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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 흰고래야 미안해 - 세계 최초 ‘돌고래 바다쉼터’

등록 2019-10-07 09:37수정 2019-10-07 18:05

[애니멀피플]
프리윌리 ‘케이코’가 살던 아이슬란드 헤이마이섬
바다 울타리에서 여생 보낼 두 흰고래를 만나다
세계 최초의 돌고래 바다쉼터의 ‘입주민’인 리틀 화이트(왼쪽)와 리틀 그레이가 중국 상하이 창펭수족관에서 헤엄치고 있다.  시라이프재단 제공
세계 최초의 돌고래 바다쉼터의 ‘입주민’인 리틀 화이트(왼쪽)와 리틀 그레이가 중국 상하이 창펭수족관에서 헤엄치고 있다. 시라이프재단 제공
캇자 메리 헬가도터(Katja Marie Helgadottir·22)는 아이슬란드의 외딴 섬에서 태어났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헤이마이(Heimaey) 섬은 사람보다 바다동물이 많고 바다동물보다 퍼핀이 많은 곳이다. 퍼핀은 뭉툭한 부리에 장난기 어린 얼굴을 하고 있는 바닷새인데, 매년 여름이면 이곳에서 수만마리의 새끼를 기른다. 헬가도터는 어렸을 적 이 섬의 아이들이 모두 하는 것처럼 ‘퍼핀 정찰대’를 하곤 했다. 길을 잃은 새끼들을 구조하는 일이다.

그런 그도 이곳 헤이마이 섬이 나라 밖에서는 고래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범고래 ‘케이코’가 스물한 살 때인 1998년 고향인 이 섬에 돌아와 자유를 모색했었다는 사실, 4년 뒤에 혼자 대서양을 건너 노르웨이의 피오르에서 죽었다는 사실, 그 범고래가 바로 영화 <프리윌리>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은 이 섬의 역사에 잘 새겨져 있지 않다.

섬사람들이 연중 물고기를 잡으며 생업에 종사하는 이유 말고도 아이슬란드가 최근까지도 포경 재개를 주장하며 고래를 잡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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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코가 살던 그 바다

지난 8월22일, 폭풍이 몰아친 뒤 모처럼 해가 반갑게 인사한 날이었다. 헬가도터도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네, 여기서 태어나 쭉 자랐어요. 케이코요? 잘 알죠. 그런데 어렸을 적에 일어난 일이라 기억이 없어요.”

지금 케이코의 자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케이코가 왔을 때 이 작은 섬은 대통령이라도 온 마냥 들떴다. 학교에서 빠져나온 어린이들은 거리에 서서 고향에 돌아온 케이코를 환영했다.

아이슬라드 헤이마이섬의 돌고래 바다쉼터. 울타리 안의 넓은 공간에서 흰고래가 살게 된다. 남종영 기자
아이슬라드 헤이마이섬의 돌고래 바다쉼터. 울타리 안의 넓은 공간에서 흰고래가 살게 된다. 남종영 기자
수도 레이캬비크의 포경업자가 두 살짜리 케이코를 야생에서 포획해 돌고래쇼장으로 보낸 ‘원죄’가 있었기에, 아이슬란드 정부와 언론은 이 세계적 이베트에 난감해 했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꾸밈이 없었다. 저게 그 프리윌리야! 마이클 잭슨이 원더랜드로 데려가겠다던 그 범고래라고!

케이코가 떠나고 17년이 흐른 지난 6월. 헤이마이 섬은 또 한번 고래 식구를 맞았다. ‘리틀 그레이’와 ‘리틀 화이트’라는 이름의 흰고래(벨루가)다.

그들도 케이코 못지 않은 절박한 삶을 살았다. 3~4살 때 러시아 오호츠크 해에서 그물에 걸렸다. 이 불쌍한 새끼들은 수족관용으로 길들여지기 위해 백해의 한 도시로 갔다가, 다시 중국 상하이의 창펭수족관에 팔려가 흰고래쇼를 했다. 둘이 카나리아처럼 노래를 부르면, 하얀 몸이 메아리처럼 반짝거렸다. 중국에는 너도나도 수족관이 세워질 때였고, 가장 인기 볼거리는 흰고래였다.

그러다가 변화가 찾아온다. 2012년 영국에 본부를 둔 멀린엔터테인먼트의 세계 최대의 수족관 ‘시라이프’가 창펭수족관을 인수한 것이다. 동물단체는 이 사건을 눈여겨 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시라이프는 일찍이 고래류 전시·사육을 중단한 ‘착한 수족관’을 표방하는 업체였기 때문이다. 창펭수족관에는 흰고래 세 마리가 있었다. 리틀 그레이, 리틀 화이트 그리고 준준. 2017년 가장 나이가 많았던 준준이 죽었다.

시라이프는 세계 최초로 ‘돌고래 바다쉼터’ 계획을 발표한다. 리틀 그레이와 리틀 화이트는 케이코와 마찬가지로 어렸을 적 잡혔기 때문에, 바다에 풀어주어도 야생 무리에 합류해 살아갈 확률은 적었다. 대신 둘을 아이슬란드 바다에 옮긴다는 게 이들의 계획이었다.

천혜의 만에 울타리를 쳐 두 마리를 넣고,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도록 하자!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시라이프는 공익재단 ‘시라이프재단’에 이 일을 맡겼다.

리틀 화이트와 리틀 그레이는 9223㎞를 날아 아이슬란드에 도착했다. 두 흰고래를 운송한 카고룩스 비행기. 시라이프재단 제공
리틀 화이트와 리틀 그레이는 9223㎞를 날아 아이슬란드에 도착했다. 두 흰고래를 운송한 카고룩스 비행기. 시라이프재단 제공
작업은 일사천리로 추진됐다. 창펭수족관에서 흰고래를 따라온 4명의 사육사, 해양단체 ‘고래와 돌고래 보존’(WDC)에서 파견한 직원 등이 헤이마이 섬으로 왔다. 항구의 3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을 개조해 방문자 센터와 간이수조를 만들고, 과거 케이코가 있었던 클레츠비크 만에 울타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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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으면 안 되는 이유

두 흰고래는 상하이에서 레이캬비크까지 10시간의 비행, 다시 육로 3시간, 바닷길 30분의 여행을 마치고 두 흰고래는 헤이마이 섬에 도착했다. 헬가도터도 안내 업무로 이들에 합류했다.

헤이마이 섬의 돌고래 바다쉼터는 크게 두 장소로 분류된다. 하나는 방문자 센터이고, 하나는 클레츠비크 만 Klettsvik bay 에 있는 바다쉼터다. 수족관에서 퇴역해 이곳에 온 쇼돌고래들은 먼저 방문자 센터에 있는 임시수조에 수용된다. 바다에 나가기 전 몸을 만드는 곳이다. 관람객들은 이곳에 임시 수용된 돌고래를 창문을 통해 볼 수 있다. 한 가족이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안내원이 제지했다.

“이곳에선 사진을 찍으면 안 돼요.”

그러고보니, 수조에 달린 창문 이름도 ‘동물복지평가 관찰창’이다. 구경꺼리가 아니라 고래의 상태를 측정하는 통로라는 뜻이다.

리틀 그레이와 리틀 화이트는 지난 6월 도착한 뒤에 아직 여기에 머물고 있었다. 과거에 살던 수족관보다 좁고, 아무런 자극이 없으니 더 힘들어졌을 것 같기도 했다. 헬가도터가 말했다.

“이번 가을에 클레츠비크 만으로 옮기기로 했는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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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보살필 것이다”

원래는 이번 여름에 보내려고 했는데, 섬 도착 일정이 늦춰지면서 계속 지연됐다. 아이슬란드의 바닷물은 수족관보다 훨씬 차고 바람이 분다. 두 흰고래는 임시수조에서 차가운 온도에 적응하고, 살을 찌워야 한다. 현재 수조의 수온은 15도. 둘의 몸무게는 각각 1톤씩이다. 헬가도터는 “임시수조의 수온을 10도까지 점차 낮추고, 각각 200킬로그램 더 살을 찌워야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시라이프재단은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내년 봄으로 이동 시기를 늦춘다고 밝혔다. 어쨌든 두 흰고래가 바다쉼터로 나가면 32,000㎡의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대략 가로 세로 180m 크기, 어느 수족관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방문자 센터의 입장료는 3500크로네(3만4000원)다. 내년 봄 두 흰고래가 클레츠비크 만에 머물게 되면, 배를 타고 멀리서 볼 수 있는 프로그램까지 합쳐 8500크로네(83000원)를 받는다. 이것은 어쩌면 ‘변형된 수족관(동물원)’은 아닐까? 앤디 불(Andy Bool) 시라이프재단 대표는 “바다쉼터는 고래들을 보호하는 비영리적인 공간”이라며 “우리는 두 흰고래를 죽을 때가지 보살필 것이다. 30년, 40년 이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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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돌아갈 수 없는 바닷새

방문자 센터의 입구에는 구조되어 치료받고 있는 퍼핀을 관찰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마침 퍼핀이 새끼를 기르는 ‘퍼플링’ 시기여서 길 잃은 새끼들이 많았다. 어떤 새끼는 새카맣게 기름을 뒤집어 썼다. 헬가도터에게 물었다.

“어린 새끼들은 다시 야생에 방사되나요?”

“아니오, 너무 어릴 적 데려와서 힘들어요.”

그리고 그가 말을 이었다.

“이 퍼핀은 바닷물에 들어가질 못할 거예요. 어미한테 배우지 못했거든요.”

헤이마이 섬에서 번식하는 퍼핀. 남종영 기자
헤이마이 섬에서 번식하는 퍼핀. 남종영 기자
케이코도, 리틀 그레이와 리틀 화이트도 어렸을 적 어미를 잃고 잡혔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최초의 사회성을 학습하는 공간은 가족이다. 가족과 함께 자라지 못한 동물은 커서 사회에 복귀하더라도 좀처럼 불안을 떨쳐낼 수 없다. 그래서 어렸을 적 야생에서 새끼를 잡아 가둬 키우는 행위가 동물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고, 그런 동물들이 사는 동물원이 인간에게 ‘씻을 없는 원죄’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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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에 갇힌 고래들을 위해

그렇다면 우리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 미안함을 해소하는 길은 무엇일까? 그래서 돌고래 바다쉼터가 탄생한 것이다. 캐나다와 이탈리아, 미국 시애틀에서도 돌고래 바다쉼터가 논의되고 있다.

한국에는 수족관 3곳에 흰고래 9마리가 있다. 한화 아쿠아플라넷 여수 3마리,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2마리, 거제씨월드 4마리 등이다. 앤디 불 대표는 “바다쉼터가 수족관에서 고래를 전시하는 행위에 대한 대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른 흰고래들도 클레츠비크 만에서 리틀 화이트와 리틀 그레이를 만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헤이마이(아이슬란드)/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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