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로드킬 지도’
▶ 쌩쌩 달리는 차량 바퀴에 동물이 치이는 걸 로드킬이라고 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실이 환경부에서 받은 로드킬 통계자료와 실제 생태통로 위치가 있는 곳 좌표를 점으로 찍어 지도를 만들어보았습니다. 예상대로라면 생태통로가 있는 곳에서는 로드킬 발생이 줄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은 로드킬을 줄이기 위해서는 전국 로드킬 실태조사를 새로 실시하고, 생태통로를 포함한 다양한 맞춤형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지난 3년7개월 동안 고속도로와 국도, 지방도로에서 죽어 나간 동물 수는, 환경부가 집계한 수치 기준으로만 1만2116마리였다. 고속도로에서만 2014년 2039마리, 2015년 2545마리, 지난해 2247마리가 죽었고 올해 7월까지는 1294마리가 희생됐다. 국도나 지방도에서도 2014년 1179마리, 2015년 1249마리, 지난해 1251마리가 폐사했다. 올해 들어선 4월 기준 312마리가 죽었다.
수치로 확인할 수 있듯이 로드킬은 매년 줄어들지 않고 있다. 로드킬로 숨진 멸종위기종 중에는 삵이 104마리로 가장 많았다. 이어 수달 16마리, 담비 3마리 순서였고 올빼미, 붉은배새매, 산양 등도 있었다.
로드킬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생태통로, 울타리(펜스), 발광장치 설치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특히 단절된 생태계를 잇고 도로를 건너갈 수 있도록 만든 생태통로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로드킬이 사회문제가 됐던 2004년 이전인 1998년 이미 국내에 들어온 생태통로는, 단절된 생태축을 연결해주는 역할이 주였다. 통로가 저기 있으니 돌아서 가자는 판단을 동물은 하지 못한다.
생태통로 주변 사체들
지난 4월24일 무렵 다람쥐 한 마리가 지리산 정령치 생태통로 인근 국도 5호선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동물이 차에 치여 죽은 로드킬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로부터 13일 전인 4월11일 고라니 한 마리가 역시 정령치 생태통로 인근의 국도 44호선에서 로드킬을 당하고 죽었다. 4월7일 두꺼비 한 마리도 정령치 생태통로 인근 지방도 삼가로에서 죽었다.
그로부터 석 달 전인 1월17일쯤에는 족제비가 진고개 생태통로 주변인 국도 37호선에서 죽었다. 두 달 전인 지난해 11월1일에는 월정사 생태통로 근처에서 산토끼 한 마리가 죽었고, 같은 월정사 생태통로 주변에서 9월20일 다람쥐 한 마리도 희생됐다. 그해 8월1일부터 8일까지 족제비, 다람쥐, 살모사가 정령치 생태통로 인근인 지방도 861호선에서 로드킬로 폐사했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2014년 1월부터 전국 68개 생태통로 인근 반경 2.5㎞에서만 406마리의 동물이 죽어 나갔다.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한 지방도 아스팔트 위에 자동차에 치인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 있다. 누군가 고양이 얼굴 위에 헌화한 듯 애기똥풀을 뜯어 덮어 놓았다. 양평/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이름 없는 이들 동물의 폐사 과정은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실에서 환경부로부터 받은 2014년 이후 로드킬 전수조사 결과를, 측량 및 지도 제작업체 ㈜인화엔지니어링에 연구용역을 맡겨 전국 로드킬 지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확인했다. 생태통로가 있는 곳과 로드킬이 발생한 곳의 좌표를 기록해 지도로 만들어보니 겹치는 부분이 꽤 나왔다. 그 결과 강원도 평창군의 월정사 생태통로, 진고개 생태통로, 전라북도 남원시 정령치 1 생태통로, 강원도 평창군 병태리 생태통로, 충청북도 단양군 죽령 생태통로, 전라남도 구례군 시암재 생태통로, 전라북도 남원시 고기리 생태통로 등의 순서로 생태통로가 있지만 인근에서 로드킬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용득 의원은 “현재 효과적인 생태통로를 만드는 것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으며, 법적으로 환경부 관리 대상의 생태통로 여부조차 확실치 않다”며 “생태통로를 만들어 놓은 후 관리 및 모니터링 실적도 매우 부진하다. 환경부는 로드킬 방지를 위한 종합적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태통로만으로는 안돼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애초부터 생태통로 탓만 할 수는 없다. 생태통로만으로는 로드킬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의원실을 통해 받은 국회 입법조사처의 ‘로드킬 방지 대책’을 보면 나라마다 사는 동물이나 도로 교통량에 따라 대책이 달랐다.
대형 포유류의 출몰이 잦고 차량통행량이 많은 곳에서는 울타리와 생태교량, 지하통로를 설치해 인간과 동물의 동선을 분리하고 로드킬을 방지했다. 만약 대형 포유류가 서식해도 차량통행량이 적은 경우 운전자에게 주의를 환기하는 각종 표지와 더불어 동물의 진입장치를 위한 발광장치 등을 사용했다. 차량통행량이 많은 고속도로에서는 생태통로가 유용할 수 있지만, 국도나 지방도로에서는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소형 포유류가 많은 네덜란드는 도로 하단에 파이프를 설치했다. 대형 포유류가 존재하지 않는 일본은 생태통로 만들기보다 동물의 도로 진입을 막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도로 진입 방지용 울타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최태영 국립생태원 책임연구원도 이론적으로 생태통로는 로드킬을 막기 위해서 설치한다기보다 도로가 놓였기 때문에 단절된 구간을 생태통로로 이어주는 데에 있다고 설명했다. 또 외국에서는 1970~80년대 이미 울타리가 먼저 도입됐고 그 효과로 로드킬을 막았던 것과 국내 상황은 다소 차이가 난다. 국내에서는 생태계 단절을 막기 위한 생태통로가 먼저 소개됐고, 로드킬을 막는 울타리가 늦게 들어왔다는 것이다. 최 연구원은 “생태통로가 있으면 기본적으로 울타리가 있는데 틈새에 구멍이 나거나 설치할 때 잘못 설치해 동물이 빠져나가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며 관리의 부족함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강원도 홍천 인근 444번 국도변에 고라니로 추정되는 동물이 찻길사고를 당한 채 쓰러진 모습. 홍천/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한 척추동물 전공학자도 일방적으로 생태통로를 많이 설치하는 건 반대했다. 생태통로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것은 물론 로드킬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에 설치된 생태통로가 적당한지, 아니면 울타리가 더 적당한지 따져보는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전문가는 “울타리의 높이가 낮아 고라니의 도로변 출몰을 방지하지 못하거나, 펜스를 따라간 멧돼지가 도심으로 오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며 “필요한 조치 후 과거와 비교해 (로드킬 발생 현장에서) 사고가 실제로 줄고 있는지 등을 따져보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올해 말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몇년간 만들어둔 생태통로를 다시 점검하고 일반적인 문제점이 무엇인지 확인할 계획이다.
황일수 녹색연합 활동가도 우선 로드킬에 대한 정확하고 통일된 데이터 수집이 필요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외국의 방식을 차용하다 보니,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 맞지 않는 생태통로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동물의 행동반경, 생태를 잘 이해하지 못한 생태통로가 많다. 하지만 기초조사가 잘 안 돼 있는 편이다.”
로드킬 실태조사, 서행 운전부터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 ‘로드킬 방지 대책’을 보면 “로드킬 방지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울타리 설치지만 울타리만을 이용할 경우 서식처 분절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생태통로와의 조화를 강조”한다.
고라니같이 뜀뛰기를 잘하는 동물의 접근 방지를 위해서는 울타리 높이를 올려야 하고, 두더지같이 땅을 파는 동물은 울타리 하단을 메워야 한다. 동물 접근 가능성이 낮은 지역이라도 야광표지나 발광장치를 설치해 야간에 이동하는 동물의 경계심을 이용해 도로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 로드킬로 인해 희생된 동물 사체를 먹이로 하는 다른 동물이 접근해 다시 로드킬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도로 관리도 신속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운전자가 속도를 줄이고 전방주시를 확실하게 할 경우 로드킬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운전자 측면에서의 주의 환기도 강조될 필요성을 언급했다. 가장 대표적으로 로드킬 빈발 지역임을 표시하는 표지판과 속도제한이 활용되고 있고, 노면 요철 등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쪽에선 우리 사회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로드킬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이라는 알림이 적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황 활동가는 “영국에서는 도로가 많지만 어느 지역에 어느 동물이 많이 사니까 주의하라는 광고가 계속 나온다. 우리나라는 그런 소통이 전혀 없는데 실태조사를 기반으로 알림이 퍼지고, 시민들도 차량 운행 속도를 줄여야 로드킬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기술이 발전해 차량에 적외선 탐지 장치를 설치해 야간운전할 때 전방에 동물이 나타나면 운전자에게 이를 알려주는 기술도 적용되고 있다. 또 식생, 서식동물의 이동패턴 등을 입력해 동물의 이동 경로를 사전에 확인해 주요 이동지점에 적절한 로드킬 방지시설을 도입하는 것도 가능해지고 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