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아영 할머니의 삶터.
10주기…20일 한림읍 삶터서
“한 여자가 울담 아래 쪼그려 있네/손바닥 선인장처럼 앉아 있네/ 희디흰 무명천 턱을 싸맨 채/ … / 한 여자가 슬픈 눈 비친 저녁놀에 얼굴 묻네/ 오늘도 희디흰 무명천 받치고/ 돌담 아래 앉아 있네/ 한 여자가”(허영선 ‘무명천 할머니-월령리 진아영’)
제주4·3의 비극과 고통의 상징으로, ‘무명천 할머니’로 알려진 진아영 할머니의 별세 10주기를 맞아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진아영할머니 삶터보존회(공동대표 박용수·정민구)와 제주주민자치연대(대표 배기철)가 마련하는 진 할머니 추모 음악회는 20일 오후 6시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 마을 안에 있는 할머니 삶터(사진)에서 열린다.
진 할머니는 4·3이 일어난 다음해인 1949년 1월 당시 북제주군 판포리에서 경찰이 쏜 총탄에 턱을 잃어버려 한평생 하얀 무명천으로 턱 부위를 감싸고 살았다. 당시 나이 30대 중반이었던 할머니는 사건의 충격으로 평생 제대로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한 채 혼자서 생계를 꾸려오다 2004년 9월9일 90살로 별세했다.
4·3 피해 여성의 대표적 상징으로 알려진 진 할머니가 별세한 뒤 제주주민자치연대 등을 중심으로 뜻있는 이들이 모여 할머니의 삶터를 정리하고 가꾸는 사업을 해마다 벌여왔다. 이들은 중·고교생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삶터를 청소하고, 주변의 4·3 유적지를 둘러보는 활동도 5년째 하고 있다.
제주에서 활동하는 민중가수 최상돈씨는 “올해는 할머니 제삿날이 추석 연휴와 겹쳐 아무런 행사도 치르지 않고 지나갔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싶어 삶터 앞에서 자그마한 음악회라도 마련하자고 해서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20일 오후 3시에 진 할머니 묘소를 참배하고, 오후 4시에는 삶터를 정리한 뒤 추모 음악회를 연다. 음악회에는 가수 최상돈씨와 제주주민자치연대 노래모임 모다정, 인디밴드 러피월드, 청년노래단 청춘 등이 참여한다. 강호진 제주주민자치연대 집행위원장은 “할머니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마을 주민들과 추모 음악회를 소박하게 치르자고 해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