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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임금, 같은 일 해도 간접고용직엔 ‘그림의 떡’

등록 2016-12-12 19:20수정 2016-12-13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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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지자체, 직접고용 노동자만 생활임금 적용
“파견, 도급, 용역 등 간접고용 노동자와
단기 계약직 노동자에게도 적용해야”
영국, 생활임금재단 운영하며 민간기업 인증제도 운용
서울 성북구청에서 미화반장으로 일하는 박용범(62)씨가 급여와 관련해 큰 변화를 느낀 때는 용역회사 소속이다 공단 소속이 된 2012년 4월이다. 그해 3월까진 최저임금(4580원) 수준을 시급으로 받다 공단 소속으로 신분이 바뀌면서 6200원을 받기 시작했다. 무려 1600원가량 오른 셈이다. 박씨가 생활임금을 적용받기 시작한 2013년에는 시급이 6490원으로 290원 올랐다. 박씨는 “생활임금을 적용받으면서도 시급이 올랐지만, 공단 소속으로 바뀌었을 때가 제일 많이 올랐다. 용역회사에서는 최저임금에 맞춰 주는데 공단에서는 기본급이 그보다 훨씬 높다”며 “직접고용이 가장 좋지만, 그게 어렵다면 최저임금만 받는 용역노동자에게 생활임금이라도 우선 적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생활임금이 전체적인 틀에선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착실히 뿌리를 내리고 있으나 여전히 한계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큰 구멍이 몇 개 뚫려 있는 탓이다. 2012년 3월 이전 박씨 사례처럼 지자체 소속 공공기관에서 일하더라도 지자체가 용역·하청의 이름으로 외주화한 업체 소속인 노동자들은 생활임금 적용에서 예외인 경우가 많고, 공공부문보다 훨씬 많은 노동자들이 일하는 민간부문에는 생활임금이 발도 들여놓지 못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근본적으로는 ‘좋은 일자리 창출’의 모범을 보여야 할 지자체가 간접고용 자체를 남발해선 안 된다. 최근 국회 사무처가 용역 신분이던 청소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기로 한 것처럼, 직접고용을 통한 문제 해결이 최우선 원칙이다. 차선책으로는 직접고용 이전에라도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이들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도 생활임금을 적용하는 방법이 있다. 현재 서울과 경기를 뺀 나머지 광역지자체와 대부분의 기초지자체는 직접고용 노동자에게만 적용하고 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대다수 지자체가 ‘간접고용 노동자한테도 생활임금을 적용할 수 있다’고 조례상으로만 해놓고 실제 적용하지 않는 게 문제”라며 “상시지속적 업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시간제로 쓰는 노동자나 연중 6개월~1년이면 계약이 종료되는 사람들에게도 적용해야 생활임금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생활임금이 여전히 공공부문에만 머물고 민간부문으로 확장하지 못하는 상황도 개선 과제다. 적어도 지자체와 계약 등 거래관계에 있거나 보조금을 지원받는 민간기업은 소속 노동자에게 지자체가 정한 생활임금을 주도록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은 ‘공계약조례’라고 부르는데, 공공조달에 참여하는 민간기업에도 생활임금을 적용한다. 하지만 한국은 앞서가는 지자체의 조례도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며 “생활임금제의 성공 여부는 파급 효과에 달렸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생활임금을 적용하는 민간기업은 성북구와 양해협정을 맺은 한성대와 성신여대, 서울시와 양해협정을 맺은 중소기업 6곳 정도에 그친다. 서울시 노동정책팀 김용환 주무관은 “현재 지방계약법 6조에 공공과 계약맺는 기업의 이익을 제한하는 특약이나 조건을 정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지금은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생활임금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강제할 방법은 없는 셈”이라고 했다. 진선미,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20대 국회 들어 공공부문과 계약하는 민간기업은 생활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국가계약법과 지방계약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간 확산을 선도하고 있는 나라는 영국이다. 생활임금 적용을 추진해온 시민모임이 설립한 ‘생활임금재단’은 생활임금제를 시행하는 기업들이 제도를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조언하고, 인증제도를 시행한다. 런던시 역시 매년 11월 첫째 주를 생활임금 주간으로 정하고, 민간 확대 캠페인을 집중적으로 벌이고 있다. 영국에서는 올해 9월 기준 에이치에스비시(HSBC), 모건스탠리, 맥쿼리, 러쉬, 네슬레 영국·아일랜드 등 약 2685개의 민간기업에서 도입하고 있다.

오랜 시민운동에서 출발해 지지기반이 탄탄한 외국의 생활임금운동과 달리 한국은 이제 막 뿌리를 내리는 단계라 남은 과제가 더 있다. 야당 소속 지자체장의 시혜성 사업이라는 비판도 넘어야 할 벽이다. 황선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도입되고 있는 현황을 보면 야당 출신 지자체장인 지역이 대부분이다. 선거로 장이 바뀌더라도 꾸준히 유지할 수 있어야 하며, 생활임금위원회에 노동계나 시민사회 참여를 확대하고 보장해야 한다”고 짚었다.

생활임금 결정 기준이 지자체마다 다른 것도 생활임금의 확대를 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지자체마다 기본급과 교통비·식비만 생활임금의 범주로 삼는 곳과 각종 수당을 더해 범주로 삼는 곳 등으로 나뉘어 노동자 임금 가운데 어디까지를 생활임금으로 볼지에 대한 기준이 저마다 다르다. 보편적 기준을 마련해야 이후 민간 영역으로 확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지적이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수당이 포함된 생활임금을 적용받는 경우 월급여가 다른 지자체보다 적을 수도 있다. 지금은 저마다 산입 기준이 다른데, 근로기준법상 법률로 통용되는 최저임금이나 통상임금 수준으로 그 기준을 맞추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전국종합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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