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땅이 ‘재벌을 위한 놀이터’가 된 지 오래다. 그들의 셈법에 따라 우리 삶은 흔들리고 추락하기도 한다. ‘우리를 위한 놀이터’는 불가능한 것인가?
지난해 12월 회원 100여명으로 출발한 ‘마포 공동체경제 네트워크 모아’(이하 모아)의 윤성일 상임대표(41·사진)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모아는 출범선언서에서 ‘공동체 경제로, 빼앗긴 것들을 탈환하자’고 했다. 지금의 경제행위가 자본의 이익에 휘둘린 것이라면, 자신들이 표방한 공동체 경제에선 구성원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생산과 소비 활동을 해나가겠다고 했다. 그 결과는 “더불어 행복한 삶”이다.
모아는 지난 5월11일 대안화폐 유통 실험에 나섰다. 공동체 경제를 위한 첫발을 뗀 것이다. 하반기엔 2억5천만원가량의 공동체 기금 조성에도 나선다. 윤 대표를 지난 21일 서울 마포 망원시장 내 카페에서 만났다.
마포는 지역 주민과 상인, 활동가, 진보 정당 사이에 오랜 연대의 경험이 있는 곳이다. 14년 전 성미산 지키기 운동을 비롯해 상암동 이랜드 비정규직 투쟁(2007년), 홍익대 앞 두리반 싸움(2009년),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저지 운동(2012년) 등 굵직한 연대투쟁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다. 이런 지역운동의 물줄기가 모아로 모아진 것이다.
“8월 초까지 공동체 가게 이용권인 지역 화폐를 2천만원가량 발행할 생각입니다. 1천만원은 이미 팔렸죠.” 공동체 가게는 재래시장인 망원시장 내 23곳(전체 80곳)을 포함해 모두 45곳을 확보했다. 이 화폐는 공동체 가게에서 현금처럼 사용되고 상인에게 현금으로 내줄 땐 5%의 지역기금을 뗀다. 모아 회원은 4만원 이상 화폐 구매 땐 5%의 추가 이용권을 받는다. 예컨대 회원이 5만원으로 이용권을 살 경우 2500원을 추가로 받게 되고, 이 소비로 2500원가량의 지역기금이 쌓인다. 소비의 이익이 대기업으로 흘러가는 대형마트나 맥도날드 같은 점포는 공동체 가게에 들어갈 수 없다. 지역기금의 쓰임새는 시범사업이 끝나는 8월 초 화폐 사용자와 공동체 가게 사장들이 직접 결정한다.
모아는 출범 때 ‘공동체 경제’를 이렇게 설명했다. ‘소비 이익을 우리를 위해 쓰고, 소비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잉여자금을 통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협동을 통해 생산하고 공유한다.’
현재 회원은 170여명이다. 6개월 사이 70여명 늘어난 것이다. 모아의 꿈이 구체화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세력이 필요할 것이다. 윤 대표에게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는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 사업 진척의 속도가 더디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올해 목표인 “회원 1천명 확보와 지역 화폐의 안정적 운용”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각 단체의 일부 활동가들이 뜻밖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기존 체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겠지요.”
그럼에도 그가 자신을 갖는 근거는 사용자들과 상인들의 반응이다. “이용권을 써본 사람들은 대부분 평가가 좋아요. 소비가 새로운 관계 형성으로 이어지고 기금 모금에도 동참하니 매우 뿌듯해합니다.” 지난 12일 마포 성산동에서 열린 도심형 농부시장 마르쉐 장터에선 주최 쪽이 취지에 적극 호응해 380만원어치가 유통되기도 했다.
“기금 5%를 떼는데도 직접 전화해 동참하겠다는 가게가 세 군데나 됐어요. 돈 벌려는 것보다는 지역 주민, 단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손잡고 싶고, 생존을 위해 대안을 발견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죠. 공동체 가게 1천곳 확보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마포 주민· 활동가 등 100여명
지난해 말 ‘경제 탈환’ 모아 출범
“자본 아닌 공동체 위한 경제를”
5월부터 대안화폐 유통 시작
망원시장 20곳 등 45곳 가게 참여
“소비로 관계 형성, 기금 마련도”
올 연말쯤 화폐 유통 목표는 월 1억원이다. 이 경우, 지역기금은 매달 500만원 모을 수 있다. “지역기금의 용처를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시점이 사업 확장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겁니다.” 소비로 발생한 이익이 자신들을 위해 쓰이는 것을 보고 호응이 더 커질 것이란 얘기다.
모아 화폐의 모델은 독일 뮌헨 지역의 킴가우어 지역 화폐다. 2003년 시작해 가맹점 630곳에 3600여명이 사용하고 있다. “킴가우어 모델은 시민, 민중 단체가 지역 화폐를 3% 싸게 사서 회원들에게 제값을 받고 파는 방식이지요.”
왜 ‘공동체 경제’인지, 물었다. “경제가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된다, 파국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많게는 수천명인 지역 단체 회원들이 힘을 모은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봤다. “울림두레생협만 해도 회원이 9천명이고, 마포의료생협과 민중의 집도 1천명과 400명의 회원이 있어요. 하지만 각 회원 사이의 연대 수준이 엄청 낮아요. 여러 공동체 회원들이 힘을 모은다면 현 시스템과 맞설 수 있다고 봤어요.”
연세대 경영학과 95학번인 윤 대표는 2001년부터 마포에서 살고 있다. 2004년 민주노동당 마포지역 활동가로 진보정치 운동에 뛰어든 이래 네 차례 출마(구의원 세 번, 국회의원 한 번) 경험도 있다. 모두 낙선했다. 지역 사랑방 구실을 하는 카페 ‘우리동네 나무그늘’을 2011년 만들어 주민들과 함께하고 있다. 2012년 통합진보당을 나와 지금은 당적이 없다.
진보 정당 시절엔 비정규직법 개정 등 제도 개선 싸움에 주력했다. 그리고 국가와 맞섰다. “10년 전에 비해 지금은 자본주의가 전면화되었지요. 일용직 노동자도 더 늘었고요. 인간의 존엄성, 행복, 생존의 가치가 더할 수 없이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어요. 그래서 대안도 다양해져야 합니다.”
윤 대표는 모아의 미래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마포가 10년 뒤 한국의 몬드라곤(스페인)이나 퀘벡(캐나다)으로 불리는 걸 상상합니다.” 두 곳은 이탈리아 볼로냐와 함께 세계 3대 사회적 경제 모델 지역으로 꼽힌다.
강성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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