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가 물 위에 얼굴을 내밀고 서 있는 동작은 자연에서는 거의 하지 않는 동작이다. 수족관에서 먹이를 받아먹는 습관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한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26일 오후 3시, 영하 20도에 가까운 강추위 속에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돌고래 방류를 촉구를 촉구하는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회원들의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이날 최수영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사무국장은 “갇혀있는 돌고래를 모두 바다로 보내자는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지난해 대포와 금등이 방류 이후 후속 방류가 없는 추가 방류가 이어지길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국내에는 큰돌고래, 남방큰돌고래 1마리, 흰고래 9마리, 큰돌고래 29마리(혼혈 포함) 등 39마리의 돌고래가 수족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수족관 사육·전시에 적합하지 않다”
사실 수족관에서 자란 돌고래를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2013년 제주 바다로 돌아간 제돌이처럼 성공할 수도 있지만, 지난해 방류된 돌고래, 대포나 금등이처럼 성공 여부를 확인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수족관 생활에 적응해 야생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되찾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도 일단은 돌고래를 가두고 이를 보며 즐기던 수족관과는 다른 수족관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지난해 6월 미국 워싱턴주에서 만난 동물복지협회(Animal Welfare Institute)의 나오미 로즈 박사는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아야 할 이유는 없어요. 다만
갇혀 살기에 적합한 종이 있고 적합하지 않은 종이 있습니다. 수족관이 적합한 종이 잘살 수 있도록 서식환경을 마련해준다면 좋은 아쿠아리움도 가능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보통 수족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물은 단연코 대형포유류인 고래류 동물인데, 고래 없는 수족관이 가능할까요? 동물보호단체는 고래류의 사육과 전시는 왜 하지 말라고 하는 걸까요.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회원들이 돌고래 방류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제공
학계에서는 동물도 자의식이 있는지 실험을 해왔습니다. 거울 앞에서 자신을 봤을 때 거울에 비친 모습이 자신인지 알아보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어떤 침팬지나 오랑우탄, 돌고래, 코끼리, 범고래와 큰돌고래 등도 실험을 통과했습니다. 예를 들어 마취 상태일 때 눈썹을 붉게 물들인 침팬지가 거울을 보고 와서는 자신의 눈썹을 만지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아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행동이지요.
이렇게 인간은 아니지만 자의식이 있다고 볼 수 있는 동물들을 ‘비인간인격체’라고 부릅니다. 적어도 이들만이라도 동물원이나 수족관 같은 ‘감옥’에서 살게 해선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돌고래나 범고래의 수족관 사육, 전시하지 않기로 한 수족관이나 도시, 나라는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바다를 헤엄치고 있다. 고래연구센터 제공
지난 18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밴쿠버 수족관은 고래의 사육과 전시를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수족관은 60여년 동안 각종 고래를 전시하면서 연구를 해왔는데요. 앞으로는 구조와 치료만 한다고 합니다.
이 수족관이 동물보호단체의 요구대로 고래의 사육과 전시를 하지 않기로 결심한 배경에는, 수족관을 관할하는 공원관리위원회가 지난해 5월 수족관에 돌고래 반입을 금지하는 조례를 의결한 데에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11월 수족관에서 관리하던 흰고래 두 마리가 죽고 논란이 커지자 수족관이 입장을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래류의 사육과 전시를 하지 말라는 동물보호단체의 주장에 힘이 실렸습니다.
지난해 8월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 의회가 돌고래를 포함한 해양 포유류의 쇼를 금지했고, 돌고래를 가두거나 공연시키면 30만 페소(약 1900만원)의 벌금을 물리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5월 프랑스는 돌고래와 범고래의 수족관 내 번식과 추가 도입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이 법은 수족관이 범고래와 돌고래를 사육하려면 최소한 2000㎡(돌고래)와 3500㎡(범고래)의 공간을 마련하라고 했죠. 애초에는 800㎡만 하면 됐으니 수족관으로서는 강화된 규제대로 하느니 전시를 포기하는 걸 선택하도록 유도한 거죠.
범고래 쇼로 유명한 시월드가 있는 2014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도 범고래의 포획과 사육, 상업적 공연을 금지하는 법이 의회를 통과했습니다. 2013년 인도는 돌고래 수족관의 추가 설치를 금지했고, 2012년 그리스 의회는 돌고래를 포함한 동물쇼를 금지했습니다. 2005년 칠레와 코스타리카는 고래류의 수조 사육을 금지합니다. 이미 영국에서는 1993년에 마지막 수족관이 문을 닫았습니다.
범고래들이 바다를 헤엄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37년 동안 52마리 폐사
한국은 사정이 다릅니다.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가 발표한 지난해 5월 자료를 보면 1990년부터 2017년까지 98마리의 돌고래(흰고래 포함)를 들여왔고 52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평균 수명은 4년이었습니다. 천적이 없고 먹이가 풍부한 수족관 돌고래는 최대 50년까지도 살 수 있는 걸 고려하면 단명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고래 사육과 전시와 관련한 정책이 거의 없습니다. 수입 금지와 수족관 사육·전시 금지, 사육환경 개선 등의 과제가 수해째 쌓여만 있습니다.
오히려 역행하는 움직임마저 보입니다. 최근에는 서울시가 제주 퍼시픽랜드에 위탁한 돌고래 태지는 다시 돌고래쇼에 동원되는 것을 동물보호단체 핫핑크돌핀스가 확인했습니다. 제주 마린파크에서 큰돌고래를 추가 수입하려 한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벨루가와 큰돌고래 등 20마리 이상의 돌고래를 대거 수입했던 업계의 ‘큰 손’ 거제씨월드는 부산 기장군 동부산관광단지 안 또 다른 수족관을 건립할 계획입니다.
심인섭 동물자유연대 부산지부 팀장은 26일 “거제씨월드가 만들고자 하는 수족관의 조감도를 봤는데, 거제씨월드보다 넓고 돌고래 체험용 풀장도 만들려고 한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건립 중단 시위뿐”이라고 답했습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