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타 큰 구멍이 난 가림막을 통해 10일 오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 뉴타운 예정지 철거공사 현장이 보인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보상 못받아 남은 세입자들 집주변 동시다발 화재
주민들 “철거업체서 쫓아내려…” CCTV 설치 호소
주민들 “철거업체서 쫓아내려…” CCTV 설치 호소
2~3m의 높다란 가림막으로 둘러쳐진 좁은 골목길에 들어섰다. 군데군데 불에 타 구멍이 난 가림막 사이로 흉물스러운 건물들의 모습이 보였다. 지난 7일 새벽 2시께 한꺼번에 7건의 화재가 발생한 서울 성동구 왕십리뉴타운 1~2구역은 행인 한 명 없이 을씨년스러웠다.
10일 화재 현장에서 만난 주민 추교현(47)씨는 “지난 8월부터 방화로 보이는 화재가 잇따라 일어났다”며 “아직 이주하지 않은 세입자들 집 주변에서 주로 발생했다”고 말했다. 시꺼멓게 그을린 가림막과 세입자들이 살고 있는 주택은 불과 10m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불이 난 뒤 왕십리 1동 주민센터 부근의 주택과 상가 등지에서는 반나절 동안 전기·전화·유선방송이 끊겼다.
불안을 이기지 못한 주민들은 성동구청에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등 사전예방 조처를 요구하러 나섰다. 세입자들은 “아직 이주하지 않은 세입자들의 집 주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화재가 일어난 점, 가림막은 부직포나 비닐로 화재에 약한데도 소규모만 태우고 빨리 진화가 된 점, 발화지점이 빈집들로 특별한 발화 원인이 없었던 점으로 미루어 철거업체 직원들이 주민들을 쫓아내려고 방화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왕십리 뉴타운 1구역은 이번달 안으로 일반분양될 예정이고 2구역 역시 철거공사가 진행되어 곧 일반분양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1~2구역에는 법으로 보장된 ‘주거이전비’와 ‘임대아파트 분양권’을 모두 보상받기 위해 80여 가구가 남아 있다.
화재로 집이 거의 다 타버린 왕십리 1구역 주민 고선중(40)씨는 “지난 8월15일 가족들과 처제 집을 방문하러 가는 길에 집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또 다시 불이 날까 두려워 아내와 아이들은 대책위 사무실에서 생활한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새벽 집 앞 30m 지점에서 불이 난 것을 지켜본 주민 권영자(46)씨는 “집 바로 앞에서 불이 났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며 “화재뿐 아니라 가스관 절단사고, 도난사고도 끊이지 않아 대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은정 왕십리 1구역 세입자대책위원장은 “왕십리 1~2구역에 대해 방범·순찰 등 치안을 강화하고 임시라도 시시티브이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9일 민원을 제기하러 성동구청을 찾았다가 담당자가 만나주지 않자 함께 갔던 주민 10여명과 성동구청 로비에서 밤샘 농성을 벌였다.
이에 성동구청은 10일 주민들의 민원 접수를 막은 점에 대해 사과하고 “오는 17일 부구청장과의 면담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10일 오후 5시께 농성을 풀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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