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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바다 돌고래를 계속 볼 수 있을까

등록 2018-10-07 15:33수정 2018-10-11 11:54

[애니멀피플]
양어장 배출수 영양염류 풍부·인근 풍력단지 소음 피해 모인듯
대정에도 풍력단지 추진중…인간과 돌고래 공존 방법 찾아야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노을해안로를 따라 가다보면 돌고래떼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 해상풍력발전단지를 건설하자는 주장이 있다. 돌고래들은 안전하고 풍요로운 대정읍 바다를 지킬 수 있을까. 지난 2일 대정읍 무릉리 앞 바다에서 돌고래 2마리가 헤엄치고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노을해안로를 따라 가다보면 돌고래떼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 해상풍력발전단지를 건설하자는 주장이 있다. 돌고래들은 안전하고 풍요로운 대정읍 바다를 지킬 수 있을까. 지난 2일 대정읍 무릉리 앞 바다에서 돌고래 2마리가 헤엄치고 있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 같아요. 방금 지나갔으니 또 올 거예요.”

지난 1일 제주 서남쪽 해안도로(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노을해안로)에서 만난 대정읍 보성리 주민 서영심(62)씨는 돌고래(남방큰돌고래)가 익숙하다고 했다. 서씨는 가족과 낚시를 하러 왔다. 돌고래를 보러 왔다는 기자의 말에 서씨는 이곳에서 돌고래를 자주 봤다며 추석 연휴에 찍은 스마트폰 사진을 보여주었다. 낚시하러 나온 서귀포시 안덕면 주민 허일성(52)씨는 “돌고래가 와도 고기가 잘 잡히는 곳”이라고 말하며 가방을 챙겨 갯바위로 향했다.

남방큰돌고래는 인도양과 서태평양 열대 또는 온대 해역에 분포하는 돌고래다. 제주 바다에서 불법 포획되었다가 서울동물원에서 쇼를 하던 중 2013년 제주 바다로 돌아간 제돌이가 남방큰돌고래다. 2013년 정부가 ‘보호대상 해양생물’로 지정했다. 제주도 연안에만 올해 117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2일 방파제에서 바라본 바다는 돌고래 세상이었다. 수십 마리 돌고래들은 시간을 정해두지 않고 불쑥불쑥 그러나 꾸준히 나타났다. 검은 삼각형 등지느러미가 해면 위로 오르락내리락하다 금세 멀리 사라졌다. 칼날 같은 지느러미를 앞세워 정면으로도 달려왔다. 방금 본 등지느러미가 분명 하나였는데 어느새 여러 개가 되었다.

지난 2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 바다에서 돌고래가 점프를 하고 있다.
지난 2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 바다에서 돌고래가 점프를 하고 있다.
갯바위에서 5m 떨어진 곳에서도 뛰어오르고 먼바다에서도 헤엄쳤다. 바위 가까이 지날 때는 바닷물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돌고래가 나타나면 지나가던 차가 서행하고 차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쉬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이미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는 돌고래를 보고 간 관광객들이 추억을 나누고 있다.

‘살기 위해’ 모여든 돌고래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는 돌고래를 많이 볼 수 있다고 소문난 곳이다. 해안을 따라 도로가 나 있어 서귀포 바다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 해양수산부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연구진이 3년 동안 18회에 걸쳐 제주도 전역을 돌며 조사한 결과 대정읍 연안에서는 조사할 때마다 돌고래가 관찰됐다. 올해 3월, 6월, 9월 조사에서만 14~48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특히 최근 2~3년 사이 자주 발견되고 있다.

돌고래들이 이곳으로 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육상 수조식 양어장 약 70곳이 몰려있다. 주로 광어를 키워 육지나 일본으로 내다판다. 바닷물을 끌어다 쓰고 다시 그 물을 바다로 버리는 양어장 주변에는 배출수에 들어있는 영양염류 때문에 식물성플랑크톤의 번식이 활발하다. 자연스레 물고기가 많이 몰린다. 종종 양식 광어도 물에 섞여 빠져나온다. 광어는 돌고래가 좋아하는 생선 중 하나다.

1일 양어장에서 만난 배창기(48) 한려프리믹스 대표는 “대정읍 앞 바다는 최상위 포식자인 돌고래에게는 살기 좋은 곳이다. 2~3년 전부터 확실히 돌고래 수가 늘었다”고 말했다. 돌고래를 보러 오는 관광객이 늘었다는 인근 펜션주인 박아무개(31)씨는 “돌고래가 차귀도에서 모슬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이곳에 양어장이 몰려 있으니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갯바위 바로 앞에 검은 숭어떼가 바글거렸고, 은빛 배를 뽐내며 물 밖으로 튀어 오르는 물고기도 많았다. 낚시꾼과 돌고래 모두가 만족해하는 바다였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노을해안로를 따라가다보면 헤엄치는 돌고래떼를 볼 확률이 높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노을해안로를 따라가다보면 헤엄치는 돌고래떼를 볼 확률이 높다.
대정읍이 돌고래 천국이 된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인근 연안의 수중소음을 피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김현우 고래연구센터 박사 등이 2015년에 쓴 ‘2000년대 초반 제주도 남방큰돌고래의 분포 양상’ 논문을 보면, 2011년 조사까지는 제주 북서쪽인 한림읍 일대와 제주 북동쪽에서 주로 돌고래가 발견됐다. 그런데 2012년 이후 한림항을 이용하는 선박이 늘어 수중소음이 증가하자 한림읍 아래인 한경면 해안과 더 남쪽에서 돌고래가 자주 발견된다고 밝혔다. 대정읍은 한경면 아래에 있다.

더욱이 한림읍 수원리 해상은 한림 해상풍력지구로 지정됐다. 당시 해안에서 2㎞ 떨어진 해상에 기상탑을 설치하기 시작했고, 이때 내는 소음이 더해져 돌고래를 아래쪽으로 몰았을 것이라고 김 박사는 추정한다. 특히 말뚝박기 작업에서 발생하는 10㎑ 이하의 저주파는 돌고래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음역이다. 2012년 스코틀랜드 베아트리스 해상풍력단지가 해양환경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을 평가한 결과도 비슷했다. 건설할 때 나는 소음이나 완공 후 터빈에서 나는 소음이 큰돌고래에게 심각한 수준의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됐다.

김 박사는 5일 “풍력발전 공사를 할 때 서식지를 떠나는 돌고래 사례는 유럽 북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제주도 근해에 해상풍력단지가 들어서면 서식지가 중복되는 남방큰돌고래의 생태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는 돌고래를 많이 볼 수 있다고 소문난 곳이다. 해안을 따라 도로가 나 있어 서귀포 바다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는 돌고래를 많이 볼 수 있다고 소문난 곳이다. 해안을 따라 도로가 나 있어 서귀포 바다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대정읍에도 해상풍력발전단지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한국남부발전과 두산중공업은 대정읍 무릉리, 영락리, 일과2리 해상 14.35㎢ 면적에 풍력발전기(100㎿) 13~20기를 건설하자고 도의회에 지구지정 동의안 통과를 요구해왔다. 제주도의회가 이미 2차례 지구지정을 보류했지만 또 동의안을 제출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도의회가 지정안에 동의하면 제주도지사가 지구지정 고시와 공고를 한다.

풍력발전과 돌고래

해상풍력발전과 돌고래보호구역 지정을 두고 갈등은 이미 시작됐다. 해양수산부 용역으로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작성한 ‘2017 보호대상 해양생물 보전·관리연구’ 보고서를 보면 일부 주민과 제주도는 풍력단지 건설에 찬성한다. 지난해 6월 제주도 모슬포 어선주협회 관계자는 “현재 어장이 과거만큼 좋지 않고 섬에서 바다 쪽으로 바람이 불기 때문에 소음피해는 적을 것” 등을 이유로 찬성 의견을 냈다. 같은 시기 제주도 해양산업과는 “해상풍력 확대가 제주도의 기본 정책”이며 “해양보호구역 지정은 곤란”하다는 입장이었다.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는 발전사가 주민들에게 금전적 보상을 해주기 때문에 주민 입장에서는 풍력발전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보고서에는 발전사가 20년 동안 한 마을에 보상금 120억원을 지원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인근 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가 무리지어 헤엄치고 있다. 뒤쪽 한 마리는 광어를 물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제공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인근 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가 무리지어 헤엄치고 있다. 뒤쪽 한 마리는 광어를 물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제공
양어장 운영자들은 생존권을 이유로 해상풍력을 반대하고 있다. 풍력발전기를 설치하면 물의 탁해지고, 그 물을 끌어다 쓰는 양어장에서 키우는 물고기의 아가미에 점토나 불순물이 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곳 생활이 20년째라는 오인현(49) 큰물수산 대표는 1일 “발전기가 들어서면 인공구조물이 방파제 역할을 해서 물이 고일 수 있다. 양어장은 깨끗한 물이 생명인데 아무래도 물이 달라지면 양식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핫핑크돌핀스는 해상풍력발전단지 지정에 반대하고 대정읍 일대를 돌고래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해수부가 ‘돌고래 관찰 가이드’를 만들었지만 권고 사항에 그치고 있어 무분별한 돌고래 관광이 넘쳐날 것을 우려한다.

조약골 핫핑크돌핀스 대표는 “지금도 돌고래 관광을 할 때 너무 가까이서 돌고래를 쫓는다. 정부는 돌고래를 관광자원이라고 생각하는데, 남방큰돌고래 개체 수는 2008년 124마리였지만 올해 117마리로 줄었다. 관광산업화 하기 이전에 보호 대책부터 수립해야 한다. 돌고래가 서식하는 대정읍 일대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해수부와 해양환경관리공단, 고래연구센터가 만든 고래 관찰 가이드를 보면 돌고래 관찰은 한 시간 이내에 끝내야 하고 돌고래 무리 안으로 배를 몰아서는 안 된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이를 어기더라도 법적, 행정적 처분을 내릴 근거는 없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인근 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가 무리지어 헤엄치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제공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인근 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가 무리지어 헤엄치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제공
해양수산부 해양생태과 관계자는 “해양생태계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 20조에서 (남방큰돌고래 같은) 보호종은 포획이나 채취를 금지하게 돼 있다. 의도하지 않고 돌고래를 만날 수도 있기 때문에 (사전에) 배를 특정해 규제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밝혔다. 풍력발전에 대해선 “에너지 정책과 고래보전의 가치가 충돌하고 있다. 보호구역 지정은 절차가 복잡한데 그 전에 해상풍력발전이 결정될 수도 있다. 어떤 방향이 옳은지 전문가 의견을 듣고 있다”고 덧붙였다.

함께 사는 방법, 없을까

“아침 식사 다 했나 봐.”

2일 아침 돌고래 무리가 더는 보이지 않자 아빠와 함께 바다에 나온 어린 딸이 말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남편과 나들이 나왔다는 제주도민, 기사를 보고 대정읍까지 찾아온 인천시민 등 돌고래에게 마음을 빼앗긴 이들이 한참을 해안에서 서성였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면 대정읍에서 돌고래를 보는 건 특별한 행운이 아니었다. 돌고래를 만났다는 기쁨과 함께 돌고래와 바다를 공유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숙제도 떠안게 됐다. 풍요로운 대정읍 바다에서 돌고래를 계속 볼 수 있을까.

제주/글·사진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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