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1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2022년도 서울시 예산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국에서] 이순혁 전국부장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하고 3주쯤 지난 뒤인 지난 4월27일,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와 관련한 정책을 발표했다. “유턴하지 않고 (현재대로) 진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34% 공정이 진행됐고, 250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기에 “광화문광장을 원상 복구하면 최소 400억원의 매몰 비용이 발생하고 장기간 광장 사용이 어려워 시민들이 불편을 겪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선거운동 때는 “도대체 누굴 위한 공사인지 묻고 싶다”며 비판한 사업이었지만, 시장에 취임한 뒤엔 “행정의 연속성을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개인적으로 현재 진행 중인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방식을 지지하는 건 아니지만, 당시 발표를 보며 오 시장이 좀더 큰 사람이 돼 돌아왔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여야 모두 극렬 지지층의 목소리나 입김이 세지며 승자독식형 정치문화가 강해지는 상황에서, 어찌됐건 타협·양보하는 모양새를 보였기 때문이다. 당내 경선에서 보수색 짙은 나경원 후보를 제친 힘이었던 ‘개혁적·합리적 보수’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시도로도 이해됐다.
“전임 (박원순) 시장께서 오셔서 처음에 전임 시장의 일을 뒤집고 했던 기억이 선명할 것이다. 그때 제가 사실 굉장히 가슴이 아팠고, 속으로는 피눈물이 나는 경험을 했다. 그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서 쉽게 방향을 전환하거나 취소하고 없던 일로 하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 (중략) 물론 시정을 하다 보면 철학과 원칙이 달라서 수정하는 일은 조금씩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전혀 없겠다고 장담은 못 하지만, 전임 시장 초기 때처럼 깊은 검토 없이 마구잡이 칼 휘두르는 그런 부분은 분명히 없을 것이다.” 취임 당일 시 간부들을 만나 했다는 이런 이야기에도 조금은 믿음이 갔다.
그 뒤로 6~7개월이 흐른 지금, 그런 기대나 판단은 순진한 오판이었음이 드러났다. 그 뒤 행보들은 ‘무상급식 반대’를 고집하며 ‘나만이 옳다’는 싸움을 마다하지 않던 (그러다 시장직도 던진)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격언을 너무 쉽게 간과했던 것 같아 스스로 부끄러움이 느껴질 정도다.
서울시는 9월 들어 △노들섬 복합문화공간 △사회주택 △베란다형 태양광보급사업 △마을공동체 △플랫폼창동61 등 박원순표 정책들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시작했다. 이를 알리는 브리핑 제목은 ‘서울시 바로 세우기―비정상의 정상화’. 오 시장은 이 자리에서 “지난 10년간 (시민사회분야) 민간보조금과 민간위탁금으로 지원된 총금액이 무려 1조원”, “시민단체형 다단계”, “시민의 혈세로 어렵게 유지되는 서울시의 곳간은 시민단체 전용 에이티엠(ATM)기로 전락” 같은 날 선 발언들을 쏟아냈다.
전임 박 시장은 서울시정에 시민들의 직접 참여, 즉 민관협치를 추진해왔다. 관료들만으로 행정을 꾸려가는 건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나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모든 게 사람이 하는 일일진대, 그쪽이라고 자리나 사업에 욕심을 내는 사람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는 ‘시민단체가 서울시 곳간을 에이티엠기로 삼았고, 예산 1조원이 낭비됐다’는 식의 선정적인 공격과는 다른 얘기다. 시민단체 모두가 문제인 것처럼 프레임을 짜서 던져놓고는, 정작 1조원이 어떻게 계산된 것인지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차분하게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합당한 조치를 한 게 아니라, 감사 시작 단계에서 일부 사례를 앞세워 벌인 공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백보 양보해 오 시장 말대로 10년간 1조원이면 한해 1천억원이란 얘기인데 이는 40조원쯤 되는 서울시 예산의 0.25%다. 이 정도만 손보면 서울시가 비정상에서 정상이 되고 바로 세워질까?
오해는 마시라. 박원순표 사업들을 건드리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누가 만들었건 공공의 정책이나 사업에 성역이 있을 이유는 없다. 문제가 있으면 조사해 그에 합당한 조처를 하면 된다. 하지만 싸잡아 매도해놓고 시작하는 방식의 청산은, 오 시장 스스로 언급했던 “깊은 검토 없이 마구잡이 칼 휘두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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