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 시민들의 대집회가 열리자 셔터를 내리고 판자로 개들을 가린 보신탕집들이 많았다. 판자를 들추니 뜬장 한 칸에 개들이 한 마리씩 들어 있었다.
대구 칠성 개시장은 70년의 시대를 이어왔다. 성황일 때 보신탕집은 50여 곳에 달했으나, 동물권과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개고기 상권은 급격하게 위축됐다. 현재 남아 있는 업소는 17곳이다. 그나마도 장사가 잘 안되어 속상하다는 업소 상인들이 많다. 손님이 점점 줄어드는데 자신도 무엇을 하며 먹고 살지 막막하다고 했다. 그들에게 보신탕집은 동물 학대나 식품위생법 위반 같은 이야기를 떠나 생존이 걸린 직업이었다. 몰락이 예고된 생업.
지난 7월12일, 초복에 대구에서 시민들과 함께한 집회에 다녀왔다. ‘개식용 철폐 전국 대집회’. 부산 구포 개시장이 완전히 폐업한 것처럼 칠성시장 또한 완전히 폐업해야 한다는 취지의 집회였다. 좁은 철장에서 공포에 떠는 개를 골라 도살하는 이상한 시장이 사라지길 바라는 시민들이 마음속 분노를 억누르며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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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 있던 그 개는 어디로 갔을까
“시장 밖에서는 대구 시민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되, 시장에서는 침묵시위를 할 겁니다. 상인들과 싸우지 말아 주세요. 협상 테이블에서 그들과 대화를 해야 합니다. 함께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개시장을 폐쇄할 수 있어요.”
얼마나 많은 개가 도살되었을까? 애도의 마음으로 국화꽃을 들었다.
같은 마음으로 모인 시민들의 개식용 종식을 염원하는 절절한 발언들이 이어졌다. 한 분이 “우리 자녀들이 개들을 진열·도살하는 학대현장을 보며 자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시위에 나왔다”고 했다. 시민들의 발언을 들은 후에는 모두 국화꽃을 나눠 가졌다. 기다란 무명천에 개들을 위한 애도의 문장을 쓰고 국화꽃에 묶었다.
그 후 시장을 향해 긴 행렬이 이어졌다. 흔치 않은 장관이었다. 시장 상인들도 나와 기자들과 섞여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시위를 구경하는 시민들로부터 힘내라는 격려도 간간이 들렸다. 시위대가 지나가는 길, 보신탕집 앞에 진열된 뜬장은 텅 비어 있었다.
지난 6월 중순, 칠성시장에서 만났던 누렁이. 혹시 사나운 애일까 싶어 주저하며 손을 내밀자 그 개도 머뭇거리며 코를 대어 냄새를 킁킁 맡았다.
지난 6월 중순, 칠성시장에서 만났던 개가 있다. 그 개를 잊지 못한다. 뜬장 위에 엎드려 있던, 주둥이가 까만 누렁이었다. 혹시 사나운 애일까 싶어 주저하며 손을 내밀자 그 개도 머뭇거리며 코를 대어 냄새를 킁킁 맡았다. 그 뒤에는 아주 정성스럽게 손을 핥고 자신의 머리를 내 손에 갖다 댔다. 나는 거기서 오랫동안 개를 쓰다듬고 핥는 대로 놔두다가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한참 뒤 시장을 한 바퀴 더 돌았을 때, 셔터를 내렸던 그 가게가 완전히 문을 열고 뜬장 가림막까지 치운 것을 봤다. 개는 그곳에 턱을 괴고 누워있었다. 그리고 나를 보고선 벌떡 일어서 꼬리를 흔들었다.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개를 살까, 돈을 주고 사서라도 구조를 해야 하나, 그런데 그 빈자리에는 다른 개가 들어가게 되지 않나…. 결국은 개를 두고 돌아섰다.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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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은, 길어봤자 내일까지
그 날은 많은 모습이 마음에 죄책감으로 남았다. 뜬장에서 끌려 나오지 않으려 안간힘인 개, 결국엔 비명을 지르며 오토바이에 실려서는 어디론가 배달되던 누렁이, 눈만 마주쳐도 꼬리를 흔드는 셰퍼드. 개들이 비좁게 찬 뜬장 앞에 앉은 노인에게 ‘이 개들과 반려견은 똑같지 않냐’고 묻자 ‘그저 짐승일 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개들을 쓰다듬으려 하자 ‘물린다’며 진심으로 염려하며 말렸다.
초복 전날 만난 뜬장의 개들. 가게 앞 뜬장에 진열되었다가 손님이 개를 고르면 도살당한다.
시민대집회가 진행된 복날 바로 전날에도 칠성시장에서 지난달과 똑같은 풍경을 마주했다. 개들은 진열되었고, 끌려 나왔고, 죽임을 당했다. 오늘 뜬장에 있는 개들의 목숨은 길어봤자 내일까지였다. 내 마음에 깊게 남은 그 애가 있던 그 뜬장에도 역시 다른 개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복날 당일에는 그 모든 뜬장이 비어 있었다. 시위의 규모가 커지면 상인들은 개들을 가게 안쪽에 숨겨놓기도 한다. 어제 봤던 개들이 이미 죽었을지 혹은 가게 안에 숨겨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가게 안쪽이라도 기웃거릴까 갈등하던 중에 행진하던 시민 중 일부가 결국 보신탕집 앞에서 개고기를 권유하는 중년 남성들 앞에서 소리를 질렀다. 소란은 빠르게 정리가 됐지만, 그들의 그릇 안에 어제 나와 눈을 맞추기 위해 애쓰던 작은 누렁이의 살점이 있을까 고통이 밀려왔다.
복날 시민들의 대집회가 열리자 셔터를 내리고 판자로 개들을 가린 보신탕집들이 많았다.
‘개고기’ 시장의 몰락은 이제 기정사실이며 변화의 물결은 점점 거 거세지고 있다. 대구 칠성시장도 급변의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 칠성 원시장 일원의 도시재정비 사업이 계획되면서 개시장 일부도 정비 구역 내에 포함되기도 했다. 칠성시장의 보신탕집 상인들도 ‘장사가 잘 안된다’ ‘5년 안에 손님 없어져서 문 닫을 것 같다’며 초조해한다. 한편으로는 부산시처럼 대구시에서 전업 지원을 해 줄 것을 기대하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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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과정이 남았지만
7월12일 집회에서 시민들은 대구시장에게 칠성 개시장 완전 폐업과 추진체 구성을 요구했다. 그리고 지난 17일, 권영진 대구시장은 내년까지 칠성시장의 개도축장들을 없애는 방안을 찾을 것을 지시했다. 칠성의 완전 폐업까지 모란시장, 구포 개시장이 그랬듯 지난하고 치열한 과정이 수반될 것이다. 그래도 칠성에서는 이전의 경험을 딛고 칠성시장 상인들과 지자체, 개들과 개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들 모두를 위한 더 빠르고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뜬장 위에서 한평생 음식물쓰레기를 먹으며 살다가 도살된 개들의 명복을 빈다. 카라의 활동가들이 할 수 있는 애도는 헛되게 죽는 생명이 하나라도 줄어들기를 바라며 일하는 것이다. 내년의 칠성시장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기를 바란다.
글·사진 김나연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