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날씨는 경기도의 복숭아에서 제주의 조생 양파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농작물을 참담하게 쓰러뜨렸다. 가장 피해가 심한 지역은 거의 100% 피해를 당한 전북 고창 등지의 복분자 생산 농가다. 폭설과 일조량 부족에다 저온현상까지 겹쳐 복분자가 고사했고, 밭을 갈아엎는 농부들이 속출하고 있다. 전북도는 29일 복분자 재배면적 2380만㎡의 피해금액만 해도 4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복분자밭을 갈아엎은 고창군 성내면의 고아무개씨는 이날 “1999년부터 복분자 농사를 짓고 있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성내면 복분자 농가면적 95만㎡의 대부분이 동해 피해를 입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따뜻한 제주 지역의 피해도 심각하다. 올해 들어 기온과 일조시간이 평년보다 크게 떨어지고 강수량은 많아, 조생 양파와 감귤, 마늘 등 농작물 피해가 커지고 있다. 제주도가 지난 21일부터 수확기를 맞은 조생 양파의 피해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 재배면적 922만㎡ 가운데 29%인 266만㎡에서 무름병과 잿빛곰팡이병 등 병해충이 발생하고, 동해나 상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감귤도 최근 새순 발아기를 맞았으나 발아가 평년보다 11일이나 늦어지고 꽃 수도 많이 줄어들었다.
경기도 이천의 일부 복숭아밭에서는 이미 죽은 복숭아 나무를 베어 쌓아놓는 등 올해 복숭아 농사를 포기한 농가도 속출하고 있다. 이천시 관계자는 “이천 지역 850여 농가에서 768만㎡의 복숭아 농사(연평균 1만260t 생산)를 짓고 있는데, 지금까지 30% 이상의 농가가 냉해 피해를 보고 있다”며 “정부 차원의 지원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마다 봄 수박축제를 열던 경남 창원시 대산면은 올해 축제를 취소했다. 창원에서는 700여가구가 765만㎡의 밭에서 수박을 재배해 지난해 270여억원의 소득을 올렸으나, 올해는 100억원도 벌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9일 현재 70% 이상의 수박 농가가 피해를 입었고, 100여가구는 이미 밭을 갈아엎은 것으로 집계됐다.
경북의 경우 최근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경산과 영천, 의성 지역에서 배와 자두, 복숭아의 동해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성지역은 배 과수원이 100% 피해를 입었고, 자두 재배면적의 절반인 420만㎡에서 피해가 나타났다. 경산의 복숭아와 자두 재배지역 중 250만㎡에서, 영천의 배 과수원 80㎡에서도 저온으로 꽃의 암술이 얼어 검은색으로 변하는 피해가 나타났다.
영덕과 울진 등 동해안 지역에는 저수온 현상이 지속돼 양식 어업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북도 어업기술센터 영덕지소가 최근 영덕군 구계항에서 매일 연안 표층 수온을 관측한 결과 지난해보다 2.0℃, 평년에 비해 1.0℃ 낮은 수온이 4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허호준 박임근 김기성 최상원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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