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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 동물들은 놀라지 않았을 걸요”

등록 2020-04-14 09:40수정 2020-04-14 16:50

[애니멀피플] 국내 최초 동물당 창당대회
창작그룹 ‘이동시’ 김한민·김도희 인터뷰
동물당 당대표 선출을 앞두고 벌어진 정견발표회. 절지동물당 ‘게’대표(왼쪽)로 출마한 동물해방물결 이지연 대표와 포유동물당 ‘개’대표로 출마한 김영환 동물법비교연구회 연구원. ‘동물당 매니페스토’ 전시를 기획한 창작그룹 이동시 김한민 작가(가운데)가 진행을 하고 있다. 사진 이동시 제공
동물당 당대표 선출을 앞두고 벌어진 정견발표회. 절지동물당 ‘게’대표(왼쪽)로 출마한 동물해방물결 이지연 대표와 포유동물당 ‘개’대표로 출마한 김영환 동물법비교연구회 연구원. ‘동물당 매니페스토’ 전시를 기획한 창작그룹 이동시 김한민 작가(가운데)가 진행을 하고 있다. 사진 이동시 제공
“그때여 돼지 한마리 나온다.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쓰고 냄새 풀풀 풍기면서…나와 하는 말이. 돼지가 더러워? 안 더러워. 너희들도 한곳에서 먹고 싸고 해봐. 너희들도 천 명 만 명 축사에 한꺼번에 갇혀 지내봐. 병이 돌겄어 안 돌겄어? 느그는 공공마스크라도 쓰고 다니잖아! 싹 다 죽여! 무시무시한 말, 살처분! 사람들은 한 사람이 코로나 19 걸렸다고 마을 사람들 다 죽이나?”

‘코로사 사태’로 위기를 맞은 인간들에게 돼지가 한마디 한다면, 과연 이럴까. 지난 9일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 2층에 동물들의 속마음을 번역한 판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날 저녁 7시30분에 시작된 국내 최초 ‘동물당 창당대회’는 일동 묵념으로 시작됐다. ‘인간의 무분멸한 탐욕과 착취로 인해 희생된 동물들을 떠올려달라’는 사회자의 진행에 당원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동물당 창당대회’ 퍼포먼스는 인간의 탐욕과 착취로 희생된 동물들을 떠올리는 묵념으로 시작됐다. 이동시 제공
‘동물당 창당대회’ 퍼포먼스는 인간의 탐욕과 착취로 희생된 동물들을 떠올리는 묵념으로 시작됐다. 이동시 제공
경과 보고가 이어졌다. 지난 1월 여러 동물들이 모여 곤충당, 조류당, 어류당, 파충류당, 양서류당, 갑각류당, 거미당, 포유류당, 절지동물당, 환형동물당, 자포동물당, 연체동물당 등의 하위 정당을 마련하고 동물당을 만들기로 한다. 2월 ‘동물을 위한 정치’라는 당 미션을 채택했다. 4월 드디어 여러 동물당 당원들이 당 대표 선출을 위해 코로나 정국에도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한 자리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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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민심하는데…동물심(心)도 있다

만약 기사를 보고, 하루 뒤 4·15총선에서 동물당에 투표하려고 했던 유권자가 있다면 아쉽게도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이번 동물당 창당대회는 선거를 주제로 한 일민미술관 ‘새일꾼을 뽑아내자’ 전시 중 하나인 ‘동물당 매니페스토’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동물당 매니페스토는 ‘왜 지금 대한민국에 동물당이 필요한가’라는 이야기를 영상, 설치, 퍼포먼스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국의 동물당 창당을 위해 ‘동물당 매니페스토’ 전시를 준비한 창작그룹 ‘이동시’의 김한민 작가(왼쪽)와 김도희 변호사.
한국의 동물당 창당을 위해 ‘동물당 매니페스토’ 전시를 준비한 창작그룹 ‘이동시’의 김한민 작가(왼쪽)와 김도희 변호사.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동시’(이야기와 동물과 시)는 2년 전부터 ‘동물축제반대축제’, ’쓰레기와 동물과 시’ 등의 활동을 이어온 창작집단이다. 스스로를 ‘동물심(心)번역가’라고도 칭하는 이들은 현실 창당이 “내년이라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9일 오후 창당대회에 앞서 이동시의 멤버인 ‘시셰퍼드’ 김한민 작가와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김도희 변호사를 만나봤다.

-실제로 창당을 한다는 건가요?
“실제로 논의를 했었어요. 이번 선거부터 준연동형 비례제로 바뀌면서 소수 정당들도 일정 조건만 충족을 하면 목소리를 낼 있는 구조가 됐잖아요. 동물해방물결이나 다른 동물단체들과 만나 창당 논의도 했고, 네덜란드 동물당에도 접촉을 했었습니다. 그게 지난 1월이었어요. 그러다가 코로나 정국 등이 겹치며 이번 총선 전에 서둘러 창당을 하기 보다는 조금 더 준비기간을 갖고 철저히 준비하자고 한 거죠.”

-미술관에서 창당대회라니 특이한데요?
“단지 동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동물에 의한 정치’까지 상상력을 급진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곳, 그 장소가 바로 미술관이라고 생각했어요. 미술관이란 공간이 원래 담론을 제기하는 공간이잖아요. 사실 총선 때 저희가 찍고 싶은 당은 ‘동물당’ 하나예요.
그런데 당장 현실정치에 발을 담글 것이 아니라면 정치적 상상력이라도 최대한 넓혀야 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거죠. 제도권 안에서 상상력이 줄어드는 것은 순식간이니까요.”

‘동물당 매니페스토’ 작품 가운데 하나인 ‘동물심 번역기’ 영상 앞에서 힙합 아티스트 김진세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 이동시 제공
‘동물당 매니페스토’ 작품 가운데 하나인 ‘동물심 번역기’ 영상 앞에서 힙합 아티스트 김진세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 이동시 제공
‘동물당 창당대회’ 퍼포먼스의 일부인 창작집단 ‘싸목싸목’ 판소리 공연. 소설가 김탁환씨가 쓴 사설을 최용석 소리꾼이 선보였다. 사진 이동시 제공
‘동물당 창당대회’ 퍼포먼스의 일부인 창작집단 ‘싸목싸목’ 판소리 공연. 소설가 김탁환씨가 쓴 사설을 최용석 소리꾼이 선보였다. 사진 이동시 제공

-‘동물심(心)번역가’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는지

“흔히 정치 이야기를 할 때, 민심을 알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해요. 여기서 민심이란, 단순한 마음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투영된 집단적인 마음을 뜻합니다. 정치를 잘한다는 건 곧 민심을 잘 읽는다는 거죠. 마찬가지로 동물들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서식지는 파괴하지마’, ‘나는 내 가족과 살 권리가 있어’ 같은 것. 우리가 읽지 못할 뿐이지 분명 동물심(心)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정치 주체로서의 동물 마음을 우리가 읽을 줄 알아야 하고, 그게 이 모든 정치, 동물당의 시작이란 생각을 했어요.”

이같은 동물당의 철학은 ‘동물당 홈페이지’(▷바로가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해방된 동물들, 회복된 기후, 절반이 야생화된 지구’를 미래 비전으로 내세우는 동물당의 첫번째 강령은 ‘우리는 모두 동물이고, 모든 동물은 정치적 주체임을 밝히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동물당 홈페이지에서는 동물당 소개 뿐 아니라 강령, 정책, 용어까지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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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명 ‘개 도살 금지당’이 될 뻔한 이유

비록 이날 창당대회 퍼포먼스는 그럴듯 했지만 ‘모든 동물의 직접 정치’란 말이 픽션처럼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녹색당과 정의당 등 진보 정당들뿐 아니라 여당과 미래통합당까지도 동물권 공약들을 열심히 내놓고 있는 마당에 따로 동물당이 더 필요한 걸까? 김한민 작가는 이에 대해 기존 정당들의 “아무런 실체 없는 ‘신호주기 공약’은 더 이상 필요없다”고 강하게 말했다.

-이번 총선 특히나 동물복지 공약들이 많은데
“내놓은 공약들을 보고 기성 정당들이 얼마나 보수화 됐는지 깨닫게 됐어요. 반려동물 진료비 지원이나 투명화 등은 이전에도 당연히 이뤄졌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도 선심 쓰듯이 적어놨죠. 그런 것들을 지원한다고 해서 동물권이 향상되는 게 아닙니다. 그나마 소수정당들에서 채식선택권 보장이나 헌법에 동물권 명시 등 동물권 공약을 내놨지만 내부에서조차 다른 이슈에 밀린다는 게 안타깝죠.
헌법이나 민법에 동물의 법적 지위를 재정의하자는 공약은 이미 2017년 대선후보 5명 중 3명이 모두 다 동의한 부분이었어요. 그런데도 안이뤄졌죠. 이제 저희는 그런 건 필요없다는 거예요. 상징적인 것, ‘우리는 이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신호주기로는 충분치 않아요. 실질적인 걸 해야 합니다.”

동물당 홈페이지에는 동물당에 대한 소개, 비전, 강령과 용어 설명이 자세하게 안내가 되어 있다.
동물당 홈페이지에는 동물당에 대한 소개, 비전, 강령과 용어 설명이 자세하게 안내가 되어 있다.
-기존 진보 정당들과의 차별점은 뭔가요
“동물당을 창당하면 동물이슈가 언제나 최우선이 되겠죠. 지금 녹색당, 정의당 모두 좋은데 너무 많은 이슈들을 다루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동물문제는 그 안에서도 더 중요한 이슈들에 묻혀버립니다.
만약 동물당이 생긴다면 저희는 인사청문회 때 그 모든 이슈에 대해 물을 필요가 없는 거예요. 우리는 이 후보가 얼마나 동물인지감수성이 있는지 물으면 되고, 동물인지정책 예산을 통과시키도록 노력하면 됩니다.”

-동물당이 내세울 가장 큰 공약이 무엇인지
“개 도살 금지. 이건 창당을 논의했던 여러 주체들이 모두 이견이 없던 부분이예요. 아예 당 이름을 ‘개 도살 금지당’으로 갈까 이런 말도 했었어요. 정말로 단 하나의 이슈로 가는 거죠.
개도살금지로 대동단결! 중요한 것은 개도살 ‘부터’ 없애는 거예요. 그것만 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게 제일 먼저 이뤄져야 할 주춧돌인 겁니다. 다만 축산업, 수산업, 채식권 등 동물권 많은 의제를 담지 못하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가지 못한 거죠.”

동물들의 다양한 생물학적 특징을 고려한 투표소 설치물.
동물들의 다양한 생물학적 특징을 고려한 투표소 설치물.
국내서는 동물당 논의가 아직 낯설지만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핀란드 등 유럽 14개 국가를 비롯해 전 세계 19개의 동물당이 활동중이다. 네덜란드 동물당은 현재 하원 150석 중 4석, 상원 75석 중 3석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개 도살·식용 금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겠다는 한국 동물당 계획처럼, 스페인 동물당의 경우 민족문화 투우를 동물권 논리로 반대하며 지지기반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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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동물과 거리두기’ 원년 됐으면

동물심번역가들은 현재까지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세계동물대전’이라고 표현했다. 동물대전은 ‘인간이 동물 아니 사실상 자연 전체와 벌인 역사상 최악, 최장, 최대의 전쟁’이며 코로나19, 사스, 돼지열병, 메르스와 같은 판데믹(대유행·Pandemic)은 인간이 동물의 영토를 ‘침범’하며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19 감염 사태도 동물들은 전혀 놀라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를 보고 동물들은 뭐라고 했을까요?
“‘꼴 좋다’ 했을 거 같아요. 동물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바이러스와 잘 공존해오고 있었어요. 박쥐도, 천산갑도, 사향고양이고 아무렇지 않은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넘어오면서 문제가 생긴 거죠.
문제는 인간이예요. 동물들을 거래하고, 서식지를 파괴하면서 동물들이 잘 버텨주던 바이러스 벽을 파괴한 거죠. 또 동물에게 병이 생겼을 때 인간들은 어떻게 했나요. 모두 살처분했죠. 같은 논리라면 인간들도 다 죽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동물당 매니페스토’ 전시 가운데 하나인 영상물 ‘동물심 번역기’. 구글번역기가 인간의 여러 말을 번역하듯, 영상은 동물의 말을 인간 언어로 번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물당 매니페스토’ 전시 가운데 하나인 영상물 ‘동물심 번역기’. 구글번역기가 인간의 여러 말을 번역하듯, 영상은 동물의 말을 인간 언어로 번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코로나의 원인이 동물과 인간 관계에 있다는 말씀인가요?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잖아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자연과 거리두기’라고 생각해요. 말 그대로, 해시태그(#) 동물과 거리두기 캠페인을 벌여야 해요. 아마 코로나19가 어떻게 전염됐는지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을 거예요. 박쥐가 자수를 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모르겠죠.
조류독감, 사스, 에볼라, 니파, 메르스, 코로나19까지 현재 알려진 전염병의 60%가 인수공통전염병입니다. 이제는 예방 차원에서라도 자연과의 관계, 동물과의 관계를 재규정해야 합니다. 올해가 그 원년이 됐으면 좋겠어요.”

김도희 변호사는 ‘동물과의 거리두기’는 동물뿐 아니라 인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체험’이란 명목으로 동물을 맨손으로 만지고 스트레스 주는 야생 동물카페, 체험형 동물원, 실내 동물원은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치명적일 거라는 지적이다. “다음 판데믹이 동물카페서 나온다고 해도 하나도 안 놀라워요.”

동물들의 다양한 생물학적 특징을 고려한 투표소 설치물 앞에서 펼쳐진 창작집단 ‘싸목싸목’의 판소려 공연. 사진 이동시 제공
동물들의 다양한 생물학적 특징을 고려한 투표소 설치물 앞에서 펼쳐진 창작집단 ‘싸목싸목’의 판소려 공연. 사진 이동시 제공
이날 당 대표 선출은 ‘동물적 민주주의’에 의해 선출됐다. 일종의 추첨이었다. “추첨이 투표보다 원초적이고 더 민주적”이라는 동물세계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무작위로 나눠준 유인물에서 풀향기를 맡은 한 당원이 정견 토론을 마친 후보 가운데 1명을 지목하는 방식이었다.

경선을 통해 뽑인 유력 후보는 절지동물당의 ‘게’ 대표와 포유동물당의 ‘개’ 대표. 생물량(Biomass)를 기준으로 의석수를 배정하는 동물당은 절지동물당이 126석으로 최다 의석수를 확보한 당이다. 인간당은 고작 9석(2.5%). “인간동물과의 타협 없이 변화는 비현실적”이라는 ‘개’ 후보와는 달리 바이러스당과 연합해 인간들과 대항하겠다는 ‘게’ 후보가 단숨에 대표로 선출됐다. 각종 바이러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인간들은 좀더 치열하게 다른 종과의 공존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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