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상 오류 알면서 추진 강행도
경기도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다 취소한 고교 가운데 절반 이상은, 애초 역사 교사들이 다른 교과서를 우선순위로 추천했지만 교장 등의 요구에 따라 교학사 교과서로 뒤바꿨던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학교의 운영위원회 심의 과정에서는 교장·교감 등이 교학사 교과서의 내용 오류를 알고도 해당 교과서 채택을 주장했다.
13일 경기도의회 최창의 교육의원이 경기도교육청에서 제출받은 한국사 교과서 선정 교과협의회 및 학교운영위 회의록을 분석한 내용을 보면, 교학사 교과서를 선정했다 바꾼 도내 고교 7곳 가운데 4곳에선 교장 등이 교과서 선정 과정에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라’고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 의원은 “7개 학교 가운데 수원 동우여고와 동원고, 양평 양서고는 역사 교사 등이 참여한 교과협의회에서 교학사 교과서가 3순위 또는 순위가 부여되지 않았으나 학교운영위 심의와 최종 학교장 결정 과정에서 교학사 교과서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교과협의회에서 1순위로 올리면 심의에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1순위 교과서가 최종 교과로 선정되는 게 관행이다. 교육부가 전국의 시·도교육청을 통해 각 학교로 내려보낸 ‘검인정 교과용 도서 선정 매뉴얼’에는 역사 교사 3명 이상으로 교과협의회를 꾸려 한국사 교과서를 순위대로 3개 추천하도록 돼 있다. 이어 학교운영위원 심의를 거쳐 교장이 최종 확정한다.
양서고의 경우, 교과협의회에 참여한 다수 교사들은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이념편향적이며 △내용상 오류로 수능시험을 대비하려면 채택되어서는 안 된다고 반대했으나, 한 교사가 “관리자분들의 말씀에 의하면 교학사 교과서는 국가관을 정립시키는 데 나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해 교학사 교과서를 추천 교과서에 포함시켰다. 양서고 교장은 학교운영위에서 “(교학사 교과서의) 내용상 오류는 실질적으로 수업하는 부교재를 통해 충분히 수정할 수 있고 출판되기 전 시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원고 교감도 학교운영위에서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일제침략기에 대한 서술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부분이 있으나 교육부의 수정명령으로 향후 수정 가능하지 않나 싶다”며 교학사 교과서 선정을 요구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특히 사립학교에서 교장과 교감 등이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특정 교과서 채택을 유도해도 이를 견제할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령인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에는 교장 등의 부당한 간섭에 대한 제재 조항이 없다.
성남 분당영덕여고는 학교운영위 회의록에 교과서 선정 결과만 한 줄 남아 있는 등 일부 학교에서는 학교운영위 심의 부실 의혹까지 제기됐다. 최 의원은 “교장 등의 지위를 이용한 교과서 채택 강요도 문제지만, 이런 불공정행위를 막아야 할 교육부가 교학사 교과서 선정을 취소한 20개 고교에 대해 특별조사에 나서는 등 거꾸로 가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수원/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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