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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마, 떠나지 마…남방큰돌고래의 애도

등록 2018-07-09 11:59수정 2018-07-09 13:34

[애니멀피플] 특이 행동 포착된 제주 남방돌고래
죽은 새끼 주둥이로 밀며 이동하고
해경이 사체 데려가자 끝까지 쫓아와
어미는 죽은 새끼 애도하고 있었을까
애착심, 죽음 부정하는 행위로 추정돼
지난 5월 31일 제주 앞바다에서 한 돌고래(가운데)가 죽은 새끼 돌고래(오른쪽)를 밀며 이동하고 있었다. 한두 번 정도는 해수면 위로 세게 밀어 올렸다.
지난 5월 31일 제주 앞바다에서 한 돌고래(가운데)가 죽은 새끼 돌고래(오른쪽)를 밀며 이동하고 있었다. 한두 번 정도는 해수면 위로 세게 밀어 올렸다.
2018년 5월 31일 제주 바다는 바람과 구름 덕에 선선했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제주 바다를 돌며 남방큰돌고래를 찾았다. 맨눈으로 행동을 관찰하며 돌고래 사진을 찍던 중이었다. 그러나 이날은 조금 다른 무언가가 카메라 뷰파인더에 나타났다.

30마리 정도 되는 무리 뒤쪽을 한 돌고래가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주둥이에 무언가를 얹어 해수면 위로 올렸다. 처음에는 먹이를 물고 나온 것이라 생각하고 빠르게 셔터를 눌러댔다. 그러나 그것은 먹이가 아니라 죽은 새끼 돌고래였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에게만 보이는 줄무늬 자국(베넷 주름·fetal fold)이 선명했다. 어미 돌고래로 추정되는 개체는 계속해서 죽은 새끼 돌고래를 주둥이 위에 얹어 밀며 이동하고 있었고, 한두 번 정도는 해수면 위로 세게 밀어 올렸다.

죽은 새끼 들어 올리는 어미

어미는 죽은 새끼를 ‘애도’하고 있었을까?

이번 사례는 사실 처음이 아니다. 죽은 개체를 수면 위로 들어 올리는 행동은 제주에서 돌고래 행동연구를 하면서 여러 번 목격했다. 2017년에도 아주 작은 돌고래를 주둥이로 밀고 다니는 돌고래를 본 적이 있다. 파도가 꽤 강한 날이었는데, 1m도 되지 않는 새끼 돌고래의 사체를 끈질기게 데리고 다니는 것을 이틀 동안 관찰했다.

2014년 10월 서귀포 근처 앞바다에서 본 사례는 조금 달랐다. 한 성체 돌고래가 성체에 가깝게 자란 사체를 맴돌고 있었다. 사체는 체내에 가스가 가득 차 수면 위를 떠돌고 있었다. 돌고래는 연안 쪽으로 떠내려오는 사체를 자꾸 먼바다 쪽으로 밀어냈다. 배가 접근하면 배 반대쪽으로 사체를 밀고 갔다. 해양경찰이 사체를 배 측면에 묶어 항구로 데려가니, 이 돌고래는 날카로운 휘슬 음을 내며 배 측면에 바짝 붙어 항구 안쪽까지 따라갔다. 제보와 관찰 기간을 고려하면, 이 돌고래는 적어도 닷새 동안 끈질기게 사체가 뭍으로 떠내려가는 것을 막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돌고래는 2015년 새끼로 추정되는 개체와 함께 발견돼 암컷이라는 게 확인됐다.

2014년 10월 서귀포 앞바다에서는 한 성체 돌고래가 돌고래 사체를 맴돌며 떠나질 않았다.
2014년 10월 서귀포 앞바다에서는 한 성체 돌고래가 돌고래 사체를 맴돌며 떠나질 않았다.
돌고래 사체(왼쪽)를 등으로 밀어 올리고 있다.
돌고래 사체(왼쪽)를 등으로 밀어 올리고 있다.
죽음을 슬퍼하는 듯한 동물의 행동을 우리가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지난 5월 초 이탈리아 파도바대학의 지오반니 베어지 교수 등 연구팀은 학술지 <동물학>에 고래와 돌고래의 죽은 개체들에 대한 행동 반응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1970년부터 2016년까지 전 세계에서 보고된 78개 사례를 수집했다. 고래류 88종 중 20종에서 수집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대부분(92.3%) 돌고래류에서 이런 행동이 발견됐으며, 이 중 혹등돌고래(Sousa)와 큰돌고래(Tursiops) 속에 속한 돌고래들이 절반 이상(55.1%)을 차지했다.

이들이 수집한 사후 행동은 대체로 △죽은 개체와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거나 △반복되는 육체적 접촉(부드럽거나 거칠 거나) △죽은 개체를 수면 위로 밀어 올리거나 △떠 있는 개체를 수면 밑으로 누르는 행동 △사체를 데리고 다니는 행동 등이었다. 총 78건 중 28건에서 성별이 확인됐는데, 75%는 죽은 새끼나 미성숙 개체에 대해 암컷이 보이는 행동이었다. 죽은 돌고래는 암컷의 새끼였을 것이다.

그럼 이런 사후 행동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선 암컷의 경우 활기가 없거나 아픈 새끼를 회복·보호하려는 시도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개체가 생존에 도움이 되는 행동으로서의 가치(적응적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죽은 개체 주변을 머물며 사체를 방어하거나 함께 이동하는 행동 등은 에너지만 소모할 뿐 적응적 가치가 없다. 연구팀은 이런 행동이 강한 애착 때문에 ‘놓아주기’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개체의 죽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 혹은 죽음을 부정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수컷의 사후 행동은 암컷과는 다른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성별이 알려진 사례 중 25%는 수컷이었는데, 죽은 성체나 준성체에 성적 관심을 보이는 행동, 죽은 새끼의 사체를 암컷 주변에서 데리고 다니는 행동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수컷끼리 경쟁을 하다 죽은 개체를 향한 행동이거나 돌고래류에서 나타나는 영아살해 같은 행동으로, 암컷에서 나타나는 죽은 개체에 대한 애도와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돌고래의 슬픔을 씻어주기 위해선…

그럼 다시 제주도로 돌아와서, 우리가 관찰한 행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014년 10월에 관찰한 사체는 미성숙한 암컷이었고, 이 주위를 맴돌던 성체 또한 암컷이었다. 죽은 개체와 성체의 관계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며칠 동안이나 부패한 사체를 홀로 보호한 암컷 돌고래는 죽은 개체에 대해 오랜 애착과 강한 사회적 유대감을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엔 데이터가 충분치 않다. 이런 행동을 보인 성체가 암컷인지 수컷인지 알 수 없어 해석이 어렵다.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데이터를 쌓아야 하는 이유다.

제주도에서 사는 남방큰돌고래의 삶은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치 않다. 끝없이 늘어나는 바다의 소음과 해양 쓰레기, 그리고 점점 줄어드는 자유로운 바다 공간과 먹이로 인해 그들의 삶은 팍팍하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바뀌지 않으면 돌고래들의 애도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주/김미연, 장수진 MARC(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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