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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로컬푸드 재배지 옆 GMO의 습격

등록 2016-08-16 11:03수정 2016-08-16 11:10

[밥&법] 호남평야 한복판 유전자변형 작물
전북혁신도시 주변 정농마을 들머리에 지엠오 반대 펼침막이 걸려 있다. 박임근 기자
전북혁신도시 주변 정농마을 들머리에 지엠오 반대 펼침막이 걸려 있다. 박임근 기자
전북 완주는 친환경적인 로컬푸드로 이름난 곳이다. 2년 전 경기도 수원에 있던 농촌진흥청이 전북 완주로 이전할 때 지엠오(유전자변형생물체) 시범재배지도 함께 왔다. 농진청은 이를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농진청 부지로 문전옥답을 내줬던 농민들은 ‘농촌진흥청이 아니라 농촌망할청’이라고 반발한다. 같은 밥이라고 하기엔 로컬푸드와 지엠오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전북혁신도시 주변 정농마을 들머리에 ‘자연스럽게 길러주세요’라는 내용의 펼침막이 걸려 있다. 박임근 기자
전북혁신도시 주변 정농마을 들머리에 ‘자연스럽게 길러주세요’라는 내용의 펼침막이 걸려 있다. 박임근 기자

“GMO 당신도 먹나요? -로컬푸드-”, “‘자연’스럽게 길러주세요 -로컬푸드-”

지난 12일 전북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 정농마을 들머리에는 지엠오(유전자변형 생물체) 시험재배를 반대하는 펼침막이 내걸려 있었다. 이 마을 근처에 있는 농촌진흥청이 호남평야 한복판에서, 근처 주민에게 알리지 않고 지엠오를 시험재배하고 있다. 마을과 지엠오 시범재배지는 왕복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지난해 11월께 농촌진흥청에서 지엠오 작물을 시험재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주민 여성만(57)씨가 우연히 농진청 철제 울타리에 걸려 있는 ‘유전자변형생물체 사과 시험재배지’란 표지판을 발견했다. 지엠오는 서로 다른 종의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조합한 것이다. 20년 넘게 지엠오의 사람과 환경에 대한 유해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완주 친환경 재배 마을 옆에
유전자변형 작물 시험재배

비오면 재배지 물이 인근 논으로
주민들 농산물 판매 타격 우려

동물·벌레 등 쉽게 드나들어
GMO 이동 법률 위반 논란도

주민 “농진청이 몰래 사업추진”
농진청 “정보공개 다 이뤄져”

■ ‘눈 가리고 아웅’식 표지판만 철거 주민 한영숙(81)씨는 “마을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유전자변형 작물 시험재배가 이뤄져 매우 불안하다. 이를 처음에 알았다면 못 하도록 막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정보공개를 요구하며 항의하자, 지엠작물개발사업단을 운영하는 농진청은 마을 쪽 길가 표지판을 철거하고 주민들이 접근할 수 없는 재배지 구석에만 ‘유전자변형생물체’ 표지판을 남겨두었다.

표지판이 정농마을 주민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주민들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정농마을에는 1마을과 2마을을 합해 131가구, 296명이 살고 있다. 이들은 지엠오 시험재배지의 영향으로 지역 농산물이 팔리지 않을 것을 걱정하고 있다. 정농마을(1마을)에서는 5가구가 쌀 인증(무농약)을 받고 있다. 농진청이 자리잡은 전주혁신도시 주변에 50여 농가가 친환경 재배를 한다.

여성만씨는 “비가 오면 지엠오 시험재배지에서 물이 마을 논으로 다 쏟아져 들어온다. 가로세로 각 5m 크기의 침수정이 있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관리가 안 돼 넘친다. 꽃가루가 바람에 날리고 새들도 수시로 왔다 갔다 한다. 안전시설이 허술한데도 농진청은 문제가 없다고만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3년 5월 미국 오리건주의 한 밀농장에서 재배가 승인되지 않는 유전자변형 밀이 나와 안전성 논란이 일면서, 미국산 밀 국내 수입이 그해 5월부터 8월까지 중단된 바 있다. 이 유전자변형 밀은 농장 근처에서 한 업체가 시험재배를 하다 상업화를 포기해 없앴는데 10년 뒤에 일반 밀밭에 나타났다.

지난 4월 꾸려진 ‘농촌진흥청 지엠작물 개발반대 전북도민행동’ 이세우 위원장은 “만약 호남평야인 전북지역 논밭에 지엠작물이 확산되면 친환경 유기농산물 인증은 취소되고, 국민의 불신이 커져 지역 농산물 판매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 완주 브랜드 로컬푸드에도 직격탄 주민들은 지엠오 시험재배가 완주 농촌경제의 주축인 로컬푸드에도 나쁜 영향을 끼칠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로컬푸드를 통해 소비자는 신선한 농산품을 먹을 수 있고 지역 농민은 안정적 판로를 확보할 수 있다. 완주군은 2012년 4월 관내 용진읍에 로컬푸드 직매장 1호를 개설해 2015년 7곳으로 확충했고, 그해 매출액이 400억원에 달했다. 2015년 4월부터 완주군 관내 82개 학교, 1만2천여명의 학생들에게 로컬푸드를 공급하고, 약 6만명의 로컬푸드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배 과수원 200그루와 벼농사를 하는 백행금(52)씨는 “완주는 로컬푸드로 전국적 명성을 얻은 곳이다. 지엠오 시범재배 사실이 알려지면 로컬푸드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농사만 짓는 일도 힘든데, 지엠오 문제로 싸워야 하니 멍에자루를 등에 하나 더 짊어진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전북 완주군 소양면 어르신들이 로컬푸드 직매장에 보낼 상추를 따고 있다. 완주군 제공
전북 완주군 소양면 어르신들이 로컬푸드 직매장에 보낼 상추를 따고 있다. 완주군 제공
■ 시험재배지 또 발견…엎친 데 덮치다 정농마을 근처에서 지엠오 시범재배지가 또 발견됐다. 지난해 11월 지엠오 사과 시범재배지를 찾아낸 여성만씨는 지난달, 사과 시험재배지에서 전북혁신도시 농생명로를 따라 동쪽으로 약 4㎞ 떨어진 곳에 6만㎡ 규모의 또 다른 지엠오 시험재배지를 발견했다. 그는 이런 사실을 농촌진흥청 지엠작물 개발반대 전북도민행동에 알렸다. 전북도민행동은 지난 8일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유전자원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단체는 “농진청의 국립농업과학원 등은 전북 전주·완주에서 유전자변형 관련 9품목, 43종을 시험재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험재배 단지에서는 ‘유전자변형 생물체의 국가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과 ‘유전자변형 생물체의 국가간 이동 등에 관한 통합고시’에 의한 관리규정을 전혀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실제 시범재배지는 도로 옆에 있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날짐승과 들짐승, 벌레 등이 드나들 수 있게 노출돼 있다.

관련 규정을 보면, △유전자변형 식물을 재배하려고 격리포장시설 설치 때는 야생동물·외부인 등에 의해 유전자변형 식물의 종자나 식물체 일부가 외부로 옮겨지지 않도록 고려해야 한다 △유전자변형 식물이 배수 중에 혼입되지 않도록 조치한다 △태풍·홍수 등 천재지변으로 인해 유전자변형 식물체가 확산되지 않도록 안전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등의 내용이 있다. 하지만 이를 전혀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유전자변형 작물 시험재배 중단 및 시험재배장 폐쇄 △유전자변형 작물 연구·개발 실태 공개 △실태 파악을 위한 민관공동조사단 구성을 촉구했다. 한승우 전북도민행동 정책위원장은 “상반기에 두 차례 농진청에 올해 시험재배 승인현황 등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하지만 공개한 내용이 빈약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등 농진청이 매우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농진청장과의 면담을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 농촌진흥청 아닌 농촌망할청 기업이 지엠오를 개발하는 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정부 주도로 지엠오를 개발하고 있다. 농진청이 2년 전 경기도 수원에서 전북혁신도시로 내려갈 때 지엠오 시험재배지도 함께 옮겨갔다. 농진청은 2020년까지 전국적으로 20품목에 200종의 유전자변형 농작물을 개발할 계획이다.

2년 전 농진청이 올 때만 해도 정농마을 주민들은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모인 농업 연구 기관이 오면 마을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주민들은 구체적인 사업계획도 준비했다. 배·고구마 등 마을 특산물을 이용한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 넝쿨식물로 마을 안길에 터널 만들기 등을 계획했다.

지난 8일 시험재배지 앞에서 전북도민행동이 기자회견을 열어 관리규정이 준수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임근 기자
지난 8일 시험재배지 앞에서 전북도민행동이 기자회견을 열어 관리규정이 준수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임근 기자

하지만 이제는 주민들 사이에서 농촌진흥청이 아니라 ‘농촌망할청’이란 거센 비판이 나온다. 지엠오 시험재배지 2곳을 발견한 여씨는 “농진청이 전북혁신도시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문전옥답을 내주었다. 그런데 농진청이 주민 동의도 없이 비밀리에 일방적으로 지엠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농민은 지엠오 재배지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찬성 이유는 반대 이유와 비슷하다. 지역 농산물 판로 걱정이다. 이 마을 김아무개(50)씨는 “무조건 데모하며 떠든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 농산물 값이 떨어지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지엠오가 거부할 수 없는 세계적 추세라는데, 반대 주민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 저러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전북도와 완주군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의 경북 성주 사드 배치 발표 뒤 성주에서는 행정기관이 사드 배치 반대 주민을 돕고 있다. 지엠오 시범재배지는 중요한 먹거리 안전 문제인데도 전북도와 완주군은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북도와 완산군은 여전히 소극적이거나 관망하는 태도다. 전북도는 “국가 연구기관이 식량주권 차원에서 연구하고 있고 아직 상용화 단계도 아니다. 주민들의 그런 주장은 당혹스럽다. 최근 농진청을 방문해서 현장을 보고 토론하자고 협의했다”고 밝혔다. 완주군 관계자도 “중앙기관의 연구사업을 지방자치단체가 따지기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농민과 농진청 간에 서로 신뢰가 없이 주장이 평행선을 달려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달 주민 여성만씨가 발견한 시험재배지의 출입문에서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박임근 기자
지난달 주민 여성만씨가 발견한 시험재배지의 출입문에서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박임근 기자
농진청은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농진청 관계자는 “정보공개는 다 이뤄졌다. 내부 검토를 거쳐 곧 시험재배지를 공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시험재배지 상시감시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지엠오 연구시설에 대해 해마다 자체 점검을 한다. 주변 지역을 해마다 2차례 모니터링 및 환경영향조사를 해서 오염이나 유출 여부를 조사한다. 올해 1차 조사를 지난 6월에 했고 현재까지 유출이나 오염 사례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농진청은 “지엠오 외부유출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관련 규정보다 엄격한 시설 보완작업을 했고, 일부 진행 중인 작업도 알곡이 여물기 전에 완료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완주/글·사진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밥&법’은 법 때문에 울고 웃는 사람과 현장을 찾아갑니다. 조각난 퍼즐을 맞춰 사건의 이면을 파헤칩니다. 알송달쏭 사건 판례를 살펴보는 ‘판결 체크’와 민생·인권·공익 변호사들이 들려주는 법 이야기 ‘동네변호사가 간다’가 독자들과 만납니다. 법이 바꾼 일상을 들여다보는 연재물 ‘한 문장이 바꾼 세상’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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