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만납니다. 더 할지 말지, 내려올지 말지. 선택이 어렵다면 이 사람 단재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럼 명쾌해질 겁니다.”
유순웅(53)씨가 청주로 돌아왔다. 그가 <염쟁이 유씨> 한 작품으로만 3000여 차례 무대에 오른 연극배우라는 것은 몰라도, 영화 <명량>의 김 노인, ‘배우 유해진 닮은 사람’이라면 무릎을 치게 하는 그는 천생 배우다.
이번엔 배우가 아니라 연출가다. 그는 18일부터 청주 충북학생교육문화원에서 막을 여는 연극 <선택>을 연출한다. ‘선택’은 단재 신채호 선생의 불꽃 같은 인생을 담은 역사극이다. 단재문화예술제전추진위원회가 단재 순국 80돌을 추모하는 뜻에서 제작한 창작 연극이다. 김하돈 시인의 극본 ‘떨어지는 곳마다 꽃’을 김인경 극작가가 각색했다.
“단재가 아니었다면 연출을 안 맡았을 걸요. 연출에서 손을 뗀 지 오래고 충북을 떠나 있었던 터라 약간 두렵기도 했거든요. 연기는 내 것만 챙기면 되지만 연출은 배우·극·무대 등 세세한 모든 것을 아울러야 하니까 걱정이 앞섰죠.”
사실 그는 연출가다. 청주극단 예술극장 두레에서 <아해별곡>, <농자천하지대봉>, <임꺽정>, <손병희>, <노근리의 비가> 등 10여편을 만들었다. 배우 일이 많아지면서 2005년 <강> 이후 연출을 접었다. “지역에서 간곡한 청도 있었지만 사실 단재라는 인물이 너무 맘에 들었어요. 이렇게 치열하게 살다 불꽃같이 스러져간 인물이 또 있을까요? 대의 만을 위해 한치도 타협하지 않은 단재는 한마디로 연극 같은 삶을 살다간 시대의 선각자지요.”
그가 연출한 ‘선택’은 1919년 불혹의 단재가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열단 등과 관계하면서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하다 차디찬 감옥에서 스러져가기까지 고뇌·역정·시대가 오롯이 녹아 있다.
“이승만이 임시정부 국무총리가 되자 과감히 뛰쳐나오는 단재, 죽음의 갈림길에서 신원보증서 한 장이면 살 수 있는데도 친일파가 써준 보증서라며 과감히 찢어버리고 죽음을 선택하는 단재를 잊을 수 없어요. 하지만 연극은 무겁지 않아요. 재미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다시 배우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염쟁이 유씨’는 2004년 5월 청주 시내 허름한 소극장에서 시작해 2006년 2월 서울 국립극장으로 진출하면서 전국구 연극이 됐다. 지난해 4월 3000회를 넘었고 새달 대구 공연도 잡혀 있다.
“저와 염쟁이 유씨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죠. 40대 초반에 시작해 10여년, 할 수만 있으면 극중 염쟁이처럼 60살이 넘어서도 계속 무대에 서고 싶어요. 지금보다 더 자연스러워질 테죠.”
글·사진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