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지하상가 모습.
서울시, 도심 지하상가 연결사업 추진에 “시민 건강·보행권 침해” 반발
길이 2739m 지하공간…전문가들 “지상생활 무시”
길이 2739m 지하공간…전문가들 “지상생활 무시”
서울시가 태평로·명동 등 도심의 지하상가를 하나로 연결하는 ‘지하공간 네트워크’ 조성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점점 늘어나는 지하공간으로 인해 시민들이 지상에서 쾌적하게 살아갈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26일 서울시는 숭례문·시청·회현·명동 등 각기 떨어져 있는 지하상가를 하나로 이어 상가와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사업에 대해 타당성 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연결이 검토되는 지하공간은 숭례문~시청역 구간, 숭례문~회현~명동~을지로 구간, 회현~소공로 구간 등이다. 예상 사업비는 모두 2068억원이며, 지하공간이 새로 연결되면 길이 2739m, 넓이 4만5443㎡의 대규모 지하공간이 탄생한다. 서울시는 이 사업을 통해 지하에 보행공간뿐 아니라, 문화·휴식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그러나 서울시의 이런 계획은 시민들의 건강·보행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홍성태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사람이 쾌적하게 다닐 수 있는 길은 지하가 아닌 지상 공간”이라며 “반생태적인 지하공간을 늘리기보다 건널목을 설치하고 보도를 넓히는 등 사람들이 지상에서 마음껏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도심 지하의 공기 오염은 해마다 지적되는 문제다. 2009년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허천 의원은 “서울메트로의 자체 측정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던 지하철 역과 지하상가 24곳이 시 산하보건환경연구원 측정 결과 무려 10곳(약 42%)에서 오염물질이 발견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서울시 지하철공사 역무·승무원 10명 가운데 9명이 입사 뒤 기침이나 어지럼증 등 미세먼지로 인한 증세를 보인다는 초록정치연대의 조사 결과도 있다.
지하공간이 시민들의 활동에 악영향을 준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왔다. 김은희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지하공간은 교통약자의 이동에 불편하고 화재 등 재난에 취약하며 야간에는 범죄 우려도 높다”며 “지상에 건널목 몇개를 더 놓는 것이 시민들의 건강이나 편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지하상가가 늘어나면 건널목 설치가 더 어려워져 시민들의 보행권이 오히려 침해된다. 실제로 서울시와 중구 등은 지난해 중구 명동 등 보행자가 많은 지역에 건널목을 놓으려 했으나, 지하상가 상인들이 강력히 반대해 중단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업뿐 아니라 △도심 대규모 지하도로망 △강변북로 일부 지하화 △제물포길 신월나들목(IC)~여의대로 구간 지하화 등 서울시의 잇따른 ‘지하통로’ 계획 전반을 우려했다. 민만기 녹색교통 사무처장은 “도로가 새로 생기면 교통 수요도 그만큼 늘어나 환경과 교통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며 “지하도로 계획은 교통 수요를 점차 줄여나가는 세계적인 교통정책 흐름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서울시 ‘지하공간 네트워크’ 조성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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