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1시30분께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주군청 앞마당에서 주민들이 항의 손팻말을 들고 한민구 장관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농민도 투사로 만들어버리는 대단한 정부’, ‘안보 팔아 정권 유지, 나라 팔아 미국 속국’, ‘사드 대안이 있냐고? 박근혜 탄핵이 대안이다’….
33일 만에 다시 경북 성주를 찾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맞이한 것은 이런 손팻말을 든 주민들의 항의와 야유였다. 한 장관은 지난달 15일 황교안 국무총리와 성주에 왔을 때처럼 계란과 생수병 세례를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200여명의 주민들이 나와 손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했다.
17일 오후 1시35분 성주군 성주읍 성주군청 앞마당에 한 장관이 탄 승합차가 도착했다. 주민과 취재진, 경찰관 등 수백명이 뒤엉키며 아수라장이 됐다. 흥분한 한 주민은 한 장관에게 “미국 국방부 장관 물러가라”고 소리쳤다.
주민들은 ‘사드 정치, 배신의 정치’, ‘5천만 국민을 위해 5만 군민이 죽어달랍니다. 소수라서 죽는 게 애국입니까?’, ‘제3의 지역은 없다. 사드 배치 철회하라’, ‘제멋대로 협상하는 김관용은 이완영과 손잡고 사퇴하라’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했다. 한 장관은 아무 말 없이 성주군청 안으로 들어갔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성주군청 5층 대회의실에서 국방부와 ‘성주 사드배치철회 투쟁위원회’(공동위원장 백철현·정영길·김안수·이재복)의 비공개 간담회가 열렸다. 대회의실 한쪽으로는 4명의 투쟁위 공동위원장과 김항곤 성주군수, 김관용 경북도지사, 이완영 국회의원, 배재만 성주군의회 의장, 이광희 투쟁위 주민위원장 등 9명이 순서대로 앉았다.
맞은 편에는 김현기 범정부티에프현장지원단장, 김윤명 단국대 교수, 유대선 국립전파연구원 원장, 정영주 행정자치부 일반행정정책관, 한 장관, 황희종 국방부 기획조정실장, 이종협 국방부 조사본부장, 허욱구 국방협력단, 강인순 국방부 정책기획차장 등 9명이 앉았다. 다른 주민 26명도 참석해 간담회를 지켜봤다. 이날 간담회는 투쟁위와 국방부의 간담회였지만 투쟁위 쪽에서는 김항곤 성주군수가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반면 정부 쪽에서는 한 장관이 한가운데 앉았다.
김 도지사는 간담회가 시작되고 8분 늦게 도착해 주민들로부터 “시간 좀 지켜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투쟁위는 “녹음을 할 수도 있다”며 간담회에 참가한 주민들의 휴대전화를 모두 회수해갔다. 몇몇 주민들은 “누가 휴대폰 거두래? 우리가 간첩이가?”라며 투쟁위 관계자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17일 오후 경북 성주군청을 찾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해 주민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장관은 인사말에서 “폭염 가운데 성밖숲에서 성주군민 5000여명 모여서 한 목소리로 외치신 내용을 들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습니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먼저 국방부가 사드 배치 부지를 발표하기에 앞서 성주 군민 여러분께 충분히 설명드리지 못했고 적극적으로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점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올립니다”라고 사과했다. 또, “이번 사드 배치 결정은 날로 높아지고 있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주는 심각한 위협으로부터 우리나라의 안위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자위적 조치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만 제거한다면 사드 배치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모로 어려우시겠지만 이러한 정부의 충정을 이해해주시고 국방부 장관으로서 국가의 안위를 지켜야 하는 절박한 마음만 여러분께서 받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성주/글·사진 김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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