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0년 전만 해도 파주 통일로 주변에서도 뜸부기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뜨음, 뜨음, 뜸, 뜸, 뜸….” 지금도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앞이다. 당시 대규모 아파트 단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큰길에서 조금 떨어진 논에서 수컷이 해마다 짝을 부르고 있었다. 소리를 따라 논두렁을 조심스럽게 걷다 보면 뜸부기가 보였다. 번식깃을 한 수컷의 머리 위로 솟은 붉은 이마판이 키 작은 어린 모 사이로 보일락 말락 했다. 운 좋을 땐 논두렁에 앉아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논에 시설재배용 하우스가 하나둘 들어서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정겨운 뜸부기 소리가 사라졌다.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귀에 익숙한 동요 오빠생각에 나오는 뜸부기와 뻐꾸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였다. 요즘은 쉽게 보기 힘들다. 뜸부기는 천연기념물 제446호로 보호를 받는 처지가 됐다. 기념물로 지정했지만 전국적 실태조사나 보호 대책은 따로 없다. 이 땅에서 사라질지 모를 운명을 걱정해야 될 처지다.
뜸부기는 ‘쌀 농사꾼’이다. 이른 새벽과 해질 무렵에 주로 먹이를 찾아다닌다. 곤충과 우렁이를 잡아먹는다. 풀씨도 먹는다. 논에서 벌레를 잡고 벼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잡초를 제거한다. 농사를 짓고 있는 셈이다. 몸으로 논을 지키는 생태 친화적 ‘쌀 농사꾼’이다.
뜸부기가 사는 논은 또 건강하다. 무농약 친환경 농법만이 새를 논으로 불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쌀 농사꾼의 수고와 유기농 농사에 힘쓰는 농부의 땀을 합쳐 생산한 쌀은 더 비싸게 팔수 있다. 뜸부기 쌀은 이미 인기 브랜드다.
한번은 ‘쌀 농사꾼’인 뜸부기 보호운동을 하던 노영대 임진강 생태체험학교장과 새를 찾아 나섰다. 논두렁에 위장막을 치고 여러 해 동안 뜸부기를 관찰하던 논이 있었다. 농약 사용을 줄여 먹이가 풍부해지니 뜸부기가 찾아왔다고 했다. 논은 임진강 건너 민통선 지역을 등지고 있었다. 앞으로는 야산이 막고 있어 출입구 역할을 하는 작은 농로로만 들어올 수 있었다.
그는 뜸부기에 대해 궁금한 것도 많았다. 평소 눈에 잘 띄지 않는 암컷을 이번엔 만날 수 있을지, 둥지는 어디에 만들어 놨는지, 주로 무엇을 먹는지. 그의 쌍안경과 망원렌즈는 벼 포기 사이사이를 놓치지 않고 주시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이른 새벽부터 기다렸지만 띄엄띄엄 뜸부기의 소리만 나고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모는 이미 새가 딱 몸을 숨길 수 있을 만큼 컸다.
“뜸, 뜸, 뜸….” 희미한 소리를 쫓아 망원렌즈를 돌렸다. 새가 벼 위로 훌쩍 날아올랐다. 번식깃에 머리엔 붉은 이마판이 선명한 수컷이다. 아직 마르지 않은 아침 이슬이 아침햇볕에 반짝거렸다. 사진처럼.
사진·글 김진수 한겨레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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