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경기 동두천시 보산동 미군 캠프 케이시 앞에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동두천/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현행범만 구속’ 소파 독소조항 비판 목소리
동두천 미군 자백 받고도 경찰, 신병인도 요청 안해
소극적 대처 비판 여론 검, 이르면 10월 1일 영장 방침
동두천 미군 자백 받고도 경찰, 신병인도 요청 안해
소극적 대처 비판 여론 검, 이르면 10월 1일 영장 방침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지난 24일 술에 취한 주한미군이 한밤중에 10대 여학생의 주거에 침입해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의 신고로 수사에 나선 경찰은 용의자를 소환해 범행을 시인받고도 ‘현행범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부대로 돌려보내고 불구속 의견을 낸 것을 두고 소극적 대처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시민단체와 야당들은 중대 범죄를 저지른 미군을 한국 수사기관이 구속하지 못한 근본 원인은 불평등한 주둔군지위협정(소파·Status Of Forces Agreement·SOFA) 때문이라며, 소파의 전면 개정과 미군의 범죄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동두천경찰서는 24일 새벽 4시께 만취 상태로 동두천 시내 한 고시텔에 들어가 텔레비전을 보던 ㄱ(18)양을 흉기로 위협하고 여러 차례 성폭행한 혐의(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주한미군 제2사단 소속 K(21) 이병을 조사한 뒤 신병을 미군 헌병대에 넘겼다고 29일 밝혔다. ㄱ양은 성폭행에 저항하다 손바닥이 2㎝가량 찢어지는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24일 오전 8시50분께 ㄱ양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고시텔 인근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으로 K 이병의 신원을 확인한 뒤, 미군 쪽에 통보해 26일 출석하도록 해 조사했다. K 이병은 경찰에서 “술에 취해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고시텔에 들어가 범행을 저지른 것 같다”며 범행을 시인했다. 에드워드 카돈 미군 2사단장은 즉각 성명을 내어 “깊은 유감을 표하며, 피해자 가족과 한국 국민에게 진실한 사죄를 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은 소파 규정을 내세우며 K 이병의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고 28일 불구속 수사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황의민 동두천경찰서 수사과장은 “미군 범죄는 현행범이거나 부대 복귀 전에는 구속 수사가 가능하지만, 부대 복귀 뒤에는 소파 규정 때문에 불구속 송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주한미군 L(20) 이병의 동두천 시내 노부부 폭행·성폭행 미수 사건 때 동두천경찰서가 L 이병을 체포·구금했던 것은 현장에서 피의자를 붙잡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2001년 개정된 소파 22조 5항은 살인·강간 사건의 현행범에 대해서만 한국이 구금권을 행사할 수 있게 했다. 살인·강간·방화·마약거래 등 12개 주요 범죄를 저지른 미군 피의자는 검찰 기소 이후에야 한국이 미군으로부터 신병을 인도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의정부지방검찰청 형사1부는 사건 송치 다음날인 29일 K 이병을 불러 추가 조사했지만 다시 되돌려보냈다. 검찰은 이르면 10월1일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시민단체와 야당들은 주한미군의 중대 범죄가 확인됐는데도 경찰이 이를 언론에 알리지 않고 불구속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한 점을 두고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려고 한 것이 아니냐’며 수사 당국을 비판했다. 장세환 민주당 의원은 2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지방경찰청 국정감사에서 “경찰이 신병 인도를 요청하는 등 강력한 처벌 의지를 보여야 했다”며 “사건 은폐 뒤 미군에 대한 편향수사를 한 동두천서장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기북부진보연대는 30일 오전 11시 동두천시 주한미군 기지인 캠프 케이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K 이병에 대한 즉각적인 구속 수사와 미국 대통령의 공식 사과, 소파 전면 개정, 주한미군 야간통행금지법 제정 등을 촉구할 계획이다.
동두천/박경만 기자, 석진환 기자 mania@hani.co.kr
동두천/박경만 기자, 석진환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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