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수도권팀 기자 mania@hani.co.kr 닭들의 수난시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달 사이에 1600만마리의 닭·오리를 땅에 묻은 ‘사상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에 온 나라가 아우성입니다. 언론들은 연일 경신되는 발생지역과 매몰 처분된 닭·오리 수를 세느라, 달걀 파동과 경제적 손실을 걱정하느라 바쁩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뒤늦게 조류인플루엔자 위기 단계를 ‘심각’으로 상향하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비판이 줄을 잇습니다. ‘잘못은 자기들이 해놓고 말 못하는 철새 탓만 하냐’는 비아냥도 나옵니다. 안녕하세요. 수도권팀에서 경기북부지역 취재를 맡고 있는 박경만입니다. 이달 초 수도권 첫 조류인플루엔자 발생지인 경기도 양주의 매몰 현장을 취재한 게 인연이 되어 ‘친절한 기자’로 독자 여러분을 만나게 됐습니다. 먼저 가장 큰 피해자인 닭의 처지에서 에이아이 사태를 짚어보겠습니다. 이번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동물은 달걀을 생산하는 산란닭입니다. 산란닭이 에이아이에 취약한 것은 밀집된 사육지와, 수만~수십만마리씩 공장식으로 대량 사육하는 환경 탓이 큽니다. 축산법상 닭 한 마리에 허용되는 공간이란 게 고작 A4 한 장 크기인 가로·세로 22㎝에 불과합니다. 동물적 본능을 해소하지 못하고 스트레스 받은 닭이 자해하거나 다른 닭을 쪼지 못하도록 부리마저 잘립니다. 달걀 생산을 늘리기 위해 밤에도 불을 켜놔 편히 쉴 수조차 없다고 하네요. 에이아이 감염 농장의 닭은 더 참담합니다. 성냥갑 같은 우리에서 플라스틱이나 비닐 수거통에 옮겨진 뒤 이산화탄소에 의해 숨을 거두게 됩니다. 말이 좋아 안락사지, 집단 가스질식사입니다. 죽은 닭·오리들은 수십t 크기의 액비저장용 탱크로 옮겨져 1년 뒤 하수종말처리장을 통해 처리됩니다. 일부는 퇴비장으로 옮겨져 왕겨 등과 함께 투입된 미생물을 통해 ‘친환경적으로’ 분해돼 퇴비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발생 농장과 500m 안에 거주하는 닭·오리까지 예방적 매몰 처분이 진행됩니다. 최소한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짧은 생을 마친 1600만 닭과 오리의 명복을 빕니다. 자식 같은 닭·오리를 묻은 농민 처지도 살펴볼게요. 병아리를 1000원에 사와서 달걀을 낳기까지 사료·약품값 등 마리당 5000원의 비용이 든다고 하니 10만마리를 키우는 농장은 시설비 빼고 5억원 정도가 투자되네요. 에이아이가 없다면 마리당 3만원어치 달걀을 생산하니 수지가 날 법한데 최근 들어 연례행사로 에이아이가 번져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정부로부터 받는 보상금이 시가의 80%이지만, 과실 여부를 따져서 최대 80%까지 삭감당합니다. 매몰 비용도 농가의 몫입니다. 농민들은 이번 에이아이는 전파력과 살상력이 상상을 초월해 현재의 방역체계로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경기도에서 달걀농장을 20년간 해온 한 농민은 “바깥 출입도 않고 24시간 동안 농장을 지키면서 2시간 간격으로 소독을 했는데도 1㎞ 떨어진 농장에서 발생한 지 이틀 뒤 증상이 나타났다. 한달간 소독값만 1000만원을 썼다”며 허탈해합니다. 마지막으로 대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에이아이가 창궐하는 겨울철에 사육을 하지 않는 대신 정부가 보상해주자는 ‘휴업 보상제’입니다. 매몰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오히려 저렴하다고 합니다. 사육기간이 짧은 고기닭이나 오리의 경우 효과를 볼 수 있지만 1년6개월 걸리는 산란닭까지 도입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다음은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백신’을 도입하자는 의견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일본 등 선진국에서 취하지 않은 정책이라 정부는 만지작거리며 결정을 못 내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물복지 농장’ 확대입니다. 현재의 공장식 축산 대신 비용이 더 들더라도 건강하게 키워 면역력을 높이자는 거죠. 실제로 이번 에이아이 사태에서도 동물복지 농장의 닭들은 무사하다고 합니다. 이 또한 동물복지로 키우는 유럽에서도 에이아이가 창궐한다는 반론이 있습니다. 생산원가가 높아져 달걀값이 두배 이상 오르게 되면 당장 서민들이 사먹기 어렵다는 문제점도 지적됩니다. 대안으로 제시된 것 어느 하나도 녹록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대책이라곤 현재로선 매몰 처분과 이동금지 조처밖에 없는 정부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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