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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20년전 구로공단서 ‘아름다운 저항’을 더듬다

등록 2007-04-23 21:28

방현석 작가가 작가와의 만남이 열린 한 카페에서 자신의 소설 〈내일을 여는 집〉 속의 한 대목을 읽고 있다(왼쪽). 신경숙 작가가 22일 가산디지털단지역 앞 자신이 예전에 살았던 집의 대문을 살며시 열어 보고 있다.(오른쪽)
방현석 작가가 작가와의 만남이 열린 한 카페에서 자신의 소설 〈내일을 여는 집〉 속의 한 대목을 읽고 있다(왼쪽). 신경숙 작가가 22일 가산디지털단지역 앞 자신이 예전에 살았던 집의 대문을 살며시 열어 보고 있다.(오른쪽)
[클릭!현장속으로] ‘서울 속 문학투어’ 참여한 소설가 방현석·신경숙씨
80년대 노동현실 그린 두 작가, 소설 속 ‘추억의 장소’ 찾아

#1 “물론 학교는 가야지…그런데 이것도 우리들을 위한 일이야.”

노동운동이 태동하던 1970년대말 서울에 갓 올라온 작가 신경숙씨가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절친한 언니 유채숙씨한테서 들었던 말이다. 언니들은 잔업 거부를 하며 투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야간학교에 다니고 싶었던 신씨는 여기에 동참하지 못했다.

#2 “공돌이 주제에, 니네들이 학생인줄 알아?”

서울 노량진경찰서 담당 형사는 노동운동을 하다 끌려 온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 말은 작가 방현석씨의 일생을 바꿨다. 방씨는 이 사회가 평등하지 못하다는 절박한 인식 속에 노동운동 속으로 자기 자신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소설가 방현석·신경숙씨
소설가 방현석·신경숙씨

소설가 방현석·신경숙씨 지난 12일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구로공단이라는 이름이 이들 작가에겐 더 친숙했다. 이곳을 자신들 몸의 한 부분이라고 여기는 두 작가가 20여년 전의 그 길을 다시 걸었다.

서울문화재단이 주최하고 문학나눔사업 추진위원회가 주관한 ‘서울 속 문학투어’ 첫 행사 자리였다. 30여명의 독자가 함께 했다. 방씨는 소설 〈내일을 여는 집〉으로, 신경숙씨는 소설 〈외딴 방〉 〈풍금이 있는 자리〉 등을 통해 1980~90년대 문학의 꽃을 피운 작가들이다.

구로공단이 가산디지털단지로 이름을 바꾼 것 만큼이나 거리와 사람들의 모습도 변해서 기억과 일치시키기는 힘들었다. 오래된 지명이나 건물만이 두 사람이 옛 기억을 더듬는 걸 도왔다.

방씨는 시장을 빠져 나와 맞닥뜨린 가리봉오거리를 ‘투쟁의 공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경찰과 숨바꼭질을 벌이며 기습 집회·시위를 하고 흩어지던 장소다. 지금은 고가도로가 있고 그 위를 차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거리를 지나 가산디지털단지역에 도착했을 때는 신씨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지하철역 앞은 그가 오빠 둘, 외사촌과 함께 살던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집인 것 같은데….” 작가는 어느 녹색대문을 살며시 열면서 혼잣말을 했다.

현장에 동행한 문학평론가 이선우씨가 두 작가에게 물었다. “방현석씨의 소설은 죽음을 불사하고 노동운동에 출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신경숙씨의 소설은 현실에 참여하지 못하고 곁에서 지켜보는 나약한 노동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같은 공간 속에서 왜 다른 경험이 나오는지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신씨가 먼저 입을 뗐다. “누구에게나 현실은 달라요. 나는 단지 나와 동시대를 같은 공간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것 뿐이죠. 현실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또 하나의 우리의 모습이고 또 다른 현실이라고 생각해요.” 방씨는 “그 시절은 대학에 몸 담았던 사람들을 굴욕감, 모욕감, 비참함 따위의 언어들이 유린하던 시기였으며 우리 세대로서는 문학하는 것이 부끄러운 시기였습니다”라고 답했다.

가리봉동에는 중국 동포들이 많이 살고 구로공단도 많이 바뀌었는데 새로운 소설이 나올 수 있느냐는 질문이 신씨에게 던져졌다. “옛날 공단모습은 찾아 보기 힘들지만, 소설가의 관찰이 끝나고 나면 이곳을 무대로 한 새로운 문학이 나올 거에요.”

서울문화재단은 이 행사를 두세달에 한차례씩 이어갈 계획이다. 다음번 ‘초대 손님’으로는 시인 유하씨와 소설가 조경란씨 등을 섭외 중이라고 한다. 문의: 02-3290-7044.

전종휘 기자, 김명진 수습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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