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전후 한 보수단체, 성미산마을 등에 태극기 강제 게양
강력본드로 깃대꽂이 무단 설치 등 ‘사유재산 침해’ 논란도
강력본드로 깃대꽂이 무단 설치 등 ‘사유재산 침해’ 논란도
자생적 마을공동체로 꼽히는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 주택가에 한 우익 시민단체가 태극기를 무단 게양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단체는 집집마다 깃대꽂이를 강제로 붙여 사유재산 침해 가능성도 제기된다.
25일 성미산마을 주민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마포구 소재의 사단법인 태극기무궁화사랑회는 광복절을 앞둔 지난 11일부터 성산1동(성미산마을 소재), 서교동 일대 집마다 태극기를 자의로 달아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성미산마을은 공동체주택·생활, 공동육아 등이 왕성해 대표적인 마을공동체로 평가받는다. 단독주택이나 저층 연립주택이 대부분으로, 집밖에서 깃발을 내걸기가 용이한 환경이다.
이 마을의 주민은 국기가 무단 게양된 것을 알고 단체 쪽과 동사무소 등에 직접 항의하기도 했다. 주민 여럿은 경찰 신고 여부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태극기무궁화사랑회는 ‘3000가구 태극기 게양’을 목표로 지난 14일 자신들의 누리집에 “성산1동과 서교동에는 온 동네가 태극기가 물결칩니다”는 제목과 함께 “태극기무궁화사랑회 주관으로 서교동, 성산동 대로변과 가가호호(아파트 제외) 태극기를 게양했다”고 홍보했다.
지난해 ‘박정희 태극기 무궁화 선양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이 단체의 사무실 안팎에는 박근혜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 단체의 온라인 카페에는 “광화문에 보훈처가 (초대형) 태극기를 달려고 하니까 ○○○이 반대했단다. 박가(박원순 서울시장을 지칭) 패거리들을 친북좌파들 혹은 빨갱이들이라고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이유를 알겠다. (중략) 태극기와 애국가를 거부하는 뻘갱이들이 서울시 공무원 중에 얼마나 많은지 잘 알 수가 있다” 등의 글들이 걸려있다.
이들은 지난 7월 온라인 카페를 통해 “광복절을 맞이하여 성미산 공동체마을에서 (태극기 달기를) 합니다. 이곳은 국경일에 국기 게양하지 않는 곳으로 낙인찍힌 유명한 동네입니다. 태극기무궁화사랑회에서 이번에는 기적을 만들어 내겠습니다”고 사업 계획을 알리고, 계좌번호와 함께 후원을 요청했다.
문제는 성미산마을 주택에 깃대꽂이까지 이 단체가 강제로 설치했다는 사실이다. 강력본드 등을 이용해 깃대꽂이를 집주인 동의 없이 시공한 셈이다. 한 변호사는 “남의 집에 들어가서 국기를 달았을 경우 주거침입죄도 적용될 수 있지만 골목 집앞에 게양한 것이라면 문제를 제기하긴 어려울 수도 있다. 다만 깃대꽂이를 설치한 건 사유재산 침해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서울 강남구는 지난 15일 공무원들을 동원해 관내 태극기를 게양하고, 수치를 부풀려 ‘광복절 태극기 게양률 90%’라고 홍보해 비판을 산 바 있다.
태극기무궁화사랑회와 강남구의 공통점은 태극기 게양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정작 강남구 주민들은 “스스로 태극기를 달 기회까지 강남구가 (먼저 일괄 게양하면서) 빼앗았다”며 구를 비판하기도 했다.
성산1동의 한 주민도 “태극기를 게양하거나, 게양하지 않을 자유를 침해당했다고 주민들끼리 성토했다. 나라 사랑하는 방식마저 이런 식으로 강요당하는 게 맞느냐”고 물었다. <한겨레>는 이 단체 설명을 더 듣기 위해 사무국장(손전화) 등에게 전화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다음은 ‘국경일 태극기 게양을 해야 한다’고 보는 강남구 중산층 주민이 ‘강남구 태극기 게양률 90%’의 속사정을 보도한 <한겨레>에 최근 보내온 전자우편의 일부다.
“저는 강남구 삼성동 롯데캐슬프리미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과거 국경일에는 한 차례씩 아파트내 방송을 통해 국기게양 내용이 방송되었습니다. 그런데 금번에는 8월14일에 1회, 15일에는 2회 국기게양하라는 내용이 방송되었습니다. 아파트 방송은 긴급재난 등의 목적으로 설계되었는 바, 볼륨도 크게 세트되어 있고, 가정 내에서는 임의로 끌 수도 없게 되어…혹시 무슨 긴급한 사고가 발생되었는지 긴장하게 될 뿐더러, 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비록 1분 내외지만) 아무런 대화도 진행하지 못하게 됩니다.
제가 아파트 관리소장에게 항의를 하였는데, 강남구에서 적극 협조해 달라고 하여 이에 응하였을 뿐이라고 합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을 구청이 갖고 있으므로, 관리소장은 무조건 이러한 요청에 따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또한 8월15일 아침에는 삼성2동 주민센터의 ○○○라는 사람이 직접 저희 집 벨을 눌러서 ‘아직 태극기를 안 달았는데, 빨리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당신이 뭔데 내가 태극기를 달든, 말든, 주민의 휴식을 방해하냐’고 항의했더니 인사말 없이 인터폰을 끊은 채 도주하였습니다. (해당인의 이름은 나중에 관리사무소를 통해서 확인했습니다. (…)
저는 국경일에 국기 게양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편함 혹은 엘리베이터 고지를 통하여 충분히 가능하며, 아파트 방송은 긴급재난, 교통통제, 단수, 단전 등 주민생활에 i)밀접하고 ii)긴급히 필요한 사항에 국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에 해당하지 않는 국기게양 방송을 강요하는 구청과 이를 수용하는 관리사무소 모두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항이 대단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주민생활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를 고치는 것 역시 큰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기사화를 부탁드립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보수단체가 최근 성산1동 한 주택 앞에 강력본드 등을 이용해 깃대꽂이를 강제로 설치한 모습. 사진 주민 제공
서울 마포구에 있는 사단법인 태극기무궁화사랑회가 누리집에 올린 사무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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