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서울 성동구 성수1가1동의 한 동네 어귀에서 29일 오후 주민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주민들은 성동구청에 세입자들을 위한 철거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벼랑끝 100여가구 “이제 어디로…”
서울 강북의 최고 노른자위 땅으로 꼽히는 성동구 성수 1가 1동 521-1 일대 1만2천여평. 서쪽으로는 서울숲, 남쪽에는 한강과 닿아있는 이 동네는 얼마 전부터 굴착기 소리로 시끄럽다. 며칠 전에는 2년도 채 안 된 집이 부숴졌다. 한강을 끼고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마지막 땅이라는 이유로 개발 바람을 타기 시작하더니, 1999년부터 ‘남경아이 종합개발주식회사’가 이곳의 주택을 하나 둘씩 사들여 철거에 들어간 탓이다.
민간업체가 주택 사들여 철거 시작
“땅값 올린 서울숲이 우리에겐 괴물”
남경아이는 현재 이 지역에 566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짓는다는 계획에 따라 절반쯤 철거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성동구로부터는 지구단위계획 지정 또는 사업승인을 받지 않았다. 이에 대해 성동구청 관계자는 “사업승인 여부는 남경아이의 신청 뒤 노후도 등을 바탕으로 검토할 것”이라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철거에 대해 “개인이 자기 소유의 주택을 철거하겠다는데 구가 뭐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성동구가 손놓고 있는 사이 성수1가 1동 세입자들은 대책 없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서울숲이 들어서고 분당선 건설이 시작되면서 이 지역 땅값은 평당 600만 원에서 2천만 원으로 올랐다. 결국 집주인 80%가 땅을 팔고 떠났다. 1천여 가구나 되던 세입자들 중 떠날 능력이 되는 세입자들도 이미 다 떠나고, 더이상 갈 곳 없는 100여 가구만이 남아 ‘주거권 보장’을 외치고 있다.
세입자 한정숙(53)씨는 “공장지대라 다른 곳보다 공장 임대료와 전세가 싸서 발붙이고 살 수 있었는데, 여길 떠나라면 어디로 가라는 말이냐”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스물 두 살 되던 75년 일자리를 찾아 이 동네로 왔다”는 한씨는 이 동네에서만 30여 년을 살아왔다. 결혼해 아들·딸 낳고 제법 많은 돈도 모았지만, 92년 남편이 운영하던 공장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2억 원 빚더미에 앉았다. 이 빚 때문에 한씨는 10년째 보증금 500만 원·월세 62만 원인 스무 평짜리 공장에서 부품 하청업을 하고 있다. 한씨가 세들어 있는 공장은 아직 팔리지 않았지만 그 ‘다행’은 그리 길어 보이질 않는다. 공장 주인이 “이사비용은 주겠지만 곧 공장건물을 팔겠다”고 한 것이다. 한씨는 “지난 2월에 빚을 다 갚고 허리 좀 펴게 되나 했더니 가도가도 끝이 없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가 91년부터 살고 있는 집 역시 이 동네 한 귀퉁이에 있다. 한씨는 15년 동안 전세 1천만 원짜리 방 두 칸 반지하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2000년 이후 개발 붐에 집주인은 4번이나 바뀌었다. 전세 계약이 끝난 지난 6월23일, 집주인은 남경아이에 집을 팔았다. 한씨는 새 주인이 된 남경아이로부터 얼마 전 ‘(월세) 재계약은 안 된다’는 내용증명을 받았다. 그는 “서울숲이 생겼을 때 공장 투성이인 우리 동네에도 숨쉴 곳이 생겼구나 좋아했는데 이젠 그 숲 때문에 쫓겨날 판”이라며 “서울숲이 우리에겐 ‘괴물’”이라고 말했다.
성수1지역 세입자대책 위원회 박장수 위원장은 “똑같은 세입자라도 재개발지구에 속한 세입자들은 임대주택 등 보호책이 마련되지만, 지역주택조합사업에 속한 세입자들은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성동구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주거권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유영우 사무총장도 “개발 차익을 노리고 주택조합 형식을 내세워 주변 집을 매입 개발하는 민간업체들이 쓸모 있는 집들을 무분별하게 철거하는 등 사회적 비용을 낭비해 사회적 피해가 크다”며 “이 같은 민간개발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주거권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유영우 사무총장도 “개발 차익을 노리고 주택조합 형식을 내세워 주변 집을 매입 개발하는 민간업체들이 쓸모 있는 집들을 무분별하게 철거하는 등 사회적 비용을 낭비해 사회적 피해가 크다”며 “이 같은 민간개발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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