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및 조류인플루엔자 확산 현황
접종인력 격리않고 매몰차량 여러농장 파견
수의검역원 “한두군데 발생 매뉴얼만 있을뿐”
전북 진안·김제 돼지 1만여마리 ‘예방적 매몰’
수의검역원 “한두군데 발생 매뉴얼만 있을뿐”
전북 진안·김제 돼지 1만여마리 ‘예방적 매몰’
초동 대응이 무너지고 가축바이러스가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물리적 불가항력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구제역 방역의 지휘 사령탑인 경기 안양의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한 관계자는 6일 “지금까지는 한두 곳에서 발생하는 상황에 대비한 매뉴얼만 있었던 셈”이라며 “전국 도처에서 한꺼번에 구제역이 터지면서 속수무책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시스템은 있지만 방역을 실행할 사람이 현장이 없는 형국”이라며 “훈련된 현장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투입된 인력들도 피로가 쌓이면서 한계상황에 봉착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지금 같은 가축질병의 대확산 상황에 대비한 범정부 차원의 매뉴얼도, 사전훈련도 전혀 준비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제역을 예방·차단하기 위한 매몰 작업과 백신 접종 과정에서 오히려 바이러스를 더 확산시키는 경우도 일어나고 있다. 백신 접종 인력은 한 지역을 마무리한 뒤 5일 동안 격리생활을 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여유를 두지 못했다는 것이다. 곧바로 다른 지역에 투입되면서 ‘오염원’을 퍼뜨렸다는 징후도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매몰처분 차량과 인력의 소독 절차는 더더욱 엉성했다.
여러 농장을 돌아다니는 수의사와 인공수정사, 가축거래상, 가축 운반 및 사료공급 차량 등이 구제역 확산에 결정적 불쏘시개 구실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농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이런 사람들이 하루에도 여러 농장을 드나들면서 바이러스의 전파 매개체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이에 따라 인공수정사와 가축거래상 등의 농장 출입을 금지했으며, 6일부터는 사료공급 차량도 농장 안으로 출입하지 못하도록 조처했다. 유럽과 일본 등에선 이런 인력과 차량은 하루에 농장 1곳만 드나들 수 있도록 법규로 규제하고 있다.
교통 사정이 좋아지고 사람·가축의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지금까지의 방역 매뉴얼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동의 축산농가에서 수도권 도축장까지 2시간이면 바이러스가 옮아갈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한 방역 매뉴얼의 ‘업그레이드’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럴 때를 대비해 모든 가축의 이동을 현 단위로 제한하는 법규를 두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제서야 도 단위로 가축 이동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한편, 충남 당진군 합덕읍 양돈장에서 구제역 발생이 확인되고 전북 진안·김제 농장이 이 양돈장에서 새끼돼지 1000여마리를 들여온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호남도 구제역 앞에 풍전등화 지경에 놓였다. 전북 진안군 마령면과 김제시 용지면의 축산농가는 1월1일과 지난해 12월23일 당진군 양돈장에서 각각 새끼돼지 707마리, 350마리를 반입했다. 전북도는 예방적 차원에서 인근 농가의 돼지 1만2000마리를 매몰처분하기 시작했다.
강승구 전북도 농수산식품국장은 “진안에는 6농가가 집단적으로 돼지를 사육해 발병이 우려되지만, 입식 6일째인데도 외부 증상이 없어 일단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에선 조류인플루엔자(AI) 감염 신고가 전날 영암군 시종면에 이어 이날 구례·함평군에서도 들어와 방역 당국이 긴급 조사에 나섰다.
김현대 선임기자, 박임근 정대하 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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