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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넘기는 포항 사격장 갈등…조정안 거부 주민들 “더는 못 견뎌”

등록 2021-12-31 05:00수정 2021-12-31 10:33

2019년 미군 헬기 훈련 굉음에 반발
50여년 참아오다 국방부·시에 항의
국방부 “상생안 적극 협력할 것”
지난 2월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주민들로 구성된 수성사격장반대대책위원회가 수성사격장 앞에서 아파치 헬기 사격 훈련을 중단하고 사격장을 폐쇄하라며 집회를 열고 있다. 포항시 제공
지난 2월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주민들로 구성된 수성사격장반대대책위원회가 수성사격장 앞에서 아파치 헬기 사격 훈련을 중단하고 사격장을 폐쇄하라며 집회를 열고 있다. 포항시 제공

“60년 다 되도록 사격장 밑에서 살았습니다. 우리도 오죽하면 이라겠습니까.”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수성리 정서기(70) 이장은 지난 28일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성리에는 1965년에 준공된 1246만4457㎡ 규모(여의도 4.3배)의 해병대1사단 사격훈련장이 있다. 50년 넘게 잠재돼 있던 주민 불만은 2019년 봄 미군 아파치 헬기가 마을 위를 날면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정 이장은 “(2017년) 포항 지진보다 더 진동이 심했다”며 “옆 사람이랑 말을 못 할 만큼 (소음이) 컸고, 야간 훈련에는 잠을 자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일상생활 어려울 정도 소음에도, 군 계속된 불통
2019년 4월 시작된 헬기 훈련은 같은 해 10월, 2020년 2월 세차례 이어졌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10월 발표한 수성리 일대 소음 측정 자료를 보면, 훈련 없는 날 평균 소음 41.6데시벨(㏈)을 기준으로 헬기 사격 훈련은 62.5데시벨, 해병대 지상화기 사격훈련은 65.3데시벨을 기록해 최대 23.7데시벨 차이가 났다. 평균 소음이 10데시벨 이상 차이 나면 일상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본다. 순간 최대 소음은 헬기 훈련 85.2데시벨, 해병대 전차 기동 훈련 107데시벨 등으로 나왔다. 80데시벨은 대도시 교통 소음, 100데시벨은 열차가 지나갈 때의 소음 수준으로 청력 손실을 유발할 수 있을 정도다.

오래 묵은 불편이 분노로 변한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2019~2020년 세차례 훈련마다 주민 항의가 계속됐지만 군은 대책 마련 등 성의 있는 대화에 나서지 않았다. 결국 주민들은 훈련이 시작된 지 1년4개월 만인 지난해 8월 수성사격장반대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군의 불통은 지역 여론을 악화시켰다. 같은 해 10월로 예정된 네번째 훈련을 앞두고 포항 지역 국회의원까지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가 사격장 앞에서 열렸다. 그제야 군은 대화에 나서 11월 훈련을 잠정 중단했고, 포항시, 대책위와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올해 2월 들어 군은 예고 없이 훈련을 재개했다. 이번엔 포항시가 직접 나서 “국방부가 지난해 11월 포항시민에게 주민 동의 없는 미군 아파치 헬기 사격 훈련은 없다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같은 달 훈련 반대집회에는 국회의원만이 아니라 포항시의회, 경북도의회 등도 참가할 만큼 포항시 전체가 들썩였다. 군은 이번에도 강한 반발을 겪고서야 훈련을 잠정 중단하고 중재에 나선 권익위 조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난 2월 주한미군이 아파치 헬기 사격 훈련을 다시 시작하자, 주민들은 수성사격장 입구에서 집회를 열어 ‘국방부장관·한미연합사령관’이라는 펼침막을 붙인 상여를 불태웠다. 포항시 제공
지난 2월 주한미군이 아파치 헬기 사격 훈련을 다시 시작하자, 주민들은 수성사격장 입구에서 집회를 열어 ‘국방부장관·한미연합사령관’이라는 펼침막을 붙인 상여를 불태웠다. 포항시 제공

조정안 발표에도 주민 반발 여전
열달이 흐른 지난달 19일 권익위는 조정안을 발표했다. 조정안에는 △해병대와 주한미군의 사격 훈련 여건 보장 △주민 집단이주 및 소음 완충지대 조성 △소음 감소 대책 마련을 위한 용역 추진 △지역발전사업 추진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대책위는 조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헬기) 사격 훈련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일 권익위와 대책위, 군이 참여하는 협의체에서 12월 예정됐던 훈련을 1월 말까지 중단하기로 했지만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 특히 군은 수성사격장이 미 헬기 훈련의 유일한 장소라는 점을 들어 훈련을 재개할 뜻을 내비친 상태다. 하지만 대책위 쪽에서는 훈련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군을 향해 주한미군 헬기 훈련이 원래 경기도 포천시 영평사격장에서 진행되다가 주민 반발로 2018년부터 중단되고 수성사격장으로 옮기게 된 사실을 내세워 “지역차별 아니냐”며 맞서고 있다. 정석준 수성사격장반대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경기도 포천은 안 되고 포항은 괜찮다는 말이냐”며 “포 소리도 참고 살았는데 이젠 헬기 훈련까지 말도 없이 들여놓고 일방적으로 참으라는 것이냐”고 꼬집었다.

김석준 권익위 국민고충긴급대응반 과장은 “권익위는 신청인을 중심으로 논의한다. 57년 동안 피해를 본 주민들 입장에 서서 중재를 끌어내겠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권익위는 주민대책위에 주민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 요구사항을 제출하라고 요청했고, 요구사항이 제출되면 민관군협의회를 열어 조정을 추진한다고 알고 있다. 국방부는 상생 방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미군 쪽에 여러차례 해명을 요청했지만 답을
권익위는 지난 10월 포항시 남구 장기면 수성리 6곳에서 소음을 측정한 결과, 사격 훈련이 있는 날의 소음은 평소보다 최대 23.7데시벨(㏈)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아파치 헬기가 이착륙하는 모습. 권익위 제공
권익위는 지난 10월 포항시 남구 장기면 수성리 6곳에서 소음을 측정한 결과, 사격 훈련이 있는 날의 소음은 평소보다 최대 23.7데시벨(㏈)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아파치 헬기가 이착륙하는 모습. 권익위 제공

내놓지 않았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지난 10월 국민권익위는 국방부, 해병대, 주한미군 등과 간담회를 열어 포항 수성사격장 소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라고 주문했다. 권익위 제공
지난 10월 국민권익위는 국방부, 해병대, 주한미군 등과 간담회를 열어 포항 수성사격장 소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라고 주문했다. 권익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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