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전북 전주시 상산고 정문 앞에서 졸업생들과 시민들이 대자보를 손에 든 채 상산고의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 결정을 철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전주/박임근 기자
[교학사 교과서 잇단 철회] 전주 상산고 전방위 반발 휩싸여
교과서 채택 의견수렴 토론회
학생들과 학교쪽 결론없이 끝나
오늘 교과서 채택 여부 최종결정
재학생·동문들·학부모들
교학사 채택 철회 한목소리
시민들도 학교서 1인시위 동참
교과서 채택 의견수렴 토론회
학생들과 학교쪽 결론없이 끝나
오늘 교과서 채택 여부 최종결정
재학생·동문들·학부모들
교학사 채택 철회 한목소리
시민들도 학교서 1인시위 동참
“교학사 역사교과서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한 상황에서 그런 교과서를 채택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학교가 우리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이를 바꿀 의향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5일 오전 10시께 전북 전주시 완산구 자율형사립고인 상산고등학교 교내 학생회관에선 이종훈 교감과 재학생 50여명이 마주 앉았다. 역사 왜곡 및 무더기 사실 오류 논란을 빚은 교학사 발행 한국사 교과서를, 학교 쪽이 지학사 발행 교과서와 함께 교과서로 채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학생·동문·학부모들의 비판이 커진 가운데 열린 토론회였다. 학교 쪽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했다’는 자리다. 토론회는 오전 11시15분께 뚜렷한 결론 없이 끝났다.
일부 학생은 ‘얘기가 겉돈다’며 중간에 나왔다. 1학년 학생은 “우리가 철회해야 한다고 어필(항의)을 했지만, 교감 선생님이 ‘실질적 권한이 없다’는 등의 말만을 했고 수용하려는 자세가 미흡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교감은 <한겨레>에 “노코멘트”라고 답변했다.
상산고 학생회는 이날 6개항으로 만든 교학사 교과서 채택 여부 설문을 학생들에게 돌렸다. 앞서 학생들이 교학사 교과서 채택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에는 방학 동안 기숙사에 머물고 있는 학생 220여명 가운데 4일까지 180여명이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5일 학교에서 만난 1학년생 최아무개(16)군은 “옳고 그름을 떠나 교학사 교과서를 택한 것에 사회 여론이 좋지 않아 학교 이미지가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도권에서 왔다는 2학년생 이아무개(17)군은 “후배들이 왜곡된 교과서로 배우면 안 된다. 채택 철회에 적극 나서는 친구들을 응원하고 있다”고 했다.
상산고 동문 20여명은 이날 오후 학교 정문 앞에 모여 ‘존경하는 홍성대 이사장님께 아룁니다’라는 유인물을 학교에 전달했다. 이들은 유인물에 “모교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교학사 역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을 막아주시옵소서”라는 내용을 담았다. 또 홍 이사장이 제정한 ‘상산인의 헌장’에 ‘진실이 아닌 물은 마시지 않고, 선하지 않은 과일은 탐내지 않으며, 인정이 담기지 않은 음식을 권하지 말라’고 적혀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홍 이사장은 <수학의 정석>의 저자로 이름난 이다.
2회 졸업생 엄윤상(47)씨 등 재경 상산고 동문 10여명도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강남구 홍 이사장 소유의 모산빌딩 앞에서 ‘후배들에게 진실이 아닌 물을 먹일 수 없다’고 쓴 푯말을 든 채 성명을 발표하고 건물 관리인에게 홍 이사장 쪽에 전해달라며 성명을 건넸다.
1회 졸업생 유진선(49)씨는 “잘못된 선택을 막기 위해 동문들이 함께 나섰다”고 말했다. 4일에 이어 5일에도 1인시위에 나선 4회 졸업생 채주병(46)씨는 “기본적인 역사 사실을 왜곡한 교학사 책은 나와서는 안 되는 책이다. 졸업생 1만5000명의 명예에 먹칠하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14회 졸업생인 이도영(36) 전주시의회 의원은 채택 결정을 철회하지 않으면 6일부터 무기한 단식 투쟁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상산고 쪽은 “교재 선택은 학교장 권한이다. 이사장은 교재 선택을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학교 쪽은 교과서 채택 결정 시한인 오는 6일 오전 부장교사 등이 참가하는 간부회의를 열어 재검토한 뒤 최종 결정을 내릴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산고 학교운영위원회(학부모 7명, 교원 6명, 지역위원 2명 등 15명으로 구성)는 지난해 12월 역사교과서 채택 안건을 논의했으나, 사립학교의 학교운영위는 의결기구가 아니라 심의기구여서 실제 결정권은 없다.
시민들도 상산고에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날 상산고 교정에서 1인시위를 벌인 초등학교 교사 정성식(42)씨는 “학교 누리집에 일반 회원으로 2일 오후 글을 올리는데 곧바로 삭제됐다. 이전까지 올라온 다른 글도 없어졌다.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도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날 충남 금산에서 상산고를 찾아 1인시위를 벌인 길태호씨는 “일제 강점기 마지막 총독이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넣었다. 결국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고 말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북교육혁신네트워크는 6일 오후 상산고 앞에서 교학사 교과서 채택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앞서 상산고는 학생들이 학교 본관 출입문에 붙인 교학사 교과서 관련 대자보 3장을 지난 4일 떼어냈다. 학교 쪽은 ‘학생부 허락 없이 붙인 것이라 떼어냈다’고 밝혔다. 전북도교육청은 대자보 제거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이르면 6일 실태조사할 방침이다.
전주/박임근 기자, 이재욱 기자 pik007@hani.co.kr
‘수학의 정석’ 저자가 세운 상산고 ‘나홀로 교학사 교과서’…철회 호소하는 동문들 전주 상산고 졸업생들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상산고 재단 이사장 홍성대(77)씨가 운영하는 성지출판사 앞에서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던 고등학교들이 줄줄이 채택을 철회하면서 상산고가 유일하게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로 남았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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