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도시공사 쪽은 28일 새벽 뽀롱이의 위령제를 지냈다고 밝혔다. ‘애니멀피플’은 현장 사진을 요청했지만 동물원 쪽은 거절했다. 위키미디어코먼스 제공
지난 18일 동물원을 벗어났다가 사살된 퓨마 ‘뽀롱이’의 위령제가 28일 열렸다. 대전오월드를 운영하는 대전도시공사 관계자는 이날 “아침에 직원 30여명이 모여 퓨마사 근처에서 1시간 동안 위령제를 지냈다. 새벽에 반려동물 장례 전문 업체에서 화장했고 유골은 동물원으로 가져온 뒤 헌화, 분향, 묵념했다. 퓨마사 부근에 수목장했다”고 밝혔다. ‘애니멀피플’이 위령제 현장 사진을 요청했지만 동물원은 이를 거부했다.
뽀롱이는 갔지만 뽀롱이의 죽음을 기억하는 여러 방법이 논의되고 있다. 박제, 장례식, 추모비 건립 등 방법은 다양했지만 한국 동물원에 대한 성찰을 부른 퓨마의 죽음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는 한목소리에서 출발한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장례식, 추모비 건립 등을 제안했다. 김현지 카라 정책팀장은 27일 “동물 박제를 모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국민 정서상 뽀롱이 만큼은 박제로 남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죽음을 애도하고 또 그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장례식을 하거나 추모비를 세우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카라는 뽀롱이가 탈출하고 사살에 이르는 과정까지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평생을 동물원에서 살았고 문을 잠그지 않고 나간 사람의 실수로 죽음을 맞은 뽀롱이를, 박제로까지 남겨 인간을 위해 이용한다는 것이 너무 가혹하다는 여론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동물의 일생을 기억하기 위한 조형물을 만드는 경우는 종종 있다. 대만 타이베이시립 동물원 교육센터 지하 1층에는 높이 4~5m 크기의 코끼리 전시물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끌려가 군수품과 건설자재 운송을 하다 전쟁이 끝나자 이 동물원에서 살았던 코끼리 ‘임왕’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모형을 만들어두었다. 모형은 임왕이 86살의 나이로 죽은 2003년 이후에 만들었다. 경기도 과천 서울동물원도 2009년 3월 58살 나이로 폐사한 코끼리 ‘자이언트’를 비롯한 여러 동물을 추모하기 위한 조형물을 ‘100주년 기념광장’에 설치했다.
지난해 6월 ‘한겨레’의 ‘동물원 살아남기’ 기획취재팀이 방문한 대만 타이베이시립 동물원의 교육센터. 대만 역사와 관련이 깊은 코끼리 임왕의 생전 모습을 본떠 만든 모형물이 교육센터에 만들어져있다. 대만/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과학자들과 또 다른 동물보호단체에서는 뽀롱이 같이 동물권 신장에 깊은 영향을 준 동물을 박제로 남기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 죽음을 슬퍼하고 분노하는 대중의 정서를 이해하면서도 자연사박물관 하나 없는 한국의 현실을 지적하면서 나온 말이다. 죽은 동물을 박제로 남기면 지금의 동물원처럼 살아있는 동물을 전시하지 않아도 교육적 효과가 크다는 이유도 있었다.
전채은 동물을 위한 행동 대표는 “한국의 박제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맞지만, 죽은 동물을 박제하는 걸 무조건 반대하는 것에는 반대한다”라며 “세계적으로 동물원이 있는 도시는 다 자연사박물관이 있다. 박제해 연구를 할 수도 있다. 또 산 동물 대신 전시해 교육용으로 사용하면 동물원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도 “시민 정서를 무시하고 박제를 시도할 수는 없다”면서도 “공익적 목적으로 박제하는 게 비인도적이고, 죽은 동물을 이용한다고 비판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국가기관의 한 동물전문가는 “박제를 요청한 시기나 과정이 적절하지 못했지만 그 의도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짚었다.
외국에서는 박제로 남아 역사가 된 동물도 있다. 미국 시카고 필드 자연사박물관의 상징인 갈기 없는 수사자 2마리 ‘고스트’와 ’다크니스’ 박제는, 제국주의가 야생을 인간화하는 과정에서 자연과 충돌한 역사를 보여준다. 사자들은 아프리카 케냐 ‘사보’라는 지역에서 악명높은 식인사자였다. 철도 다리를 건설하러 온 영국의 군인 존 헨리 페터슨이 1898년 12월 사자 두 마리를 사살했다. 1924년 박물관이 5000달러를 주고 사자 가죽을 사들였고 박제로 남겼다.
이후 박제는 과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 박제에서 채취한 샘플의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을 통해 사자들이 먹은 인육의 수를 추정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고스트는 10명 이상, 다크니스는 25명 이상이었다. 패터슨은 1년여 동안 135명이 사자에게 희생됐다고 주장했다.
대전오월드도 뽀롱이 추모비를 작게 만들 계획이다. 돌로 만든 소형 추모비를 주문했다. 퓨마사 앞에 두고 뽀롱이의 죽음을 추모하고 기억하겠다고 했다. 대전도시공사 관계자는 “외부에서도 추모비 제안이 있었지만 동물원에서도 뽀롱이를 추모할 방법을 고민했다”고 덧붙였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경기도 과천 서울동물원에는 소중한 동물을 오래 기억하기 위한 ‘100주년 기념 광장’이 있다. 국내 최장수 코끼리였던 ‘자이언트’를 기리기 위한 조형물이 이곳에 있다. 서울동물원 제공
시카고 필드 자연사 박물관의 숫사자 2마리의 박제. 사자를 박제한 후 방사성동위원소 분석을 통해 몇 명의 사람이 희생됐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위키미디어코먼스 제공