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재배 연구가 안대성씨. 사진 노근리 국제평화재단 제공
“아픔과 슬픔의 역사를 사랑과 평화, 아름다움으로 승화하려 합니다.”
한국전쟁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충북 영동 ‘노근리 평화공원’이 장미공원으로 거듭난다. 노근리 국제평화재단과 장미 재배·연구가 안대성(67·사진)씨는 노근리 평화공원 안팎에 장미공원을 조성하기로 했다고 14일 밝혔다.
경남 산청에서 장미를 재배해온 안씨는 지난 10일 노근리 평화재단에 장미 1500포기를 기증한 데 이어 2018년까지 노근리 평화공원과 주변에 장미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어쩌면 아직까지 노근리 언저리에 머무르고 있을 희생자들의 넋을 장미로 달래고 싶었어요.”
노근리 평화공원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25~29일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도 쌍굴다리 주변에서 미군 폭격으로 스러져간 희생자와 유족 등을 추모하려는 뜻에서 2011년 10월 조성됐다. 국비 191억원을 들여 사건 현장 주변 13만2240㎡에 위령탑·평화기념관·교육관 등을 조성했지만, 아직까지 군데군데 휑한 곳이 많아 을씨년스럽다. 학생 등을 빼면 일반 시민 관람객도 많지 않은 편이다.
안씨에게 장미공원 조성을 제안한 서정길(60) 노근리 평화재단 사무처장은 “장미를 대하듯 편하게 평화와 인권, 역사를 만나게 하려는 뜻에서 장미공원 조성에 나섰다”고 말했다.
노근리 평화공원은 2018년 5월까지 안씨의 도움을 받아 공원 안 생태공원, 야외전시장 주변 등 6만9000여㎡에 200여종 2만여포기의 장미를 심어 화원을 꾸밀 참이다.
안씨는 “사건 현장인 노근리 쌍굴다리 주변엔 희생자들의 순수한 마음을 뜻하는 하얀 장미를 심고, 공원 안 곳곳에 사랑·지조 등을 뜻하는 형형색색의 장미를 배치할 생각이다. 얼핏 보면 장미공원이지만, 그 안에 평화와 인권, 역사, 사랑, 전쟁의 아픔 등을 담는 그림을 그리는 셈이다”고 말했다.
장미공원은 그의 꿈이기도 하다. 농고에서 원예를 익힌 그는 평생 장미와 함께 살아왔다. 경기도 안양 등지에서 40여년동안 장미 농원을 운영하던 그는 2011년 가을 부인 김문희씨와 함께 경남 산청 부리마을로 귀농해 유토피아 농원을 열었다. 고향인 평택보다 아랫녘을 택한 것도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장미를 잘 키우기 위해서다.
“장미는 원래 따뜻한 곳을 좋아해요. 잘 자라고 꽃색도 좋거든요. 그래서 남쪽을 찾다가 지리산 언저리를 택했지요. 번잡한 도회지를 떠나 장미와 더 친해지려는 뜻도 있었구요.”
산청에서도 성공적으로 장미 꽃을 피운 그는 이듬해부터 농원을 봄·가을 무료 개방했다. 소박하게 시작한 꽃밭 개방 소문이 퍼지면서 해마다 5월 주변 농가들도 참여하는 마을축제로 이어졌다. 화려한 장미 뿐만 아리라 안씨가 취미 생활로 시작된 각종 전통문양의 물레방아와 그네, 테이블 등 목공예품을 함께 전시해 볼거리를 더했다.
“올해 축제 땐 줄잡아 5만명 정도 찾아 주니 기쁘고 반가웠지만, 솔직히 힘겹기도 했습니다. 이제 더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기 위해 노근리 평화공원에 뿌리를 내리려 합니다.”
그는 새달 노근리로 이사할 준비 때문에 손이 바쁘다. 노근리 평화공원은 내년부터 장미가 절정을 이룰 5월께 ‘노근리 평화공원 장미 축제’를 열 참이다. 해마다 노근리 사건 발생일 앞뒤로 열던 노근리 위령제도 이때 함께 여는 것을 검토하는 등 사계절 시민들이 찾아와 힐링할 수 있는 평화공원의 대중화를 2기 목표로 삼았다.
“전쟁 속에서도 꽃은 피고, 우린 그 꽃을 통해 희망을 보지요. 전쟁의 아픔과 슬픔을 본 이들이 장미를 통해 평화와 인권, 사랑과 희망을 떠올렸으면 합니다.”
평생 장미를 사랑해온 안씨의 소중한 바람이다.
청주/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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