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해넘기는 세월호 대책
세월호 참사 1년8개월이 되도록 진상 규명과 선체 인양이 안 된 상태에서 정부가 공언한 세월호 참사 피해 대책도 겉돌며 또 한 해를 넘어간다. 지난 4월16일 전남 팽목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돌을 맞아 “사고 당시의 충격 때문에 여전히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이 하루속히 그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돕겠다”고 했다. 정부와 새누리당도 세월호 집중피해 지역인 안산 주민들의 심리지원서비스를 위한 트라우마센터 건립과 공동체 회복을 위한 공동체 복합시설 설치 등의 ‘반짝 약속’을 했다. 하지만 이들 약속은 시간이 지나면서 반토막 나거나 세월호 구조에서 ‘골든타임’을 놓쳤듯 적기를 놓친 채 ‘헛공약’이 되어가고 있다.
정부·새누리당이 쏟아낸 약속
반토막 나거나 흐지부지 상처입은 공동체 회복 돕는 시설
이제야 용역…“사고직후 바로 했어야” 말만 거창했던 트라우마센터
임대 오피스텔서 근근이 운영
추모사업·재단은 공수표 될판 ■ ‘골든타임’ 놓친 공동체 복합시설 26일 안산시 와동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주부 이아무개(50)씨는 “사고 이후 저도 동네도 멘붕이었다. 아파트 앞 상점들은 밤 9시면 불이 꺼지고 적막했다”고 말했다. 지역경제는 꺼지고 수십년간 함께 살면서 ‘이웃집 숟가락 수까지 안다’던 마을공동체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안산시가 지난 6~7월 이 지역 주민 963명을 상대로 벌인 ‘세월호 사고 이후 주민의식조사’에서 참사 이후 55.2%가 ‘이웃간의 아껴주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하지만 44.8%는 ‘주민들 사이의 의견 차이와 갈등도 발생했는데 이 중 15%가 침체된 지역경제 때문’이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주민간 갈등도 커졌지만 공동체 회복의 열망도 뜨거웠다. 지난 1월 ‘4·16세월호 참사 피해 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자, 정부는 안산시에 세월호 피해자와 주민들의 심리적 안정과 공동체 회복 지원을 위해 공동체 복합시설을 설치하겠다고 했다. 이에 안산시는 공동체 복합시설이 빠를수록 좋다고 보고 건축 부지를 낼 터이니 건축비 100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으나 수용이 안 됐다. 이날 안산 단원구청에서 만난 김도훈 안산시 희망마을사업추진단장은 “공동체 회복은 세월호 사고 터지고 바로 했어야 했다. 구조 실패 때처럼 이번에도 골든타임을 놓쳤다. 처음에 주민들이 힘들어할 때부터 가까이 가주고 챙겨주고 했어야 했는데 못 했다. 일반 시민들은 당연히 이해해주고 기다려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보니 이해해줄 사람들(지역 주민들)이 더 힘든 존재가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11월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 용역에 착수했지만, 용역은 내년 2월에나 끝난다. 안산시 관계자는 “그나마 할지 안 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실체가 없다”고 말했다. ■ 반쪽난 트라우마센터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지명자는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이던 지난해 4월28일 “세월호 사망 실종자가 집중된 안산지역 시민에 대한 심리지원서비스가 체계적 지속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정신건강 트라우마센터를 설치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1년이 휠씬 더 지난 이 계획은 반쪽짜리가 되어버렸다. 안산시와 유족들은 애초 안산시가 부지를 제공할 터이니 트라우마센터를 포함해 심리적 불안 등에 따른 내과치료 등 4~5개의 진료과목이 포함된 병원 건립을 정부에 요청했다. 하지만 정부는 비용이 300억원으로 많이 드는데다 트라우마 치료 외 다른 증상은 기존 병원을 이용하라는 태도를 고수했다. 국립트라우마센터 등 거창한 계획은 결국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온마음센터)로 쪼그라들었다. 안산시청 인근 오피스텔을 임대해 문을 연 센터는 보건복지부가 20억원, 경기도가 20억원의 연간 운영비를 각각 부담해 근근이 운영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뒤늦게 100억원을 들여 안산지역에 트라우마센터를 짓겠다며 설계비 3억8천만원을 내년 예산에 반영하기 위해 올해 기획재정부와의 협의를 벌였지만 설계비는 전액 삭감됐다. 안산시 관계자는 “트라우마센터 건립은 물건너간 상태다. 지금과 같은 임시 방편적 시스템으로 가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 진척 없는 4·16 추모사업과 재단 세월호 사고 직후인 2014년 새누리당은 세월호 사고 피해자 추모관과 추모비 건립 등 사고 피해자 지원 등을 위한 결의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정부 역시 특별법에 따라 안산지역 추모사업과 4·16재단 등 4·16 세월호 참사 피해 구제 및 지원사업 16가지를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공원과 추모기념관, 추모비 건립 등의 추모시설 사업과 재단 설립 문제는 2년이 다 되도록 결정조차 못 내리고 있다. 안산시는 세월호 선체 인양이 이뤄지는 내년 7~8월이 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추모사업과 재단 설립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정부의 추모사업 기본계획에 대한 외부 용역은 내년 3월에나 시작돼 11월까지 이어질 상황이다. 추모사업을 주도할 소관 정부 부처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안산시 관계자는 “정부 입장대로라면 내년 1년은 추모사업에 대한 기본계획만 용역하겠다는 것이다. 그나마 기본계획이 나오면 뭐하나. 추모사업을 책임지고 주도할 소관 부처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이라고 말했다. 소관 부처가 없어 사업계획과 예산 확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위한 재단의 설립 역시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유가족 등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이 이뤄지려면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나 제주 4·3평화재단처럼 이를 책임질 재단이 있어야 하는데 이 역시 논의도 되지 않은 상태다. 안산와이엠시에이 류홍번 사무총장은 “세월호 이후 정부가 안산지역에 뭘 한다고 약속은 많이 했지만 정작 제대로 이뤄졌다는 체감이 없다. 이게 또다른 불신을 낳는다. 지역에서는 트라우마센터도 결국은 몇년 시늉하다 없어지겠지라는 우려가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안산/홍용덕 기자 [관련기사]
■주민의 힘…세월호 눈물의 땅 ‘고와선’에 움튼 기적
■세월호 ‘희망씨앗’의 진화…내년 40개로 확대
■정부의 약속…뭐 하나 제대로 지킨 게 없다
반토막 나거나 흐지부지 상처입은 공동체 회복 돕는 시설
이제야 용역…“사고직후 바로 했어야” 말만 거창했던 트라우마센터
임대 오피스텔서 근근이 운영
추모사업·재단은 공수표 될판 ■ ‘골든타임’ 놓친 공동체 복합시설 26일 안산시 와동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주부 이아무개(50)씨는 “사고 이후 저도 동네도 멘붕이었다. 아파트 앞 상점들은 밤 9시면 불이 꺼지고 적막했다”고 말했다. 지역경제는 꺼지고 수십년간 함께 살면서 ‘이웃집 숟가락 수까지 안다’던 마을공동체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안산시가 지난 6~7월 이 지역 주민 963명을 상대로 벌인 ‘세월호 사고 이후 주민의식조사’에서 참사 이후 55.2%가 ‘이웃간의 아껴주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하지만 44.8%는 ‘주민들 사이의 의견 차이와 갈등도 발생했는데 이 중 15%가 침체된 지역경제 때문’이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주민간 갈등도 커졌지만 공동체 회복의 열망도 뜨거웠다. 지난 1월 ‘4·16세월호 참사 피해 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자, 정부는 안산시에 세월호 피해자와 주민들의 심리적 안정과 공동체 회복 지원을 위해 공동체 복합시설을 설치하겠다고 했다. 이에 안산시는 공동체 복합시설이 빠를수록 좋다고 보고 건축 부지를 낼 터이니 건축비 100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으나 수용이 안 됐다. 이날 안산 단원구청에서 만난 김도훈 안산시 희망마을사업추진단장은 “공동체 회복은 세월호 사고 터지고 바로 했어야 했다. 구조 실패 때처럼 이번에도 골든타임을 놓쳤다. 처음에 주민들이 힘들어할 때부터 가까이 가주고 챙겨주고 했어야 했는데 못 했다. 일반 시민들은 당연히 이해해주고 기다려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보니 이해해줄 사람들(지역 주민들)이 더 힘든 존재가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11월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 용역에 착수했지만, 용역은 내년 2월에나 끝난다. 안산시 관계자는 “그나마 할지 안 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실체가 없다”고 말했다. ■ 반쪽난 트라우마센터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지명자는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이던 지난해 4월28일 “세월호 사망 실종자가 집중된 안산지역 시민에 대한 심리지원서비스가 체계적 지속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정신건강 트라우마센터를 설치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1년이 휠씬 더 지난 이 계획은 반쪽짜리가 되어버렸다. 안산시와 유족들은 애초 안산시가 부지를 제공할 터이니 트라우마센터를 포함해 심리적 불안 등에 따른 내과치료 등 4~5개의 진료과목이 포함된 병원 건립을 정부에 요청했다. 하지만 정부는 비용이 300억원으로 많이 드는데다 트라우마 치료 외 다른 증상은 기존 병원을 이용하라는 태도를 고수했다. 국립트라우마센터 등 거창한 계획은 결국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온마음센터)로 쪼그라들었다. 안산시청 인근 오피스텔을 임대해 문을 연 센터는 보건복지부가 20억원, 경기도가 20억원의 연간 운영비를 각각 부담해 근근이 운영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뒤늦게 100억원을 들여 안산지역에 트라우마센터를 짓겠다며 설계비 3억8천만원을 내년 예산에 반영하기 위해 올해 기획재정부와의 협의를 벌였지만 설계비는 전액 삭감됐다. 안산시 관계자는 “트라우마센터 건립은 물건너간 상태다. 지금과 같은 임시 방편적 시스템으로 가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 진척 없는 4·16 추모사업과 재단 세월호 사고 직후인 2014년 새누리당은 세월호 사고 피해자 추모관과 추모비 건립 등 사고 피해자 지원 등을 위한 결의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정부 역시 특별법에 따라 안산지역 추모사업과 4·16재단 등 4·16 세월호 참사 피해 구제 및 지원사업 16가지를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공원과 추모기념관, 추모비 건립 등의 추모시설 사업과 재단 설립 문제는 2년이 다 되도록 결정조차 못 내리고 있다. 안산시는 세월호 선체 인양이 이뤄지는 내년 7~8월이 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추모사업과 재단 설립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정부의 추모사업 기본계획에 대한 외부 용역은 내년 3월에나 시작돼 11월까지 이어질 상황이다. 추모사업을 주도할 소관 정부 부처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안산시 관계자는 “정부 입장대로라면 내년 1년은 추모사업에 대한 기본계획만 용역하겠다는 것이다. 그나마 기본계획이 나오면 뭐하나. 추모사업을 책임지고 주도할 소관 부처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이라고 말했다. 소관 부처가 없어 사업계획과 예산 확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위한 재단의 설립 역시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유가족 등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이 이뤄지려면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나 제주 4·3평화재단처럼 이를 책임질 재단이 있어야 하는데 이 역시 논의도 되지 않은 상태다. 안산와이엠시에이 류홍번 사무총장은 “세월호 이후 정부가 안산지역에 뭘 한다고 약속은 많이 했지만 정작 제대로 이뤄졌다는 체감이 없다. 이게 또다른 불신을 낳는다. 지역에서는 트라우마센터도 결국은 몇년 시늉하다 없어지겠지라는 우려가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안산/홍용덕 기자 [관련기사]
■주민의 힘…세월호 눈물의 땅 ‘고와선’에 움튼 기적
■세월호 ‘희망씨앗’의 진화…내년 40개로 확대
■정부의 약속…뭐 하나 제대로 지킨 게 없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