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인터뷰―이영란 WWF 해양보전팀장
제주서 사체로 발견된 참고래 부검 집도
“고래는 먹는 것이 아닌 보호해야할 대상”
제주서 사체로 발견된 참고래 부검 집도
“고래는 먹는 것이 아닌 보호해야할 대상”
이영란 팀장과 연구진들이 고래의 몸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유용예 작가·WWF 제공
도축장 칼이 필요했다 12월24일, 제주대에서 돌고래를 연구하는 김병엽 교수에게 연락을 받은 이영란 팀장은 전국의 고래 연구자들에게 다급하게 전화를 돌렸다. 국내에서 10m 이상 규모의 대형 고래를 공식적으로 부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1월2일, 각 학교 연구실과 해양 보전·환경 단체에서 모인 30여 명으로 부검팀이 꾸려졌다. 이날 저녁 각 연구실에서 이번 부검을 통해 무엇을 연구할 것인지, 해외 연구 사례는 무엇이 있는지 등을 발표했다.
1월3일 이영란 WWF 해양보전팀장이 참고래 부검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유용예 작가·WWF 제공
1살 고래는 왜 죽었을까 부검 당시 눈에 보이는 원인을 찾기는 어려웠다. 뱃속에서 플라스틱, 스티로폼 조각, 1m 가량의 밧줄 따위가 나오긴 했지만 위장을 틀어막고 있지는 않았다. 오래 굶은 흔적도 없었다. “이미 부패가 진행돼 장기들이 녹아 있긴 했지만, 고래들은 피부 아래에 블러버라는 두꺼운 지방층을 형성해두고 잘 먹지 못하는 시기에 거기에서 영양분을 공급 받아요. 오래 굶거나 임신을 했을 때는 이 부분이 아주 얇아지는데, 그렇지가 않았어요. 배에 부딪힌 큰 상처 같은 것도 눈에 띄지 않았고요.” 이영란 팀장이 설명했다.
고래의 뱃속에서 발견된 스티로폼 조각, 끈 등 해양 쓰레기. 사진 유용예 작가·WWF 제공
어쩌면 ‘로또’가 되었을… 고래는 연구·보호해야할 대상이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자원으로 읽힌다. 발견된 참고래는 어린 개체로 몸이 다 자라지 않은 데다 발견 당시 죽은지 10일 이상 지나 부패가 진행된 상태여서 육안으로만 확인했을 때 밍크고래, 브라이드고래, 참고래 등 의견이 분분했다. 일부 매체에서는 보호종 지정이 되어 있지 않아 시중 판매가 가능한 밍크고래였다면 ‘바다의 로또’가 됐을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로 2016년에는 경북 포항 구룡포에서 어망에 걸려 죽은채 발견된 11m 크기의 참고래가 해경과 수협의 실수로 약 3억원에 유통된 적이 있다.
참고래 공동 부검 연구에 참여한 연구진들. 사진 유용예 작가·WWF 제공
고래가 인간에게 보내는 신호 한편으로 이 팀장은 해양동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태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이번 연구를 통해 “고래가 자원이 아닌 연구·보전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는, 전환의 포문을 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구진들은 이번 참고래 공동 부검 연구를 통해 바닷속 먹이 사슬의 정점인 고래를 통해 해양 생태계를 심도 있게 들여다 볼 계획이기도 하다. 이 팀장은 “기초 생태 연구가 많이 될수록 우리가 바다에 대해 많이 알 수 있게 되고,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영향도 알게 된다”고 말했다. 고래의 매력에 빠져 해양 동물을 연구하기 시작한 이영란 팀장은 멸종을 향해 내달리는 고래의 위기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고래연구소, 미국해양동물구조단체 ‘더 마린 마말센터’, 아쿠아리움 등을 거쳐 비영리 환경단체인 WWF에서 일하고 있다. 최근에는 ‘토종 돌고래’로 알려진 상괭이 보전에 힘을 쏟고 있다.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상괭이는 한국 바다에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다. 매해 2천 마리씩 개체 수가 감소하고 있기도 하다. 사라져가는 고래가 우리에게 보내오는 신호는 무엇일까. 고래는 바다 생태계를 정상 순환하게 하는 핵심종이다. 지구 면적의 70%를 차지하는 바다가 건강을 잃는다는 것은 곧 인류의 재앙으로 연결된다. 고래들이 보내오는 신호가 점멸하고 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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