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스노보드 월드컵’ 대회의 ‘빅에어(Big Air)’ 경기를 위해 점프대가 설치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서울시, 광화문광장에 국제대회용 34m 철제구조물 설치
“역사적 장소에 부적절” 비판…
“역사적 장소에 부적절” 비판…
8일 오후 가본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는 아파트 13층 높이(34m)의 거대한 철제 구조물이 들어서 있었다. 광화문에서 불과 몇m 떨어져 있지 않은 이 구조물은 광화문 위쪽으로 비죽 솟아 있어 북악산 자락과 광화문 너머로 보이던 경복궁 일대가 보이지 않았다. 이 구조물은 12월11~13일 광화문광장에서 열 ‘스노보드 월드컵 대회’의 점프대로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이 대회에는 모두 17억원이 투입되며 이 가운데 서울시가 5억원을 부담한다. 서울시는 전세계 10개 방송사에 중계될 예정인 이 대회로 서울의 전경을 널리 홍보한다는 계획이다. 벌써 절반쯤 흰 눈으로 덮인 점프대 위에서는 10여명의 인부들이 긴 호스를 이용해 인공 눈을 뿌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광화문 앞 점프대 공사뿐 아니라 이순신동상 앞에서도 백남준의 ‘프랙탈 거북선’을 전시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다. ‘프랙탈 거북선’은 티브이 모니터 349대와 수족관, 전화기 등을 재활용해 만든 작품으로 높이 4m, 가로 10m, 세로 16m 규모다.
이미 이순신동상과 세종대왕동상이 설치돼 있는 광화문광장에 거대한 구조물이 잇따라 들어서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서울시가 사적으로 지정된 경복궁 바로 앞에 거대한 스노보드 점프대를 세우는 데 대해서는 시민들과 전문가들의 비판이 거세다.
이날 광화문광장을 찾은 시민 진차남(53)씨는 “오늘 처음 광화문광장에 왔는데 스노보드 점프대에 가려져 경복궁과 북악산 경관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며 “거대한 동상들과 구조물이 너무 많이 들어서 답답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양윤식 한얼문화유산연구원장도 “우리나라의 전통성을 느낄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에서 스노보드 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귀중한 문화재인 경복궁 앞에 34m 구조물을 세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이 구조물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문화재위원회의 ‘현상변경’ 허가를 받지 않은 것과 관련해 문화재보호법의 손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상변경’이란 문화재 주변 환경을 바꾸는 것으로, 문화재위원회의 허가가 필요하다. 단, 행정기관이 자체적으로 3명 이상의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문화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허가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돼 있다. 윤영석 서울시 마케팅담당관은 “3명의 전문가로부터 문화재영향검토를 받은 결과 스노보드 점프대가 문화재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해 문화재청으로부터 따로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백악산(북악산) 일대는 지난 7일 문화재청으로부터 명승으로 지정됐고 경복궁은 국가 지정 사적인데, 이곳에서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시설물을 설치하는데도 현상변경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게 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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