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먼저, 즐겁고 편안한 주말 아침에 소름 끼치는 얘기를 늘어놓게 돼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립니다. 경기도지방경찰청과 ‘악마 같은 시장’이 있는 성남시를 출입하고 있는 김기성입니다. 20년 넘게 기자생활을 했지만 이런 문체로 기사를 쓰기는 처음입니다. 악마처럼 속삭여 보렵니다.
저는 그동안 악마 같은 사람들을 참 많이도 봐 왔습니다. 놀이터에서 놀던 예쁜 어린이들을 끌고 가 살해·암매장한 극악무도한 인간(2007년 안양 예슬·혜진이 사건)을 비롯해, 길 가던 여성을 납치·살해한 엽기 살인범(2012년 오원춘 사건)도 보았습니다. 최근 친아들을 학대해 숨지게 한 것도 모자라 주검까지 훼손한 끔찍한 부모(2016년 1월 부천 초등생 사건)도 제가 본 악마 같은 사람들입니다. ‘미국산 악마’도 봤지요. ‘혈맹’을 지켜주겠다고 와선 한국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미군 병사 케네스 마클(1992년 동두천 윤금이씨 살해사건)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줄기차게 사건·사고를 담당하다 보니 악마들을 보는 게 일상이 된 것이지요.
그런데 최근에는 ‘묘한 악마’도 보고 있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말하는 바로 그 악마 말입니다. 김 대표는 지난 25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 “(이재명 시장의) 청년배당은 악마의 속삭임이자 달콤한 독약”이라고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 허락이 없는’ 정책을 펴는 이 시장은 악마이고, 청년들은 악마가 주는 독약을 날름 받아먹고 있다는 것이지요.
과연 그럴까요? 청년배당은 성남시에 주민등록을 두고 3년 이상 거주한 24살 청년에게 일정 금액의 지역화폐(성남사랑상품권)를 분기별로 지급해, 청년의 기본권을 보장하자는 취지로 만든 제도입니다. 지역화폐를 청년들이 소비해 골목상권도 살리자는 것이지요. 시는 지난 20일부터 해당 청년 1만1300여명에게 1분기 배당금 12만5000원을 지급했습니다. 정부가 반대해 절반만 먼저 집행했습니다. 벌써 9900여명이 배당금을 타갔습니다.
이를 청년을 상대로 한 ‘매표 행위’라고 비난해온 새누리당은 기겁을 했을 겁니다. 급기야 김무성 대표까지 나서 순진한 청년들이 ‘악마의 속삭임’에 놀아나는 꼴을 못 보겠다며 중단을 촉구하고 나선 거지요. 일부에서 상품권을 ‘깡’(현금 할인) 해준다는 얘기가 돌자, 김 대표는 ‘캬~ 거봐라’며 “야당 시장이 인기를 얻기 위해 세금만 낭비하는 것”이라는 비난을 쏟아냈고요.
‘깡’은 분명 부작용입니다. 하지만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한 온누리상품권이나 백화점상품권 등 유가증권은 속성상 ‘깡’이 항상 존재합니다. ‘깡’이 무서워 상품권 발행 목적 자체를 부정하는 게 타당한 것일까요? 청년 복지정책의 본질을 가리기 위해 부작용만 침소봉대하는 모양새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성남시가 강행하는 복지정책은 이것 말고 중학교 무상교복(신입생 부모에게 현금 15만원 지급)과 산후조리 지원 사업(산모에게 25만원의 지역화폐 지급) 등도 있는데, 왜 청년배당만 유독 세게 ‘씹히는’ 걸까요? 무상급식처럼 다른 자치단체로의 파급력이 강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자칫 청년층을 향한 ‘총선 의제’를 야당에 빼앗기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다는 것이지요.
민주주의는 구성원이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국가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세금을 걷어 부의 재분배와 복지의 폭을 넓혀 나가는 일을 해야 합니다. 고령화 시대라고는 하지만, 노인과 마찬가지로 청년 역시 이 나라 구성원으로서 사회·경제적 평등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 권리가 달콤한 독약이고, 이를 보장하려는 사람이 정말 악마일까요? 저는 세월호 참사를 취재하면서 진짜 악마를 보았습니다. 수백명의 아들과 딸, 아니 청년들이 차가운 바닷물에 수장되는 장면이 생중계되는데도 눈 하나 까딱 않으며 지켜본 것도 모자라, 왜 그들이 그토록 참혹하게 숨져갔는지 숨기려는 숱한 ‘진짜 악마들’을 말입니다.
김기성 지역에디터석 수도권팀 기자 player009@hani.co.kr
김기성 지역에디터석 수도권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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