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이 지난해 10월 노동·인권 조례를 제정하는 데 당 차원에서 나서겠다고 밝힌 가운데 3월 현재까지 8개 구·군의회 가운데 4곳에서 노동기본조례를 발의해 1곳에서만 조례가 통과됐다.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 제공
“노동기본조례는 시기상조”(국민의힘 홍대환 남구 의원), “노동자 인권만 보장하는 것은 편향”(국민의힘 최수열 북구 의원)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추진된 대구지역 자치단체들의 노동기본조례 제정이 난항을 겪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지방의원들이 ‘시기상조’ ‘차별’ 등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민주당 대구시당은 당론으로 대구시의회와 8개 구·군의회에서 노동기본조례를 제정하기로 했고, 29일 현재까지 중구, 남구, 북구, 달성군의회 등 4곳에서 조례를 발의했다. 그 결과 지난달 15일 달성군의회, 지난 25일 대구시의회에서 노동인권조례가 본회의를 통과했다. 두 곳 조례에는 자치단체장이 노동자의 권리와 인권 보호를 위한 노동정책기본계획을 5년마다 세우고, 안전한 노동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하지만 남구의회 도시복지위원회는 지난 15일, 북구의회 신성장도시위원회는 지난달 11일, 중구의회 도시환경위원회는 지난달 8일 조례안을 부결했다. 부결을 주도한 국민의힘 쪽은 ‘노동기본조례 제정은 시기상조’라는 주장을 내놓는다. 홍대환 남구 의원(국민의힘)은 “대구시 노동정책기본계획 수립에 맞춰 조례를 제정하는 것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장영철 북구 의원(국민의힘)도 “저도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좋은 조례안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남구에서 노동인권조례를 발의한 정연주 구의원(민주당)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통상) 조례안에 부족한 점이 있거나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심사하기 전부터 서로 조율해왔지만, 이번에는 별다른 조율 과정이 없었다”며 “막상 심사에 들어가니 전문위원 검토 의견부터 부정적이었고, 조례를 보완할 여지도 없이 부결됐다”고 말했다.
이정아 민주노총 대구본부 사무처장은 “대구시민 240만명 가운데 120만명이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시민이다. 노동권에 대한 기본적인 취지를 담은 노동기본조례가 또 다른 차별을 낳는다는 주장은 일하는 사람들이 보편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할 지방의회가 자기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며 “보수정당이 다수를 차지한 대구에서 조례를 발의하기도 쉽지 않았겠지만, 노동정책이 정말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보다 ‘결국 부결됐다’는 결과밖에 남지 않아 아쉽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노동권 보장은 또 다른 차별’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최수열 북구 의원은 “사회에는 다양한 계층이 존재하는데 노동자만 따로 인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편향적인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공무원인 북구의회 신성장도시위원회 전문위원도 “인권이 존중되는 지역사회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찬성 의견과 노동권·인권이란 이름으로 또 다른 편향·차별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반대 의견이 대립하고 있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런 과도한 반대의 바탕에는 다른 지역보다 보수색 짙은 지역 정서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구시 노동 관련 조례 건수는 이동노동자권익보호조례 등 8개로 17개 시·도 가운데 세종(5개), 경북(6개) 다음으로 적고, 생활임금조례는 전국에서 가장 늦은 지난해 12월에야 제정됐다. 17개 시·도 대부분이 제정한 노동인권교육조례도 제정되지 않았다.
실제 최근 북구의회에는 노동기본조례 제정과 관련해 “노동자 편만 드는 편향적인 조례를 반대한다”, “인권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인데 노동자 인권만 인권이냐”는 등 개인 명의의 반대 의견 15건이 접수됐다고 한다. 기초의회 조례안 발의를 두고 주민들 반대 의견이 접수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대구지역 한 기초의회 전문위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노동권을 이야기하면 기초단위에서는 사용자·소상공인 등의 반대 여파를 직접 받는다”며 “국민의힘 쪽에서 조직적 반대가 나온 것도 이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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