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심윤경(왼쪽)씨와 옥인1구역 재개발 반대 주민대표 윤준호씨가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옥인동 윤씨의 자택에서 이 집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두 사람 뒤로 보이는 벽에 옛집의 붉은 벽돌이 그대로 노출돼 보인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서울 종로구 옥인동 47번지 일대. 재개발 해제 여부를 두고 여전히 찬반이 갈리는 곳. 지난달 29일 두 사람이 한참 이 동네를 배회했다. 소설가 심윤경(44)씨와 이 동네 주민 윤준호(50)씨다.
공통점이 있다. 윤씨가 사는 옥인동 집은 수십년 전 심씨의 집이었다. 심씨가 1972년 태어나 6살까지 살던 집을 윤씨가 2015년 새로 단장해 살고 있다. 윤씨가 오기 전에는 폐가로 버려져 있었다.
심씨는 2002년 자신이 태어나 26년을 살았던 옥인동을 배경으로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자전적 성장소설을 썼고, 그해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소설에는 심씨가 이 집에 살 때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인 할머니, 엄마와 아빠, 주인공인 소년 그리고 소년의 여동생까지 심씨가 이 집에 살 때의 가족 구성원과 같다.
심씨에게는 “인간이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누리고 간” 집이고, 윤씨에게는 “앞으로 평생 살고 싶은” 집이다.
어른이 되어 옥인동을 떠나 살던 심씨는 최근 유년기 집을 찾아나서며 윤씨도 만났다. 심씨 가족의 작은 방이 윤씨 가족의 부엌이 되었고 어린 심씨가 동네 구경을 하던 베란다는 윤씨 아들의 방으로 바뀌었지만, 심씨는 수십년 만에 “예뻐진” 옛 집을 보니 “집이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구나”라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소설 속 집과 현실의 집을 감나무가 잇고 있다. 소설 속 동구(주인공)의 할머니이자 실제 심씨의 할머니가 심은 감나무가 윤씨의 정성으로 40년 넘는 세월을 여태껏 견디고 있다. 심씨는 이날 “이 감나무를 할머니가 그렇게 애지중지하셨다. 아랫동네로 이사할 때 감나무를 옮겨오지 못한 걸 한스러워했다”라며 “인왕산 바위같은 할머니”와 감나무에 대한 추억을 윤씨에게 들려주며 소설을 선물했다. 윤씨는 직접 담근 매실식초를 심씨에게 선물했다.
옥인1구역 재개발 반대 주민대표 윤준호씨의 자택. 집 안마당 한가운데 감나무가 서 있다.
그러나 감나무와 집은 물론이거니와 소년 동구가 뛰어놀던 골목길, 동네 아이들이 들락거리던 작은 원씨네점방(가게), 동네에서 부유하기로 소문난 삼층집까지 죄다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공간이 될 뻔했다.
재개발 바람 탓이다. 서촌 일대 옥인동은 구한말 윤덕영(순종의 두번째 부인인 순정효황후의 큰아버지)의 부지로 유서 깊은 터전이면서,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과 지방이주민들의 거주지이기도 했다. 청계천변 판잣집 철거민들까지 인왕산 쪽으로 거주지를 옮겨 오면서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주택지가 커졌지만 1979년 미국 카터 대통령 방한을 앞두고 대대적인 철거가 이뤄졌다. 철거 후 공원과 연립주택 등이 들어섰다. 반세기를 버텨낸 한옥뿐 아니라 공간 자체가 역사인 셈이다.
소설가 심윤경씨가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옥인동 옥인1구역 재개발 반대 주민대표 윤준호씨 자택에서 과거 이 집에서 할머니와 살던 때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 뉴타운 바람과 함께 재개발 조합이 들어서며 격변기를 다시금 맞았다.
그러나 정작 주민 윤씨는 재개발에 반대한다. 매주 수요일 아침 한 시간씩 주민 30여명과 시청 앞에 나가 재개발 철회 요구 집회도 연다.
이곳으로 이주하며 윤씨도 재개발 이익을 기대하는 마음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5층 규모의 12개동 아파트(300가구)가 들어서도 개발수익이 많아 보이지 않았다. 주민이 내야 하는 추가분담금 부담이 컸다. 자연스레 재개발 이익을 포기하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동네의 매력이 눈에 들어왔다.
심씨는 윤씨와 두 시간 동안 감나무집과 동네, 개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한 공간을 공유하는 사이라 금세 친해졌다. 중국인 관광객용 대형버스 주차장을 서촌 지하에 설치한다는 계획을 두고도 걱정을 나눴다. 동시에 낙후된 동네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나눴다.
옆동네인 사직동에 살고 있는 심씨는 옥인1구역 재개발 해제 가능 소식을 들었을 때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양가적 감정을 느꼈어요. 처음에는 아파트가 생기면 내가 가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시세를 알아봤죠. 그러면서도 아파트가 들어서면 적합한 동네일까 의문이었어요. 그런데도 한국에선 땅이나 집이 정서적 측면보다 전 재산이란 의미가 강하니까….친구들 말 들어보면 아직 도시가스가 안 들어오는 집도 있어요.”
낙후된 동네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공간 고급화’는 재개발을 지양하는 박원순식 도시재생의 과제다. 재개발 반대가 현상 유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동시에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도 방어해가야 한다.
윤씨도 “10번 이상 이사 다녔다. 이제는 머물고 살고 싶다. 처음에 이 동네 왔을 때는 주민들이 재개발 기대감 때문인지 낡은 집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뒀는데, 이제는 고쳐 사는 주민도 늘고 있다”며 “구한말 한옥부터 최근 집까지 다양한 연대를 볼 수 있는 이 동네의 가치를 지켜갈 수 있는 대안 개발을 원한다”고 말했다.
소설가 심윤경(오른쪽)씨와 옥인1구역 재개발 반대 주민대표 윤준호씨가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옥인동 윤씨 자택에서 이 집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심씨도 어린 시절을 이 집에서 보냈다. 윤씨는 오래된 이 집을 개축하면서 담벼락과 마당의 감나무, 벽 등 여러 곳을 옛집의 원형 그대로 살렸다.
이런 목소리들이 실려 옥인동 47번지(옥인1구역)는 이르면 10월께 재개발 해제가 확정될 전망이다. 2007년 주택재개발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지 9년 만이다. 2007년 12월 말 서울시 고시로 정비구역에 지정된 후 2008년 조합 설립, 2009년 사업 시행까지 마쳤지만 한옥 보존과 주민 반대, 박원순 시장의 시정방향 등으로 2011년 말 관리처분계획인가가 보류됐다.
지지부진한 추진 일정에 지난달에는 전체 194가구 중 87가구가 재개발 반대 서명을 서울시에 제출한 상태다. 김장수 서울시 도시재생본부 재생협력과장은 “주민 대상 설명을 했고 해제 절차가 진행 중이다. 미래를 확언할 수 없지만, 제대로 진행된다면 전문가 자문, 도시계획위원회 자문을 거치고 주민투표 여부를 결정하고 구청에 통보한다. 이르면 두 달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글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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