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이문동 골목길의 소박한 사진전시회

재개발 얘기가 솔솔 나오고 있는 서울 이문동의 독구말길. 큰 차 한 대 지나가기 버거울 정도로 구불구불 좁은 이 골목길에선 ‘소박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이문동 동네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아에이오우’.

전철이 지나가니 사람은 건너지 말라고 통행금지판이 내려진 지하철 1호선 외대역 앞 거리, 독구말길 안 참기름집, 햇살이 내려앉은 기왓장…. 사진 안에 담기니 특별하게 다가오지만 이 모두 동네 사람들이 매일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들이다. 등교하는 학생들과 놀고 있는 꼬마들, 파 다듬는 아주머니 등 사진 속 모델들도 모두 ‘옆집 이웃’들이다.

전시회를 연 이들은 지역시민단체인 푸른시민연대가 마련한 ‘놀토학교’와 ‘어머니학교’의 수강생들. 이들은 지난 여름부터 저마다 카메라를 들고 ‘익숙하고도 낯선’ 골목을 누볐다. 사진전에 참여한 안정훈(15)군은 “골목길을 떠올리면 돈 뜯는 ‘깡패’와 ‘바바리맨’ 등이 생각나 음침하고 더러운 느낌이었지만 카메라 렌즈로 보니 장기나 화투를 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여기저기 걸려 있는 빨래들이 새롭고 푸근하게 보였다”고 얘기했다. 문종석 푸른시민연대 대표는 “이 동네에 사는 저소득층 아이들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또래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에 다니거나 문화활동을 즐길 여력이 많지 않다”며 “자기표현 방법을 가르치고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사진교육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찍은 사진들이 차곡차곡 쌓여가자 사진작가 박주경씨는 전시회를 기획했다. “골목길 전시회를 통해 동네 주민들이 고민하는 현실적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박씨는 직접 발로 뛰며 사진 인화비를 비롯한 행사비 200만원을 마련했다. 푸른시민연대 간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담벼락 사용’을 허락받았다. 사진전에 참여한 어머니들이 과일과 음료, 떡까지 준비해오니 자연스럽게 동네 잔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푸른시민연대 김민정 간사는 “버려진 것 같았던 벽에 사진을 붙이니 어둡던 동네가 다 환해졌다며 주민들이 ‘전시회가 끝나도 사진을 떼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다”며 웃음지었다.

푸른시민연대는 올해를 시작으로 앞으로도 골목길 사진전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15일까지. (02)964-7530

이정애 기자hongby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