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에 퍼지는 희망
지난 12일 경기도 안산시청에서 열린 ‘희망씨앗 마을을 꿈꾸다’라는 주민공동체 창안대회에서 세월호 참사 집중피해지역인 안산시 고잔1동, 와동, 선부3동에서 활동해온 39개의 희망씨앗과 회원 300여명이 ‘내가 살고 싶은 마을은?’이라는 ‘희망마을’ 계획을 발표했다. 안산시희망마을사업추진단
안산 고잔동·와동·선부동 세 동네 주민들이 스스로 공동체회복 나서
‘달콤창고’부터 ‘곤충체험관’까지
‘희망씨앗’ 이름의 39개 팀 생겨
“소통이 이런거구나 느꼈어요” 창고가 문을 연 것은 지난달 30일이었다. 주민들은 아파트 경비가 자동화되면서 빈 경비초소 활용을 놓고 고민하다 안산시 희망마을사업단이 하는 ‘희망씨앗’에 응모해 달콤창고를 열었다. 처음엔 걱정도 컸다. 물건이 채워질까? 한꺼번에 물건이 동나면 어쩌나? 하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곳을 찾은 주민들은 커피를 먹을 수 있는 사랑방을 만들자고도 했고, 물품나눔에서 음식나눔을 하면 어떨까 하는 제안들을 쏟아놓았다. 창고를 여는 데 참여한 주민 이경란(47)씨는 “아, 정말 소통이 이런 거구나 했죠. 그동안 우리가 서로 손을 먼저 안 내밀었을 뿐이구나. 이제 더 나은 것을 찾을 수도 있겠구나”라며 환하게 웃었다. 선부3동에 달콤창고의 문을 연 배경에는 세월호 참사가 자리잡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0개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단원고가 있는 안산지역의 주민들은 사고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다. 상처를 받지 않을까 해서 서로서로 말을 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이야기가 나오면 지금도 아파한다. 특히 세월호 참사로 204명이 숨진 ‘고와선’(고잔1동과 와동, 선부3동)은 1980년대 안산신도시 1기 때 만들어졌거나 직후 세워진 3~4층 규모의 다세대·연립주택들이 밀집한 지역이다. 이 때문에 아이가 지나가면 누구 집 아들딸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수십년간 함께 살아온 이웃들이 많은 곳이었지만 세월호 직격탄을 맞은 초기에는 이웃 간 왕래도 끊기고 거리는 정적에 잠겼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에게 당시를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거리에서는 차들이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시민들은 슬픔을 표시하는 검은색 옷을 많이 입고 다녔다.” ‘고와선 희망마을 만들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슬픔이 유독 컸던 ‘고와선’ 지역 주민들이 슬픔을 희망으로 바꾸어 이웃공동체를 회복하자고 나선 것은 지난 4월이었다. 안산시는 단원구 청사에 희망마을지원계를 만들고 전문가와 행정인력, 마을 주민으로 ‘안산시 희망마을사업추진단’을 꾸렸다. 지난 9월에는 ‘고와선’ 지역에서 마을 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마을만들기를 위한 민관 행정협의체가 만들어졌고, 주민들의 공모를 받아 39개의 ‘희망씨앗’이 탄생했다. 선부3동 수정한양아파트의 달콤창고도 이러한 ‘희망씨앗’의 하나다. ‘희망씨앗’을 구성하는 회원은 390여명. 이들 더 작은 희망 홀씨들은 고와선 전역으로 흩뿌려졌다. 수정한양아파트에서 차로 5분 정도 거리인 와동체육공원 내에 위치한 곤충체험관은 ‘대박’이 터졌다. 지난해 10월 와동주민자치센터 2층에서 조그맣게 시작된 곤충체험관은 지난 9월 66㎡(20평) 남짓한 공간을 얻어 이곳으로 옮겼다. 현재까지 이곳을 다녀간 사람은 4만여명, 하루에 평균 200명 이상이 방문한다. 오전에 찾는 어린이집의 경우 30분씩 관람 시간을 제한할 만큼 예약도 쇄도하고 있다. 9월18일 개관식 행사 때는 1천명이 운집했다. 와동지역 주민 10여명이 참여하는 모임인 ‘곤충사랑’ 역시 희망씨앗의 하나다. 곤충사랑 대표인 김명자(53)씨는 “(세월호 이후) 동네가 많이 침체됐으니 마을의 으싸으싸하는 분위기를 위해 희망마을 사업을 해보자고 해서 고른 아이템이었다. 처음에는 어린아이들한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어서 좋겠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어른들이 더 좋아한다”고 했다. 회원들이 오전 오후 3명씩 돌아가면서 체험관을 운영하고 표본 박제도 회원들이 직접 배워서 한다. 어린이와 어른들이 집에서 기르는 곤충과 거북이 등도 체험관에 가져오는 것 또한 큰 재산이다. 주민들이 참여하는 ‘희망씨앗’들이 고와선 지역으로 홀씨가 되어 흩어지면서 마을은 온기를 되찾고 있다. 각종 개발로 황폐해진 자연이 스스로의 복원력을 발휘해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듯, 고와선 지역에서 주민 소통과 연대의 따뜻한 손길로 이웃공동체를 조금씩 되살려가고 있다. 단원고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인 고잔1동 평화길에서 동네 홀몸노인 등 어려운 이웃에게 김치와 밑반찬을 만들어 전달했던 ‘평화길 맘’ 회원 최혜영(39)씨는 이렇게 말했다. “동네 오가면서, 슈퍼를 가든 어디를 가든 희망씨앗 하면서 얼굴 알게 된 분들이 많아졌어요. 집 위아래 층으로 서로 이야기하고 아이와 함께 가다 반찬을 전달해드렸던 어른을 만나면 애들한테 인사시키고요. 시간이 지난다고 다 잊는 것은 아니지만 동네가 좀더 화기애애해졌고 밝아진 것 같아요.” 시간을 세월호 참사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주민들은 잘 안다. 하지만 정부가 주민들의 상처를 외면하는 사이 ‘고와선’ 주민들은 이웃에게 손을 내밀고, 연대와 소통을 통해서 지역공동체 회복이라는 희망을 키워내고 있다. 세월호 이후 이들이 꿈꾸는 마을은 어떤 것일까? 고잔1동 태양연립에 살면서 희망씨앗인 ‘태양의 여자’를 만들어 동네에 화초 심기를 해온 고수영 통장은 “세월호 참사로 저희 동네에서 3명의 아이들이 희생됐어요. 저도 고교생 자녀를 두고 있지만 사고 이후 시선들이 아무래도 다르죠. (이웃인) 그분들도 힘들어하고…. 예전처럼 이웃과 함께 따뜻하게 살던 그대로 사는 게 빨리 (상처에서) 회복되지 않을까요”라고 했다. 안산/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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