씨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김씨는 서둘러 밖으로 나가면서 대목 물건을 주문한 전화선 너머 상대방한테 연신 양해를 구했다. 부인도 따라나서 남편 주변을 불안하게 서성거렸다. 김씨는 “택배로 보낼 서대·멸치 등 건어물 2000만원 어치가 다 타버린 것 같다. 하필 대목에 불이 나 물건도 잃고, 신용도 잃게 생겼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식당을 경영하는 이아무개(50)씨는 수족관에 있던 광어·농어 등이 다 죽고, 냉장고 2대와 탁자·의자 등 집기류가 못쓰게 됐다며 한숨지었다. 이씨는 “중앙 통로 쪽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타버렸고, 입구 쪽 식당가는 그나마 피해가 덜한 편인데도 회복 불능”이라고 전했다.

전날 화마가 덮친 시장 내부와 통로는 잿더미로 변해 폭삭 내려앉아 있었다. 끊어진 전기배선들이 어지럽게 얽힌 시장 안은 음습하고 처참했다. 출입통제선 앞으로 다가서자 역하고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을린 출입문 사이로 망가진 수족관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경찰·소방 당국이 화재감식을 벌이고 있는 사이 피해 상인들은 임시천막에 둘러앉아 서로를 위로했다. 수산시장 상무 정영석씨는 피해증명 방법과 영업 재개 시점을 두고 설명을 이어갔다. “화재 감식과 안전 진단이 끝나기 전에는 들어가기 어렵다. 우선 피해 상황을 기록하고 증명하는 게 중요하다. 영업은 밖에서라도 2~3일 안에 재개하도록 준비하겠다.”

40대인 박아무개씨는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봤지만 (어두워) 전혀 나오지 않았다. 임시로 서치라이트라도 설치해야 사진을 찍어 증명할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인들은 저마다 점포별 피해를 적어낼 백지 한장을 받아들었다. 박씨는 “매출 30%가 설에 나가는데 어째야 쓸랑가 모르겄소. (소방당국이 피해액으로 발표한) 5억2000만원은 아마 건물 피해 것제. 택배 보낼 물건을 다 꼽으면 피해액이 열배 스무배로 늘어날 것이구먼”이라고 말했다. 상인 정아무개씨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활어·선어·건어 등 택배로 보내야 할 물량과 냉동고·냉장고·수족관 등 피해품목을 빼곡히 적어 내려갔다.

시장에서 50년 동안 생선을 손질한 홍아무개(75·여)씨는 “여태껏 화재가 없었는데 웬 날벼락인지 모르겠다. 시장에 두었던 통장이라도 찾았으면 좋겠다”며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여수수산시장에선 지난 15일 새벽 2시21분 큰불이 나 점포 125곳 가운데 117곳이 불에 탔다. 58곳이 전소했고, 23곳은 일부 소실했으며 나머지 36곳은 연기에 그을렸다. 경찰은 1차 감식 결과 발화한 점포의 전기배선에서 끊어진 흔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여수시는 “경찰과 보험사 조사가 끝나고 화재현장을 정리한 뒤 영업을 재개하려면 한 달은 지나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안전처는 수산시장 피해를 수습할 수 있도록 재난 특별교부세 10억원을 여수시에 긴급 지원한다고 16일 밝혔다. 또 피해상인들에게는 7000만원 한도로 긴급경영자금(고정금리 2.0%, 5년 상환)을 지원한다.

여수/글·사진 안관옥 원낙연 기자 okah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전국 많이 보는 기사

눈길 견인차에 치여 버스기사 숨져…폭설·한파에 사고 속출 1.

눈길 견인차에 치여 버스기사 숨져…폭설·한파에 사고 속출

제주에 발묶인 1만5천명…‘강풍·눈보라’ 항공기 무더기 결항·지연 2.

제주에 발묶인 1만5천명…‘강풍·눈보라’ 항공기 무더기 결항·지연

광주 사립고 2곳, 졸업식서 거수경례…‘군사독재 관행’ 비판 3.

광주 사립고 2곳, 졸업식서 거수경례…‘군사독재 관행’ 비판

‘바지 집주인’ 징역 5년 선고…전세사기 일당에 명의 빌려줘 4.

‘바지 집주인’ 징역 5년 선고…전세사기 일당에 명의 빌려줘

국내 첫 ‘철도 위 콤팩트시티’…남양주 다산 새도시에 건설 5.

국내 첫 ‘철도 위 콤팩트시티’…남양주 다산 새도시에 건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