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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기웃] 낮엔 공무원, 밤엔 멧돼지 사냥꾼

등록 2016-10-25 16:31수정 2016-10-25 16:42

‘멧돼지 퇴치’ 앞장 선 강동구 윤계주 부동산민원팀장
포획단 꾸려 자원봉사…밤·새벽시간대 출동해 멧돼지 퇴치
서울시 “포획단 없이 멧돼지 퇴치 불능”…올해만 28마리
윤계주 팀장 제공
윤계주 팀장 제공
“잡을 때는 금방 잡아요. 도망다니느라 지쳤는지 (멧돼지가) 아파트 한 쪽 수풀에 앉아 있어 쉽게 잡았어요. 날이 추워질수록 아파트·주택가로 멧돼지가 많이 내려올 거에요.”

지난 6일 새벽 4시30분, 강동구청 공무원 윤계주(52)씨가 제 관할도 아닌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아파트로 달려갔다. 멧돼지를 잡기 위해서였다. 이날 새벽 2시께 경비원이 멧돼지와 마주치자 소방서에 신고를 했고, 소방서에서 윤씨에게 다급히 연락했다. 이날 윤씨는 4~5살 된 180㎏짜리 수컷 멧돼지 한 마리를 사살했다. 9일 밤에는 서대문구 홍은동에서 120여kg짜리 암컷 멧돼지 1마리를 잡고 두 마리는 놓쳤다.

윤씨는 멧돼지를 잡는 엽사다. 지난 3월 말 만들어진 ‘서울시 멧돼지 기동포획단’의 총무다. 일주일에 3~4번씩 서울 북한산 일대로 멧돼지 ‘사냥’을 나간다. 40여명의 포획단 중 20여명이 고정적으로 활동한다. 서울에서 멧돼지가 나타났다는 기사는 대부분 윤씨와의 인터뷰로 끝맺는다.

해가 뜨면 엽사 윤씨는 공무원으로 변신한다. 그는 강동구 부동산정보과 부동산민원팀장(6급)이다. 새벽까지 엽총을 잡던 손으로 각종 서류를 쥔 채, 실거래가 신고, 필증 교부, 실명법 위반자 조사, 과징금 부과, 부동산중개인 소개 등 각종 민원업무를 총괄한다.

윤씨는 “낮에는 일을 해야 하니까 새벽 출동을 하는 전날에는 밤 9시 전후로 잔다. 강동구는 하루 부동산 거래건수가 100건 이상인데 팀원은 4명뿐이라 항상 일이 많다”고 말했다. 1989년부터 27년 동안 강동구·강남구·송파구 등에서 일한 윤씨는 1997년 강남구 새주소 시범사업을 시행하기도 했다. 여전히 ‘말 많은’ 도로명 새주소에 대한 아쉬움이 많다.

경상북도 상주가 고향인 윤씨는 어릴 적 수렵장 근처에서 지냈다고 한다. 윤씨는 “(다른 지방) 부자들이 내려와 지프차를 타고 다니면서 사냥을 하면, 우리가 사냥감이 어딨는지 알려줬다”고 회상했다. 2001년 수렵면허증을 딴 뒤 총기소지허가증, 유해동물 포획승인서까지 받고 ‘취미’로 멧돼지를 잡았다.

도시에 멧돼지가 자주 출몰하면서 공무원 윤씨의 삶도 본격적으로 달라졌다. 멧돼지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파수꾼이 된 셈이다. “올해 서울시에서 포획한 48마리의 멧돼지 중 28마리를 기동단이 잡았다. 자원봉사인데 이들 없이는 멧돼지 퇴치하기가 어렵다”(서울시 자연생태과 자연자원팀 문동일 주무관)는 말이 나올 정도다.

현재 윤씨는 서울시 강동구, 송파구, 종로구 등 9개구에서 올해 말 또는 내년 3월 말까지 멧돼지를 포획할 수 있다. 사냥 금지구역인 북한산 국립공원 안으로 달아난 멧돼지는 총을 쏴 잡을 수 없다. 그 외 지역에서는 포획이 가능하다. 기동단이 포획한 멧돼지는 연구용으로 기증되기도 한다.

점점 더 자주 마을을 침범하는 멧돼지는 주민에게는 공포이자 위협이고, 지자체로선 골칫거리다. 윤씨에게 멧돼지와의 공생법을 물었다. “멧돼지가 도시까지 나타나지 않도록 개체수를 조절하는 수밖에 없어요. 자기들끼리 산에서 잘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하는데 지금은 포획밖에 방법이 없죠.”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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