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하류 경남 하동군 구간의 주민들이 강바닥에서 취재한 재첩(강조개)을 쌓아두고 어린 재첩을 풀어주는 선별 작업을 하고 있다. 경남 하동군 제공
[현장 쏙] 대강 사업 피한 섬진강서 ‘강의 미래’를 묻다
섬진강은 크기로는 4대강에 드는데도 인구가 적어 밀려났다. 하구가 막히지 않아 드넓은 모래톱 사이로 어민들은 재첩을 잡고 연어·은어가 헤집고 다닌다. 상류에 댐들이 들어서 다른 유역으로 식수와 농업용수가 유출돼 생태계 영향이 크다. 투자확대와 개발 기대 속에서도, ‘4대강 사업’을 반면교사 삼아 생명력의 회복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강어귀의 보물인 재첩은 30㎏들이 한 포대에 요즘 7만5000원에 팔린다. 재첩이 잡히는 4~6월, 9~11월 강에 나가면 노인은 하루 4~5포대, 장년은 7~8포대를 거뜬히 줍는다. 한해 넉달 일하면 가구당 4000만~5000만원을 벌 수 있다. 그는 하동송림 철교 아래 중도 쪽을 가리키며 “10월 초에 물때가 두물, 세물 됩니다. 강바닥이 좌~악 드러나면 한꺼번에 수십명이 우르르 몰려가서 재첩을 잡는데, 그야말로 장관이지예. 다른 데선 그런 풍경 못 본다니까”라고 그림 그리듯이 설명했다.
하류에서 거슬러올라 소설 <토지>의 무대인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이르자 드넓은 백사장이 나타났다. 너비 700m 넘는 강바닥은 희고 고운 모래로 가득 차 있었다. 모래층은 한 길이 넘을 정도로 켜켜이 쌓여 강의 건강함을 과시하는 듯했다. 주민 최진수(43)씨는 모래톱 안의 조붓한 여울이 산란을 위해 바다에서 돌아온 연어들의 길목이라고 알려줬다. 그는 “저 여울에서 연어를 잡아예. 가을이면 여울을 가로질러 그물을 놓는데, 그때쯤 되지 않았나 싶네, 아마”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10여년 전부터 시작된 연어 회귀를 수생태계가 건강해지는 신호로 반갑게 받아들이고 있다. 5살 손녀의 손을 잡고 강변을 거닐던 탐방객 김외자(57·전남 나주시)씨는 “강물이 맑고 강변이 멋져요. 모래가 눈부셔 강다운 강에 온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모래밭과 억새밭이 어우러진 이곳은 주말이면 전국에서 찾아온 캠핑족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자전거로 4대강을 종주한 뒤 섬진강을 찾은 이성호(46·경기도 성남시)씨는 “섬진강은 4대강과 달리 협곡에 있는데다 공사를 하지 않아 풍경이 더없이 좋다. 달리기 편하게 만든 다른 4대강 자전거길에 견줘 딱딱한 시멘트 구간이 많아 달리는 데 애를 먹었다”고 비교했다.
낙동강·금강서 자취 감춘 재첩
섬진강 하구엔 “억수로 많지예”
중류엔 넓은 모래사장 펼쳐져 상류지역 무분별한 댐건설 뒤
다른 수계로 빠져나가 물 부족
바닷물 차올라 농경지·재첩 피해 시·군, 개발투자 무게둔 대책 요구
주민·환경단체는 “유량 늘리되…
강 스스로 살아나길 기다려야” 하지만 이곳에서 10리쯤 떨어진 하동군 화개면에 이르자 모래밭은 그새 잔돌밭으로 바뀌었다. 경운기를 몰고 강변을 지나던 농민 유윤기(57)씨는 20~40여년 전 하구에서 모래를 마구 파내는 바람에 중류가 돌밭이 됐다며 아쉬워했다. “4대강 사업을 피해 그나마 이 정도지예. 하나도 손대지 말고 이대로 물려줘야 해요.” 섬진강은 전북 진안군 팔공산에서 발원해 영남과 호남의 경계를 이루며 남해로 흘러가는 유역 면적 4912㎢, 유로 연장 224㎞인 전국에서 네번째로 큰 강이다. 상류에는 오염원이 적어 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BOD) 2급수 수질을 유지하고 있고, 하류에는 둑이나 보가 없이 바다와 통해 생태적으로 건강한 편이다. 현지 주민들은 섬진강을 한국의 ‘마지막 강’이자 정부한테 ‘버림받은 강’으로 여긴다. 유역 면적 3455㎢, 유로 연장 136㎞인 영산강보다 크지만 한국의 4대강에 들지 않는다. 유역 안에 큰 도시가 없고, 유역의 인구가 40여만명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 연유로 추정된다. 이명박 정부 때도 4대강 사업의 뒷전에 밀려나 있었다. 일부 주민은 4대강 사업에 끼지 못해 그나마 강이 망가지지 않았다고 안도하지만, 일부 주민은 수자원 역외 유출과 하류지역 바다화 피해 등 생태 문제들조차 묻혔다고 서운해한다. 이런 상황에서 섬진강 수계의 시장·군수 11명은 지난 10일 국회 정론관에서 ‘섬진강 선언’을 발표했다. “섬진강을 생태적으로 건강한 하천으로 만들고, 낙후된 유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섬진강권 종합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들은 섬진강 실태 조사, 유지수량 확보 대책, 수질관리 재원 지원 등을 정부에 촉구했다. 이들은 1997년 섬진강환경행정협의회를 꾸려 모래채취 금지, 연어새끼 방류, 외래어종 퇴치 등 활동을 펼쳤지만 물을 관리할 권한이 없다는 한계에 부닥치자 이번에 국회로 올라갔다. 하지만 정부나 언론 쪽의 반향은 별로 없었다. 시장·군수들이 ‘개발 투자’에 무게를 두는 반면 환경·시민단체는 ‘생태 회복’을 더 강조한다. 수계 안의 단체 8곳이 참여한 섬진강네트워크는 강 안팎에 보와 제방, 습지, 공원 등 구조물을 설치하지 않아야 한다며 생태관광과 환경산업을 앞세운 개발론을 경계한다. 주민과 행정은 섬진강 물을 동진강이나 영산강 등 다른 수계로 빼앗겨 강이 메말라가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지목하고 있다. 주암댐을 만든 1990년 이전 섬진강의 평균 유량(구례와 하동 경계인 송정지점 기준)은 하루 800만㎥였다. 최근의 이 지점 유하량은 하루 50만㎥로 줄었다. 섬진강에선 날마다 김제평야 농업용수로 97만㎥, 광주시민 상수원수로 29만㎥, 광양·여수산단 공업용수로 46만㎥ 등 232만㎥씩 강물이 다른 수계로 유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섬진강은 하천유지용수가 늘 부족하고, 물이 부족해진 강으로 바닷물이 밀고 올라와 주변 농경지와 재첩 생산이 피해를 본다. 실제로 염도 5~15‰(퍼밀·천분율)의 기수 지역에서 자라는 재첩은 주생산지가 30여년 만에 섬진강 하구 태인도 부근에서 15㎞쯤 상류 쪽인 하동송림 아래 중도 일원까지 올라갔다. 생산지가 구역이 넓은 하구에서 강폭이 좁은 상류 쪽으로 이동하면서 생산량도 현저히 줄어들게 됐다. 재첩 생산량은 2001년 64만5799t, 2005년 24만6756t, 2010년 19만1658t으로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바닷물이 하구에서 위쪽으로 22㎞까지 올라가자 한국수자원공사는 2004년 광양제철에 보낼 산업용수를 채수하는 다압취수장을 4.3㎞ 상류 쪽으로 옮기기도 했다.
조기안 초당대 교수(환경공학)는 “섬진강 바다화를 막으려면 다른 수계 유출량 가운데 40%인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는 물값을 높여 계속 공급하고, 60%인 농업용수는 영산강·동진강에서 자체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미시시피강처럼 하구 밑바닥에 높이 1~2m짜리 수중보 여러 개를 만들어 바닷물이 거침없이 올라가는 것을 막아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섬진강의 미래를 두고는 의견들이 엇갈린다. 섬진강환경행정협의회장인 정현태 남해군수는 “깨끗한 수질은 발전 잠재력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다. 4대강 사업을 통해 얻은 실패와 성공을 접목해 새 정부가 추진하는 강 개발 사업의 본보기를 만들어가겠다”고 선언 당시 밝힌 바 있다.
인위적인 개발사업 기대를 마뜩잖게 바라보는 시선도 많다. 유재관 섬진강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유량만 늘린다고 수질 악화와 해수 피해 등이 모두 해결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강을 대하는 의식을 먼저 바꾸고, 강이 스스로 살아나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창근 관동대 교수(토목공학)는 “섬진강은 아직도 한국 하천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 발달한 모래톱은 강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섬진강을 본래의 모습대로 두고 다른 강들의 해법을 이곳에 물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폭이 좁아진 전남 구례군 토지면 강가에선 석양빛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낚시꾼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이들이 강심으로 드리운 낚싯줄은 연방 아래로 휘어졌고, 한뼘이 넘는 깔따구(농어 새끼)들이 줄줄이 물 밖으로 올라왔다.
낚시꾼 정지원(25·경남 하동)씨는 “일주일에 세번 강에 나올 때도 있다. 강물에 비친 산그림자를 보고 앉아 있으면 그냥 좋다. 짜릿한 손맛을 평생 느낄 수 있도록 강에 손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고 바랐다.
섬진강/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섬진강 중류 전남 곡성군 일대로 강줄기가 굽이쳐 흐르고 있다. 전남 곡성군 제공
섬진강 하구엔 “억수로 많지예”
중류엔 넓은 모래사장 펼쳐져 상류지역 무분별한 댐건설 뒤
다른 수계로 빠져나가 물 부족
바닷물 차올라 농경지·재첩 피해 시·군, 개발투자 무게둔 대책 요구
주민·환경단체는 “유량 늘리되…
강 스스로 살아나길 기다려야” 하지만 이곳에서 10리쯤 떨어진 하동군 화개면에 이르자 모래밭은 그새 잔돌밭으로 바뀌었다. 경운기를 몰고 강변을 지나던 농민 유윤기(57)씨는 20~40여년 전 하구에서 모래를 마구 파내는 바람에 중류가 돌밭이 됐다며 아쉬워했다. “4대강 사업을 피해 그나마 이 정도지예. 하나도 손대지 말고 이대로 물려줘야 해요.” 섬진강은 전북 진안군 팔공산에서 발원해 영남과 호남의 경계를 이루며 남해로 흘러가는 유역 면적 4912㎢, 유로 연장 224㎞인 전국에서 네번째로 큰 강이다. 상류에는 오염원이 적어 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BOD) 2급수 수질을 유지하고 있고, 하류에는 둑이나 보가 없이 바다와 통해 생태적으로 건강한 편이다. 현지 주민들은 섬진강을 한국의 ‘마지막 강’이자 정부한테 ‘버림받은 강’으로 여긴다. 유역 면적 3455㎢, 유로 연장 136㎞인 영산강보다 크지만 한국의 4대강에 들지 않는다. 유역 안에 큰 도시가 없고, 유역의 인구가 40여만명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 연유로 추정된다. 이명박 정부 때도 4대강 사업의 뒷전에 밀려나 있었다. 일부 주민은 4대강 사업에 끼지 못해 그나마 강이 망가지지 않았다고 안도하지만, 일부 주민은 수자원 역외 유출과 하류지역 바다화 피해 등 생태 문제들조차 묻혔다고 서운해한다. 이런 상황에서 섬진강 수계의 시장·군수 11명은 지난 10일 국회 정론관에서 ‘섬진강 선언’을 발표했다. “섬진강을 생태적으로 건강한 하천으로 만들고, 낙후된 유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섬진강권 종합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들은 섬진강 실태 조사, 유지수량 확보 대책, 수질관리 재원 지원 등을 정부에 촉구했다. 이들은 1997년 섬진강환경행정협의회를 꾸려 모래채취 금지, 연어새끼 방류, 외래어종 퇴치 등 활동을 펼쳤지만 물을 관리할 권한이 없다는 한계에 부닥치자 이번에 국회로 올라갔다. 하지만 정부나 언론 쪽의 반향은 별로 없었다. 시장·군수들이 ‘개발 투자’에 무게를 두는 반면 환경·시민단체는 ‘생태 회복’을 더 강조한다. 수계 안의 단체 8곳이 참여한 섬진강네트워크는 강 안팎에 보와 제방, 습지, 공원 등 구조물을 설치하지 않아야 한다며 생태관광과 환경산업을 앞세운 개발론을 경계한다. 주민과 행정은 섬진강 물을 동진강이나 영산강 등 다른 수계로 빼앗겨 강이 메말라가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지목하고 있다. 주암댐을 만든 1990년 이전 섬진강의 평균 유량(구례와 하동 경계인 송정지점 기준)은 하루 800만㎥였다. 최근의 이 지점 유하량은 하루 50만㎥로 줄었다. 섬진강에선 날마다 김제평야 농업용수로 97만㎥, 광주시민 상수원수로 29만㎥, 광양·여수산단 공업용수로 46만㎥ 등 232만㎥씩 강물이 다른 수계로 유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섬진강은 하천유지용수가 늘 부족하고, 물이 부족해진 강으로 바닷물이 밀고 올라와 주변 농경지와 재첩 생산이 피해를 본다. 실제로 염도 5~15‰(퍼밀·천분율)의 기수 지역에서 자라는 재첩은 주생산지가 30여년 만에 섬진강 하구 태인도 부근에서 15㎞쯤 상류 쪽인 하동송림 아래 중도 일원까지 올라갔다. 생산지가 구역이 넓은 하구에서 강폭이 좁은 상류 쪽으로 이동하면서 생산량도 현저히 줄어들게 됐다. 재첩 생산량은 2001년 64만5799t, 2005년 24만6756t, 2010년 19만1658t으로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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