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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끼리 힘모아 동네회사 차리기 어때?”…지역공동체 씨앗 심는다

등록 2013-05-15 16:59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 옛 본량중학교 인근에 있는 농민의 비닐집에서 아이들이 채소 모종을 심어보고 있다.   광주 광산구 더하기센터 제공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 옛 본량중학교 인근에 있는 농민의 비닐집에서 아이들이 채소 모종을 심어보고 있다. 광주 광산구 더하기센터 제공
[한겨레 창간25돌] 도시의 미래를 보다
‘도농복합도시’ 광주 광산구

옛 중학교 터엔 농사체험 들판
마을산 전망대에 마을극장 세우고
“더불어 성장하는 길 찾자”
주민 협동조합 벌써 29곳이나
“우리밀이에요. 아이들이 직접 만져보고 놀 수 있도록 했어요.”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 옛 본량중학교 건물에 자리잡은 ‘더하기센터’에서 지난 3일 만난 김가연(32)씨는 1층 ‘꼬마농부 상상학교’에서 상상들판을 가리키며, “더하기센터는 농사와 예술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더하기센터는 농촌형 주민 참여 플랫폼이다. 열차를 타고 내리는 플랫폼처럼 사람들이 모여 뭔가 ‘작당하는 것’을 돕는 거점이라는 얘기다. 광산구는 21개동 가운데 5곳이 농촌지역이라는 특성에 맞춰 지난달 26일 더하기센터를 열었다. 센터 이름 더하기는 ‘주민과 여러 단체가 모이고 더해져 함께 운영하면서 시너지를 내보자’는 뜻을 담았다.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출신 문화기획자들이 참여한 ‘라우’와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시농민회, 광주미술인협회가 광산구와 손을 잡고 농촌·생태·예술·관광의 융·복합형 프로그램을 공동 운영한다.

광주시농민회는 2년 전부터 학생 없는 학교를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을 고민하다가 광산구에 농촌 체험 학교를 제안했다. 라우는 한국관광공사 공모전에서 ‘폐교를 활용한 꼬마농부 상상학교’라는 프로젝트로 당선해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다. 광산구는 라우와 농민회를 엮어 광주시교육청으로부터 임대받은 본량중을 도농 교류 공간으로 단장했다. 라우 소속 3명과 농민회원 3명은 공동운영협의체를 꾸렸다.

최근엔 광주대성초등학교 5학년 학생 110명이 찾아와 인근 비닐집에서 흙을 고르고 상추·부추·땅콩 씨를 뿌리고 오이·고추·피망·토마토·애호박 모종을 심었다. 더하기센터 상상들판에서 그림으로 농부의 마음을 표현하고, 상상부엌에선 우리 농산물로 음식을 직접 만들어봤다. 이갑성(50) 광주시농민회 사무국장은 “홀태로 벼를 발로 밟아가며 훑어낸 뒤 정미기에 넣어 쌀이 돼 나오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다. 비석치기, 땅따먹기 같은 놀이도 알려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더하기센터 2층 ‘아시아 예술창작 스튜디오’엔 국내 작가 5명과 국외 작가 2명이 상주하면서 작품을 전시하고 주민들과 함께하는 커뮤니티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도농 복합지역인 광산구에는 도시형 플랫폼 요구도 컸다. 지난달 17일엔 광산구 장덕동 원당산 전망대 건물에 광산구 ‘공익활동 지원센터’라는 도시형 주민 참여 플랫폼이 들어섰다. 광산구가 예산 3억여원을 들여 리모델링했다. 1층 강당은 마을극장과 행사장으로 활용하고, 2층 북카페는 작은 도서관 겸 주민 쉼터다. 센터는 사단법인 마을두레가 운영한다. 광산구는 자율성과 창의성이 생명인 주민 참여를 중시해 민간 위탁을 결정했다.

공익활동 지원센터는 풀뿌리 지역공동체 활동을 튼실하게 하는 쪽에 중점을 둘 참이다. 주민과 활동가, 전문가, 공무원들이 마을학교를 열어 마을 일꾼을 키우고, 이웃끼리 힘을 모아 동네회사를 차릴 방안도 찾는다. 지난 1일 주민들과 시민단체 관계자, 공무원 등 80여명을 모아 ‘광산형 지역공동체’를 꾸릴 방안을 모색하는 정책 워크숍을 열었다. 말문을 튼 셈이다. 센터장 윤난실(48)씨는 “마을 만들기 등 지역공동체를 어떻게 활성화할지를 함께 논의하고자 한다. 협동과 연대에 기반한 사회적 경제가 뿌리내리도록 하자는 것이다. 협동조합이 될 수도 있고, 사회적 기업이나 마을기업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광산구는 지역공동체 운동이 활발하다. 지난달 말까지 인가받은 협동조합은 29곳으로, 광주지역 협동조합의 약 25%에 이른다. 광산구 운남동 광산구노인복지관에 다니던 임종매(63)씨 등 어르신 20명은 2000만원을 출자해 지난해 12월 광주에서 처음 ‘더불어락’이란 협동조합을 열었다. 카페·팥죽가게·두부가게를 운영한다. 농촌지역 삼도동에선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꾸려 광산구 땅 1만6529㎡(약 5000평)를 임대받아 경작중이다. 신가동 주민 120여명은 폐지 줍는 노인들을 위해 마중물 협동조합을 차려 고물상을 직접 운영한다. 청소노동자 16명이 협동조합을 꾸려 광산구와 폐기물 처리 대행계약을 맺기도 했다. 민형배 광산구청장은 “경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제 더불어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때다. 그래서 자치공동체 복원에 주력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고기를 잡아 손에 쥐여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마을마다 주민 스스로 복지망 만들었어요”

우산동에서 첫 출발
2560명 다달이 1천만원 기부
지금은 광산구 10개동으로 번져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사는 박양례(52)씨가 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조용하고 아늑해서 좋아요. 내 집 같아요.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요.” 지난 3일 오후 광산구 우산동 우산주공연립 인근 북카페 마을애(愛)를 두고 한 말이다. 174㎡ 규모 카페엔 책을 읽을 공간이 따로 있고, 책장엔 주민들이 기부한 2000여권의 책이 빼곡하다. 우산주공연립은 1982년 조성돼 소형 아파트와 연립주택이 들어선 곳으로, 노약자와 외국인 노동자, 서민 등이 많이 사는 동네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 ‘복지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 3일 우산동 우산주공연립 인근 북카페 마을애(愛)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 ‘복지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 3일 우산동 우산주공연립 인근 북카페 마을애(愛)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다.

주민들이 꾸린 ‘우산동 복지네트워크’는 공동체 만들기 프로젝트로 북카페를 열었다. 동네에서 치과의원을 하는 박병기(46) 원장이 임대료를 받지 않고 공간을 내놓았고, 광주시의 행복한 창조마을 만들기 사업 공모에 뽑혀 받은 지원금으로 실내를 산뜻하게 단장했다. 복지네트워크 부위원장 김정태(59)씨는 “예산 한푼 없이 시작하면서 처음엔 일이 될까 싶기도 했다”며 웃었다.

우산동 주민 30여명은 지난해 7월 처음 만났다. 주민과 행정기관이 함께 복지연대망을 만들자는 취지의 ‘투게더 광산 나눔문화 공동체’(투게더 광산) 사업에 참여하면서였다. 주민 65%가 기초생활수급자이고 자살률이 높은 점을 고려해, 광산구는 주민 10명을 상대로 인문학 강좌를 열었다. 이 강좌를 통해 최근 자살방지 상담사 자격증을 딴 주민 9명은 7월께부턴 이웃들을 찾아가 상담 활동을 펼친다.

투게더 광산은 “마을 스스로 마을을 돌보자”는 ‘현대판 복지두레 운동’이라 할 수 있다. 2011년 6월 지역 리더 100여명이 설립에 나섰고, 주민들의 기부금 7억원이 모여 사업 기반을 만들었다. 주민 2560명은 5000원부터 30만원씩 다달이 1000만여원을 기부한다. 강위원(43) 투게더 광산 집행위원장은 “행정기관과 기업체의 복지 후원은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에 몰린다. 그런데 자녀는 있지만 부양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노인 같은 소외층이 적지 않다. 이런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동네 이웃들이 나서서 복지 사각지대의 틈을 메우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고개를 갸우뚱하던 주민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광산구 21개동 가운데 10곳에 우산동 복지네트워크와 같은 마을복지공동체 추진위원회가 설립돼 4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마을별 복지네트워크는 소외층 이웃의 집을 수리하고 저소득층 자녀에게 장학금을 건네는 등 마을 실정에 맞는 복지사업을 벌인다. 지금까지만 직간접 지원을 받은 주민은 4500여명에 이른다. 주민들이 지역복지의 해답을 현장에서 찾고, 기업·단체 등과 연계해 촘촘한 복지 그물망을 짜고 있는 것이다.

광주/글·사진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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