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재개발 사업으로 곧 사라지게 되는 서울 종로1가 피맛골 ‘빈대떡 골목’과 청진동 해장국 골목.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종로1가 광화문 일대 재개발
선술집·식당 잇따라 폐업
옛정취 사라져 큰 아쉬움
선술집·식당 잇따라 폐업
옛정취 사라져 큰 아쉬움
3년간의 전쟁이 끝난 이듬해 1954년, 경기도 용인 사람 안덕인씨는 세종로 뒷길 한옥집의 담 틈에서 빈대떡과 막걸리를 팔기 시작했다. 지금으로 치면 광화문 교보문고 뒤에서 종로소방서 쪽으로 가는 길가에 생긴 ‘불법노점’인 셈이다. 한옥집 담 사이로 빈대떡을 먹던 손님들은 가게의 길다란 모양새를 보고 ‘열차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60년대 가게의 위치를 피맛골 초입으로 옮긴 뒤에도 10평 막걸리집에는 손님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2대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우제은(67)씨는 “지도를 한 손에 든 일본인 관광객도 자주 왔고, 지난해부터는 중국·대만의 관광객도 종종 보인다”고 말했다. 올해 말 이곳이 재개발이 됨에 따라 우씨는 다른 장소를 알아보고 있다.
종로1·2가와 광화문 일대에 미로처럼 뻗은 골목길을 빽빽하게 채웠던 오래된 선술집과 식당들이 잇따라 문을 닫고 있다. 종로구 당주동과 공평동, 청진동 등의 도심재개발사업이 본격 궤도에 오르면서 청진동 해장국 거리, 무교동 낙지거리, 당주동 맥주집거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려 하고 있다.
9일 저녁 찾아간 청진동 해장국 골목에도 빠진 이빨처럼 군데군데 업소들의 불이 꺼져 있었다. 1937년에 문을 연 뒤 70여년 동안 이 동네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아온 청진옥 해장국집 앞에는 “재개발로 인해 8월부터는 근처의 주상복합건물로 이사간다”는 공지문이 붙어있었다. 3대째 이 곳을 운영하고 있는 최준용(40) 사장은 “주상복합건물이 청진옥의 분위기에 맞지 않지만, 그나마 지금 위치에서 가까워 이 곳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 곳에서 모둠전과 함께 막걸리를 기울이던 이정만(42·항만설계사)씨는 “이런 해장국 골목이 있어서 서울 강북이 강남과 다른 풍취가 있었는데, 이런 곳이 사라진다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해장국 골목에서 종로1가 한일관으로 이어지는 피맛골도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아 컴컴했다. 맛있는 자장면으로 이름 높은 신승관도 “재개발로 인해 잠시 휴업한다”고만 적혀 있었다. 그 옆 70년 전통의 한일관의 문도 닫혀 있었다. 가게 앞에는 11월께 성수대교 남단에서 다시 개장한다는 공지가 붙어 있다.
세종로 건너편 당주동 일대도 문 닫은 곳이 곳곳에 보였다. 현대해상 바로 뒤편에는 재개발 업자에 맞서 보상을 요구하는 건물 세입자들이 세운 천막이 세워져 있었고, 그 뒤로 건물들의 깨진 유리들은 흉물스러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좋은 세상 만들기 등 포크음악을 주제로 하는 70년대풍 맥주집들로 유명한 이 곳에서도 재개발은 추진되고 있었다.
2.5평 남짓한 초미니 술집인 소우의 종업원인 오아무개(48)씨는 “70~80년대를 지나온 사람들이 함께 기타 치면서 노래하는 공간들이 사라질 것 같다며 손님들이 벌써부터 아쉬워한다”고 말했다. 당주동의 구불구불한 골목길 끝에 자리잡은 대원여관은 반한옥 구조를 가지면서도 하룻밤 숙박비가 2만원에 불과해 주머니가 가벼운 외국인 관광객으로부터 인기를 끌었던 곳이다. 이곳에서 만난 상 김(56·영어강사)씨는 “위치도 좋고 값도 싸서 이곳에서 1년반 동안 장기 투숙했다”며 “이제는 새로운 숙소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역사가 오랜 서울의 도심 공간들과 그 기억들을 지우는 재개발의 바람은 거세다. 서울 시내의 사무실 공간에 대한 수요가 유래 없이 높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자자문업체인 알투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4~6월 사이 10층 이상 업무용 빌딩의 공실률이 사상 최저 수준인 1.0%로 떨어졌다. 2006년 말에 2.6%였던 공실률은 1년반 사이에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당연히 임대료도 뛰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2/4분기 동안 임대료는 지난 1/4분기보다 2.35% 상승했다. 재개발업자들이 무리해서라도 지역 대형건축 사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이런 도심 재개발 광풍 속에서 서울시는 청진동 주변을 대상으로 재개발 사업의 개선방안을 이달 중에 마련할 계획이다. 서울시 도심재정비담당관실의 한 관계자는 “도심 재개발사업 계획안이 70년대 마련된 것이라 큰 흐름에서 이를 막을 뾰족한 수가 없다”며 “되도록 서울 도심이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 되도록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글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런 도심 재개발 광풍 속에서 서울시는 청진동 주변을 대상으로 재개발 사업의 개선방안을 이달 중에 마련할 계획이다. 서울시 도심재정비담당관실의 한 관계자는 “도심 재개발사업 계획안이 70년대 마련된 것이라 큰 흐름에서 이를 막을 뾰족한 수가 없다”며 “되도록 서울 도심이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 되도록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글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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